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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사형, 그리고 조력 존엄사: 미국 개신교인들의 진영에 따른 다른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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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2026-01-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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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미국 개신교의 생명 윤리가 인종과 정치 성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PRRI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낙태 반대(69%)에 사활을 걸면서도 사형 반대(21%)에는 침묵하는 '선택적 생명 존중'을 보였다. 반면 흑인 개신교인들은 사형 제도 반대(53%)에 앞장서며 사법적 정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생명 수호'가 성경적 가치를 넘어 정치적 진영 논리에 포획되었음을 보여준다.1131237bc52046219cff827b2cc82a96_1769261659_3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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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교단마다 엇갈리고 있다. (AI사진)

 

"수정된 순간부터 자연사까지,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 명제는 과연 현실 정치와 신앙의 영역에서 일관성 있게 지켜지고 있을까. 종교공공생활연구소(PRRI) 앤 화이트셀 박사가 최근 발표한 분석 보고서는 미국 개신교의 생명 윤리가 인종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얼마나 기형적으로 파편화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의 핵심은 '프로라이프(Pro-Life)' 운동의 주류를 자처해 온 개신교 내부의 거대한 균열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백인 복음주의자와 흑인 개신교인이 바라보는 '지켜야 할 생명'의 우선순위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백인 복음주의의 역설: "태아는 살리고 죄인은 심판한다"

 

미국 보수 신앙의 핵심축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태도는 확고하다 못해 이중적이다. 이들은 낙태 문제에 있어 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응답자의 69%가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 전체 평균(34%)의 두 배를 상회하는 수치다. 태아의 생명권 수호를 신앙의 제1원칙으로 삼는 그들의 열정이 데이터로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시선을 '태어난 이후의 생명',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 박탈당하는 생명인 '사형수'에게로 돌리면 상황은 급변한다. 백인 복음주의자 중 사형 제도가 불법이어야 한다고 믿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10명 중 8명은 사형 제도를 용인하거나 지지한다는 뜻이다.

 

이는 구약적 율법관에 기인한 '응보적 정의'가 신약의 '용서와 생명'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방 사형 집행을 부활시켰을 때 가장 환호했던 그룹이 복음주의 진영이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생명을 '절대적 가치'가 아닌 무고함과 죄책을 따지는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조력 존엄사에 대해서도 58%가 반대하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지만, 유독 사형 제도 앞에서만 관대해지는 이 '선택적 생명 윤리'는 복음주의가 안고 있는 가장 아픈 딜레마이자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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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사형, 그리고 조력 존엄사: 미국 개신교인들은 진영에 따른 다른 입장을 보인다 (AI사진)

 

흑인 교회의 외침: "불의한 칼날로부터 생명을 구하라"

 

반면, 흑인 개신교인들의 데이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사형 제도 반대에 있어 미국 내 모든 종교 그룹 중 가장 높은 비율(53%)을 기록했다. 백인 복음주의자(21%)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격차다.

 

이러한 차이는 신학적 해석보다는 역사적 경험에서 기인한다. 미국 사법 시스템 안에서 흑인들이 겪어온 부당한 판결과 억울한 죽음의 역사는 흑인 교회로 하여금 '국가 권력에 의한 살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했다. 이들에게 '생명 존중'은 단순히 태아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불완전한 사법 제도로부터 약자의 생명을 지켜내는 '사회적 정의'의 문제다.

 

흥미로운 점은 낙태에 대한 태도다. 흑인 개신교인 중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3%에 그쳤다. 이는 낙태를 전적으로 찬성한다기보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처한 척박한 현실을 고려할 때 법으로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주류 개신교와 가톨릭의 주변화

 

한편, 연합감리교회(UMC)나 성공회 등으로 대표되는 백인 주류 개신교(Mainline Protestant)는 낙태(31% 반대), 사형(28% 반대), 조력 존엄사(29% 반대) 등 세 가지 이슈 모두에서 30% 내외의 낮은 반대율을 보였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리버럴한 신학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수적 복음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가톨릭과 후기 성도(LDS)의 경우 교단의 공식 입장이 신자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가톨릭 교권은 낙태·사형·조력 자살을 모두 반대하는 '일관된 생명 윤리'를 내세우지만, 평신도들은 세 가지 사안 모두에서 과반수가 합법화를 지지하며 세속적 흐름에 동화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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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반쪽짜리 복음을 넘어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 미국 개신교는 '일관된 생명 윤리'를 상실했다. 복음주의는 태아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만 사형대 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에는 눈을 감았고, 흑인 교회는 사형 제도의 불의함에 맞서지만 태아의 생명권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미국인 중 사형까지 반대하는 비율이 33%에 불과하다는 통계는, 오늘날의 '프로라이프' 운동이 생명 그 자체를 위한 순수한 신앙 운동인지, 아니면 정치적 진영을 가르는 구호로 전락했는지 묻고 있다. 진정한 생명 존중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넘어, 가장 작고 약한 자부터 가장 죄질이 나쁜 죄인에게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의 숙제

 

한인교회 역시 이 질문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생명을 선택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바다 건너 한국 교회와 사회 역시 동일한 모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멈춘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지만,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은 70%를 상회한다. 보수 교계 일각에서도 '사회적 정의'를 명분으로 사형제 존치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다.

 

연간 추정 낙태 건수는 약 3만 2천 건(2020년 기준)에 달한다. 더 뼈아픈 것은 인식의 변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며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교계는 여전히 '낙태 반대'를 외치지만, 실제 기독교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조차 절반 가까이가 상황에 따른 낙태를 용인한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은 80%를 넘나들고 있어,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교회의 외침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 공백 상태에서 교회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작 교회 내부에서조차 낙태 반대, 사형 존치(혹은 묵인), 존엄사 찬성이라는 '비일관적 3박자'가 혼재한다.

 

미국 복음주의의 딜레마를 타산지석 삼아, 한인과 한국 교회 역시 감정과 시류가 아닌 성경적 본질에 입각한 정교하고 일관된 생명 윤리를 정립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더 이상 교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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