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명 앞의 환호보다 한 영혼이 귀했다" 이만호 목사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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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3ㆍ2026-01-11 08:3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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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2026년 신년하례예배에서 이만호 목사는 설교에 앞서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를 털어놓았다. 수원 팔달산 절간을 헐어 지은 집에서의 불우했던 유년, 무당의 작두를 멈추게 한 어린 시절의 영적 체험, 여의도순복음교회 수석 부목사라는 정점을 뒤로하고 자녀를 위해 미국행을 택하기까지. 그의 삶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꾼 한 편의 거대한 서사였다.

누군가에게 새해는 희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남아야 할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 2026년 1월 6일, 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신년하례예배가 열린 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 강단에 선 이만호 목사는 '성령과 함께'라는 주제를 꺼내기 전, 깊은 숨을 고르며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신앙 간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가난과 영적 전쟁, 그리고 부흥의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개인의 처절한 생존기였다.
절간을 헐어 만든 99칸의 집, 그곳은 '지옥'이었다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용포리 525번지. 이만호 목사의 고향 집은 수원 팔달산의 절간을 헐어 그 서까래와 기둥으로 지은 99칸짜리 대저택이었다.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거대한 역사였지만, 어린 이만호에게 그곳은 '부의 상징'이라기보다 알 수 없는 영적 무거움이 감도는 장소였다.
안타깝게도 집이 완공된 직후, 공사 뒷바라지로 기력이 쇠해진 어머니가 이 목사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가슴 아픈 비극이 시작되었다.
절간의 자재로 지어진 탓이었을까, 집안에는 설명하기 힘든 영적 기류가 흘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심각한 영적, 육체적 앓이를 하며 고통스러워했고, 어린 핏덩이였던 이 목사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느껴보기도 전에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향 냄새가 배어 있는 넓은 집에서 그는 깊은 공허함을 느꼈고, 소풍이나 운동회 날 친구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웃을 때면 홀로 콩밭에 숨어 눈물을 삼키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가정 전체를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가족 간의 불화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위태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우환을 없애보려 1년에 몇 번씩 큰 굿판을 벌였지만, 그럴수록 집안의 영적 갈급함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영적 황무지와 같았던 가정환경은 훗날 그가 성령을 체험하고 온 가족을 구원하는 목회자로 서게 되는 간절한 기도의 씨앗이 되었다.
사과 한 쪽의 사랑, 그리고 5학년 산수 시간의 '발화'
어둠 속에 웅크려 있던 소년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건 사촌 누이였다. 기저귀를 찬 채 끌려가다시피 나간 감리교회. 그곳에서 만난 28세 노처녀 주일학교 교사 김인순 선생은 엄마 없는 아이 이만호에게 구원이었다. "만호야, 이뻐라" 하며 건네주던 사과 한 쪽, 사탕 한 알은 그가 태어나 처음 맛본 '조건 없는 인간의 사랑'이었다. 그는 그 따스함이 좋아 예배 시간마다 강대상으로 기어 올라갔고, 목사님은 "이놈이 목사가 되려나 보다"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운명의 날은 초등학교 5학년 산수 시간에 찾아왔다. 담임 목사로부터 "성령을 받으면 귀신을 쫓고 집안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매달린 지 3년 만이었다. 칠판에 수학 공식이 적혀 내려가던 평범한 교실, 갑자기 소년의 입이 터지고 몸이 뜨거워졌다. "이게 몇 개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도 멈출 수 없는 방언이 쏟아졌다.
30분간 화장실에 숨어 쏟아낸 기도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소년은 그날,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만났다 .
소년의 기도는 강력했다. 집안에서 굿판이 벌어지던 날, 그는 담벼락 뒤에 숨어 방언으로 대적 기도를 했다. 그러자 작두를 타던 용한 무당이 칼날에 발뒤꿈치를 베이고 피를 철철 흘리며 도망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완고하던 할아버지조차 "무당보다 예수가 세다"며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집안의 저주는 끊어지기 시작했다.
중학생 '영적 가장', 형님의 결혼을 뒤엎다
소년은 자라며 집안의 영적 기류를 바꾸는 '어린 가장'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안의 운명을 건 당돌한 사건이 벌어졌다. 큰형님의 결혼 중매가 들어왔을 때, 그는 학교도 가지 않고 선 자리에 쫓아가 "예수 믿지 않는 예쁜 서울 아가씨는 절대 안 된다"며 훼방을 놓았다.
결국 그의 고집대로 신앙심 깊은 시골 아가씨가 형수가 되었고, 이는 가문을 복음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할아버지 몰래 새벽기도를 가기 위해 담장 개구멍을 열어주던 형수와 함께, 그는 칼과 낫이 날아다니던 살벌한 집안을 찬송 소리가 울리는 예배 처소로 바꿔 나갔다.
생명을 건 출산, 그리고 형님에게 바친 '첫 아들'
가족애가 빚어낸 기적 같은 일화도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한 큰형님 부부를 위해, 둘째 형 부부가 "첫 아이를 낳으면 형님께 드리겠다"는 서약을 한 것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둘째 형수에게 쌍둥이를 주셨는데, 심각한 임신중독증으로 산모와 태아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다.
온 가족이 금식하며 매달린 끝에 기적적으로 산모와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났고, 약속대로 쌍둥이 중 맏이는 탯줄도 떼기 전 큰형님의 품에 안겼다. 절간 귀신이 지배하던 집안은 12명의 목회자를 배출한 명문가로 변모했고, 이만호 목사는 그 기적의 중심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미소 천사' 아내와 '거인' 조용기를 만나다
청년이 된 이만호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학부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다. 이영훈 목사의 고교 동창이기도 했던 아내 이진아 목사는, 우중충한 집안에서 자란 이 목사와 달리 언제나 활짝 웃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뭐가 그리 좋아서 웃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성경에 항상 기뻐하라고 했잖아요. 당신을 만나서 더 기쁩니다"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 그 긍정의 에너지에 매료된 이만호는 그녀와 결혼했고, 아내의 내조 덕분에 신학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는 조용기 목사라는 영적 거인을 만났다. 결정적인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대교구장이 부재중이던 어느 날 새벽 4시, 조용기 목사의 긴급 호출이 떨어졌다. "네가 올라가서 설교해라." 전도사 신분으로 3만 명 앞에 선 그는 시편 40편을 본문으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 같았던 자신의 절간 집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설교를 들은 조용기 목사는 그를 전격 발탁했다.
31세에 최연소 대교구장, 36세에 수석 부목사급 위치에 오르며 그는 여의도의 주요 인물로 급부상했다 . 조용기 목사가 자리를 비우면 전 세계로 위성 송출되는 주일 1~4부 설교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8톤 트럭으로 헌금을 실어 나르고, 매주 6천 명의 새 신자가 몰려오는 거대한 부흥의 현장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광야, 그리고 진정한 행복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정작 자신의 영혼은 탈진해가고 있었다. "성도는 넘쳐나는데, 제 영혼은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결정타는 자녀 문제였다. 조기 유학을 보낸 세 아이가 비자 문제로 추방 위기에 몰린 것이다.
1997년, 그는 결단했다. 보장된 성공과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주변에서는 "왜 그 좋은 자리를 버리느냐"고 만류했지만, 그에게는 '성공한 목사'보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행복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 더 절실했다.
99칸 절간의 저주를 기도로 끊어내고, 화려한 왕좌를 스스로 내려와 뉴욕의 광야에서 꽃을 피운 이만호 목사. 그는 "여의도 시절, 8톤 트럭으로 헌금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 수만 명 앞에서 설교했지만, 그때 누린 기쁨은 지금 이 안디옥교회에서 느끼는 행복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밀려드는 사역을 감당하기 바빴다면, 지금은 아내, 아들 목사와 함께 성도들의 눈을 맞추며 목회하는 매 순간이 "살 맛 나는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무 바쁘지 않게, 즐겁게 목회하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가 응답된 셈이다.
안디옥교회 강단에 선 그의 모습은 수십만 명의 환호는 사라졌을지언정, 한 영혼을 사랑하는 목자의 심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빛나 보였다. 성도들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작은 능력을 모아 8개의 선교지를 돕는 지금의 목회가 "진짜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만호 목사.
99칸 절간 집의 저주를 끊어내고 스스로 선택한 광야에서 비로소 찾은 이 평안은, 고난이란 결국 변장하고 찾아온 축복이었음을 그의 삶 자체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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