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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C 웹비나, 김정호 목사 “팬데믹에서 샬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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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0-08-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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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C 한인목회강화협의회(사무총장 장학순 목사)는 ‘팬데믹 이후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와 교회’란 주제로 두 번째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다. 온라인 세미나는 오는 8월 3일부터 24일까지 매주 월요일, 줌 미팅으로 4회에 걸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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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인 8월 3일(월)에는 1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인목회의 방향; 지속가능성 목회를 위한 파트너쉽 계발’이란 주제로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가 강사로 나왔다. 

 

UMC 한인교회중 플래그십 교회의 담임이라는 소개를 받은 김정호 목사는 교회나 교인 그리고 헌금의 크기를 말하지 않았다. 김 목사는 “코로나 이전에는 달성해야 할 숫자 목표를 세워놓고 강조를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숫자를 다 떼어버리고 현재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동안 내 목회는 열심히 하면 예배당 채워지고 교인들 헌금도 열심히 낼 것이고 계속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발전하는 목회를 가능하게 여겼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그런 생각을 절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이 주인 아니고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려는 목회였을 것에 대해  회개했다”고 고백했다.

 

김정호 목사는 “목회의 목표를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회심의 기회를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주었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가 끝나면 영적인 갈망이 더 커져서 다시 교회 부흥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어려울 것이다. 동시에 코로나 사태는 목회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주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주시는 시험이면서 은혜의 선물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호 목사는 포스트 팬데믹에서 남들 흉내내지 말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알아가면서 역량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족하고 어렵지만 서로 더불어 공존하면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포스트 팬데믹에서 8가지 목회의 패러다임 시프트에 대해 나누었다. 생존에서 지속가능성 그리고 성공에서 의미있는 위대한 삶, 이고(ego)에서 이코(eco)으로, 죽어야 사는 자연의 순리, 성도 한사람 스스로가 전천후 그리고 주체적 예배자로서의 중요성 회복,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중요성 회복, 흩어져서 연결되는 교회의 중요성, 교회 필수적 본질에 집중하는 중요성 회복, 교회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정당화하는 노력의 중요성 회복 등이다.

 

다음은 강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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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단 한가지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어떻게 내가 섬기는 교회를 지켜낼 수 있을 까 고민하고 걱정하다가 너무 답답하면 기도하고 그러고 또 걱정하고 고민하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부도 많이 못했고 항상 자신감이 없어서 내 개인의 생각보다 커뮤니티의 지혜를 통해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그럽니다. 그러면 나 혼자 알고 있고 경험한 것보다 더 다각적으로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오늘 발표도 제가 이제껏 생각한 것을 나누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에게 비판도 받고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것이 불확실하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아마 앞으로 목회하기 아주 많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 이것이 가장 분명할 것입니다. 지난 4개월 교회는 나라 행정차원에서 ‘비필수 업종’으로 구분되었다가 이제 예배당도 열리게 되지만 열려도 계속 어려울 것입니다.

 

그동안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부목사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문 철저히 닫아서 아무도 예배당은 말할 것 없고 교회 건물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7월 둘째 주일부터 11시 예배를 대면예배로 드리는데 사전에 예약한 교인들 가운데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체온을 재고 정해진 자리에 예배당 수용인원의 15% 정도만 들어오도록 하고 찬송은 속으로 부르고 아멘도 소리 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도가 끝나면 바로 나는 사무실로 올라와서 교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기피하고 거부하는 일이 그래야하는 일상(New Normal)이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회 웹사이트도 그렇고 복도 게시판에도 달성해야 할 숫자 목표를 세워놓고 강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미래에 이루겠다는 숫자를 다 떼어버리고 현재 지금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 목회는 열심히 하면 예배당 채워지고 교인들 헌금도 열심히 낼 것이고 계속 이런저런 목표를 세우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발전하는 목회를 가능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그런 생각을 절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이 주인 아니고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려는 목회였을 것에 대해  회개했습니다. 

 

목회의 목표를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회심의 기회를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가 끝나면 영적인 갈망이 더 커져서 다시 교회 부흥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어려울 것입니다. 동시에 코로나 사태는 목회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주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주시는 시험이면서 은혜의 선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 이야기를 드린다면 2년 전에 맨하탄에 건물을 인수해서 이제야 모든 레노베이션이 마무리 되어 사역을 시작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요한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에는 이민1번지인 플러싱을 중심으로하고 맨하탄 센타를 청년목회의 중심으로 삼고 더 나아가서 다른 지역에도 캠퍼스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현재 있는 교회 제대로 지켜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맨하탄 청년선교를 시작하기위해 목회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도시목회 콘소시움’을 만들어서 현재 맨하탄 중심으로 목회하는 목회자들을 모아 선교협력 체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맨하탄에서 목회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장소문제인데  WeWork개념으로 채플과 모임장소를 빌려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재정적 큰 부담없이 건물을 사용하고 서로 필요에 따라 목회자들은 달란트를 나누어서 합력하는 사역 파트너십의 플랫폼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불가능해 질 것입니다. 이제 정말 혼자  목회하는 것 어려워집니다. 나누고 서로 돕는 길만이 살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분명한 것은 불확실성과 불안입니다. 이거 우리가 금식하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계시로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것도 아니고 홍해를 갈라 바다를 건너게 하셨던 것과 같은 한번의 기적으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 아닙니다. 홍해는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셨지만 요단강은 리더들이 돌을 가지고 강 한가운데 서있어야 했던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버지니아주 미국인교회에서 목회하는 이기일목사가 ‘코로나 사피언스’라는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예측이 안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으로 미래를 우리가 만들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현재의 문제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무한히 긍정한 현대문명의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want’에서 ‘like’의 변화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가졌으니 나도 갖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것을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말합니다.”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남들 흉내내지 말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알아가면서 역량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과 둘째, 부족하고 어렵지만 서로 더불어 공존하면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저는 ‘해프타임(Half Time)’에서 저자 밥 뷰포드(Bob Buford)가 말한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시는 거룩한 몫을 감당하는 위대한 삶으로 재해석하고 싶습니다. 목회도 다른 교회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목회현장과 나라는 인간의 독특한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몫을 통해 위대한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동안 정신없이 올림픽 슬로건 따라가려고 한 것 그만하는 것입니다. 올림픽 모토가 뭔가요? 라틴어로 Citius, Altius, Fortius 영어로 Swifter, Higher, Stronger입니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입니다. 목회도 그럴 수 있습니다. 금메달 딴 사람은 광고수입으로도 일 년에 300만 불 벌고 0.1초 차이로 은메달 딴 사람은 금메달 따지 못한 것 분통해 하며 아이들 가르치면서 3만 불 번다고 합니다. 반면에 동메달 딴 사람은 메달 못 딸 줄 알았는데 동메달 따게 되어 행복하다고 하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금메달 1등만 독식하는 세상에서 교회도 그것 따라가다가 함께 미쳐가고 망하고 있었다고 하겠는데 하나님이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정신차리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어제 영화 ‘chariots of fire’를 봤는데 1924년도 파리 올림픽에서 주인공 리들이라는 달리기 선수가 올림픽 100미터 게임이 주일날 열리니까 참가를 거부합니다. 영국 올림픽위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황태자까지 동원해서 영국을 위해 왕실을 위해 애국해달라고 하는데 리들이라는 선수는 “하나님이 내가 얼마나 내 조국 영국을 사랑하는지 잘 아신다. 그러나 나는 주일은 안식일로 지켜야해서 올림픽 경기에 나갈 수 없다.”고 하고 거부합니다. 결국 주일은 안나가고 목요일에 400미터 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데 그때 시합 직전에 라이벌 미국선수가 리들에게 이런 쪽지를 줍니다. “나를 존귀케 여기는 자를 내가 존귀케 하리라.”(삼상 2:30)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중국 선교사로 나갔다가 2차 대전 말미에 중국선교지에서 순교를 합니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강하게!!! 이런 목표를 가진 올림픽 경기에 나가서도 ‘하나님 영광을 위해 나는 달린다!’라는 원칙을 지킨 믿음의 사람이 있더군요. 실제적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인데 결단하지 못했던 것들을 전세계적인 전염병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결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님의 때가 무르익었는지 모릅니다. 개교회 이기주의, 물량주의적 성공주의 이런 것들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인생 바닥에 떨어져서 다시 시작하려면 거추장스러운 치장들이나 껍데기 벗고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도 그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위기가 하나님 주시는 기회가 될 때 새롭게 거듭남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 패러다임 변화에 도움이 될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Survival에서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

  Success에서 Significant(의미있는 위대한 삶)

아까 거론한 책 ‘Half Time’에서 밥 뷰포드는 대부분의 사람은 생존을 위해 살고 소수의 우수하다는 사람들은 성공을 추구하지만 인생 후반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위대한 의미있는 삶’이라 한 것처럼 목회의 패러다임도 생존과 성공지향적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시는 의미있는 거룩한 삶 추구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대한 삶을 추구하는 이상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을 담아내는 목회를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 이것을 각자에게 주어진 목회현장에서 창의적으로 계발해 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은 물론 자원을 공유하는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절에는 사역분야마다 사역자들 다 고용하고 이런 저런 프로그램 운영해야 하고 카피머신도 하나씩 다 리스해서 돈 내야하고  15인승 교회밴 한두 대씩 보유해야 하고...  이제 그런 것 못합니다. 사역자도 그렇고 카피머신도 교회 버스도 동네 교회들이 나누너 사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자원을 나누고 공유하기 시작하면 예상치 않은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나눔을 통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2. 이고(ego)에서 이코(eco)로

 

지속가능성은 글로벌 시대의 과제입니다.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경향신문,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인터뷰)에 보면 동서양 여러 분야 권위자들이 코로나 사태를 보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반복되는 단어가 ‘자연파괴 경제’에서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경제, 글로벌에서 글로컬(지역중심세계화) 그리고 소비자로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는 사회적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제시합니다.

 

과학자이면서 ‘에코 페미니스트’ 반다나 시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란 엘리트의 머릿속에, 자본시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생계 속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목회에도 적용됩니다. 목회현장 바닥에서 전투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적인 말 함부로 하고 교회 비판하는 것 보면 참 답답합니다. 목회는 실전입니다. 풀뿌리(Grassroots)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장기판 훈수를 두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다수의 생계 속’에 있다는 말 잘 생각해야 합니다. 목회하는 사람들이 바닥의 현실과 바닥 생존에서 터득한 지혜들을 모아내어야 합니다.

 

농산물 생산은 물론 유통과정까지 대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제구조에서 지역경제는 파괴되고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어 작아졌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동안 백인중산층 써버브 대형교회를 교회 부흥의 모델로 삼았던 것 역시 많은 교회들의 의식구조 자체를 무기력하고 의존적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월마트와 같은 교회들에 의해 망하는 지역교회가 되지 말고 건강한 ‘글로컬’ 교회가 되어야 하는 도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텃밭농사를 좋아합니다. 후러싱제일교회가 위치한 동네는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동네에 공터도 없지만 교회도 건물과  주차장이면서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입니다. 그래서 나무상자로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웁니다. 땅 넓은 동네 사람들이 보면 소꿉장난이라 하겠지만 도시텃밭 만들기 운동은 사람을 무기력한 존재로 만드는 구조에 대한 저항이면서 책임적인 존재로의 회복운동입니다. 동네 땅값은 비싼데 홈리스들도 많고 저소득층이 많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이들 생활을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좋은 채소와 과일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시텃밭운동은 지역사회 건강을 지키자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이고(ego centered world)에서 이코(ecological centered world)로의 전환은 하나님 창조세계 돌봄의 책임자로서의 인간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코로나만이 아니라 지난 30년간 에볼라와 같은 새로운 질병 300여개가 대부분 산림이 파괴되면서 박쥐나 원숭이와 같은 짐승들이 사람사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났다고 하니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환경파괴와의 전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동안 마구잡이 확장 문화 바이러스가 교회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교회를 죽여 가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뉴욕시를 벗어나 롱아일랜드로 한 시간만 나가면 작은 오가닉 농장들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대부분 이들은 유기농 농작물 재배와 유통을 통한 생태살리기 운동을 합니다. 영리목적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자본투자와 생산과 유통 과정에 참여해서 유기농 채소를 공급 받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보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들이 이런 일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품 생산과 유통을 독점하는 대기업 중심에서 교회와 마을 공동체가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책임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교회는 물론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고에서 이코는 교회가 교회로서의 자리를 찾고 하나님이 천지와 사람을 만드시고 “참 좋다.”하신 그 하나님 기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3. 죽어야 사는 자연의 순리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산불이 오래 지속되어 많은 산림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부터 캘리포니아 산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졌습니다. 산이 새로 거듭난 것입니다. 알라바마나 플로리다 해변은 멕시코만(gulf of mexico)입니다. 태평양이나 대서양처럼 광활하고 파도가 강한 바다가 아니라 잔잔하고 파도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태풍이 불어와서 바다 바닥에 쌓인 것들을 뒤집어 놓습니다. 이것을 ‘churning process’라고 하는데 이 과정이 시작되면 바다 생태 먹이 사슬의 통로가 활짝 열립니다. 그래서 작고 큰 고기들이 몰려오게 되고 바다가 새롭게 살아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엄청난 파괴를 가지고 왔지만 동시에 교회 생태계가 살아나는 거듭남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현재 연합감리교회가 처한 현실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경제개념에서 끊임없이 가치가 떨어진 오래된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뜻을 가졌지만 코로나 사태는 교회도 지속가능성이 불가능한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창조를 이루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성도 한사람 스스로가 전천후 그리고 주체적 예배자로서의 중요성 회복

 

교회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 것인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하나님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질문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하던 것을 그대로 하지 못하게 되니까 난리가 나고 우리가 하던 것을 잘하려고 하니 힘든 것인데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입장에서는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집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예배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분별하도록 했습니다. 1990년대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형교회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예배에 중요하게 여겨진 것들이 전문적인 멀티미디어와 찬양팀이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오지 않고 화면으로 보게 되고 공인된 찬송가가 아니라 항상 새롭게 만들어지는 찬양이 소개되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교회가 되어 문화수준이 있는 젊은이들이 오기 어려운 교회로 평가되었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예배는 더 중요하게 정착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는 동시에 독소를 포함합니다. 인터넷이 없어도 전력이 끊겨도 세상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단독자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전천후 예배자가 되는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성경말씀을 암송하는 것과 찬송가를 외워서 부르는 것이 예배자 훈련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후러싱제일교회에서는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필수적 성경구절 50개 찬송 50개 선정해서 같이 배우고 부르자고 했습니다. 온 가족이 어디서나 언제나 함께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치스러운 프로그램들 많이 한 것 코로나 사태 일어나니 할 수도 없고 쓸모도 없습니다. 성경말씀과 찬송 그리고 기도 이 세 가지에 집중하는 목회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 필수적 본질이 아닌 많은 것들이 프로그램화 되면서 군더더기와 껍데기들이 많이 덮여져있습니다. 걷어내고 새롭게 거듭나는 과정이 요구될 것입니다.  

 

5.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중요성 회복

 

온라인으로 가정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성가대가 없으니 여러 가정에서 가족이 함께 부른 특송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고 예배 내용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드리는 ‘family friendly’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와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영적 권위 회복 그리고 자녀의 신앙에 대한 책임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유대교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제사 중심에서 디아스포라 2,000년 온 세계 흩어지는 역사를 통해 회당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가정이 신앙의 중심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세계만방 전도와 선교에 힘을 썼지만 오늘날 교회가 어려워지고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과는 달리 유대교와 모슬렘들이 자기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킴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상을 우리가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민교회가 언어별, 세대별 각각 예배 따로 드리게 되면서 신앙적으로는 각각 따로 분리된 영적 이산가족이 되는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현대 기독교의 문제 가운데 하나를 ‘주일학교’로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일학교 운동’(Sunday school movement)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수백 년간 성경공부와 어린이 예배 등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신앙훈련의 자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가정에서 교회로 자녀교육의 중심이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자녀의 신앙을 책임져야 하는 중심이 부모에게서 주일학교 전문가들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민교회는 사역자 변동도 많고 교인들이 교회 이동도 많다보니 자녀 신앙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 자녀 신앙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축소되고 무기력화 된 문제를 고쳐야 합니다.

 

영적 이산가족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민초기만 생각해도 언어가 조금 서로 불편하고 부족해도 함께 예배드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유하는 영역이 많았습니다. 전문적인 찬양팀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부르는 복음송들을 함께 부를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자원이 부족하기에 함께 섬기고 세우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언제부터인지 각자 따로 편리에 따라 자기들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현상(compartmentalization)이 일어났습니다. 가정의 중요성 그리고 세대 간 함께하는 교회의 중요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6. 흩어져서 연결되는 교회의 중요성 

 

건물중심 목회에서 사역중심 목회로 전환될 것입니다. 대부분 주일 한번 모이는 것으로 교회 건물이 사용되었습니다. 주중에 거의 쓰지 않으면서 주말이나 주말에 몇 시간 쓰려고 만든 건물들 이제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여러 방안이 모색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는 여러 형태의 ‘흩어져서 연결되는 교회‘가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각 지역의 나름대로 자원이 넉넉한 교회들은 예배당에 수천명 모이는 교회의 모델에서 ‘센터 교회’(center church)가 되어 100-150명 단위의 ‘파트너 교회’(partnership church)를 세우는 일을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100명 단위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목적보다 우리 감리교 전통으로 보면 요한 웨슬리의 밴드를 기본단위로 다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속회도 이제는 소그룹이라고 하기에 너무 큽니다. 후러싱제일교회에서는 ‘믿음의 친구들’이라고 해서 4명 단위로 두 가지 중점을 가진 모임을 몇 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친구들’을 영어로 ‘Band of Brothers/Sisters’라도 부릅니다.

 

이 이름은 당시 청년담당 목사를 하던 해병대 장교출신 김진우 목사가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따낸 것인데 사실 밴드라는 말은 감리교 웨슬리언적 용어입니다.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에도 보면 전쟁에 나가 생명을 서로 지켜주는 전우애를 보여줍니다. 그러니 교회에도 밴드는 영원한 생명을 같이 지켜주는 믿음의 동지모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친구들’ 모임은 매주 모여 두 가지를 나눕니다. 먼저 내 중풍병의 현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믿음의 대화와 기도하는 모임을 가지고 다음으로 주변 중풍병 걸린 친구를 주님께 데리고 오는 친구들 되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는 밴드의 중요성을 필요하게 합니다.

  

7. 교회 필수적 본질에 집중하는 중요성 회복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 많은 것들이 멈추게 되니 하늘과 땅이 맑아지는 환경회복의 증표들이 드러났습니다. 몇달 동안 교회 문이 닫혀있게 되면서 교회에 무엇이 필수적인 것이고 아닌지 구별하고 분별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재정적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기에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이는 결국 교회 필수적 본질을 바닥부터 다시 세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민교회 70년대 어려울 때 교인들이 자원해서 주일학교 가르치고 많은 부분 자원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의식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이민교회 부흥과 더불어 찾아온 것은 교인들이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사역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프로그램은 발전을 했지만 교인들은 사역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보면 개척교회를 할때나 교회 규모가 작을 때는 부모나 자녀들이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교회에 대한 애정과 주인의식이 강해서 공동체 의식이 있는데 교회가 커지면서는 모두 소비자로서 자기가 원하는 것 찾아다니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목사 자녀들도 보면 교회가 작을 때 부모가 목회하는 것 동지가 되어 잘 돕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같이 당하고 억울한 경험도 하지만 신앙적으로 단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좀 커지면 따로 놀기도 하고 신앙생활도 잘 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아플 때 굶어야 회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려움의 현실은  교회로 하여금 필수적 존재목적을 회복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8. 교회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정당화하는 노력의 중요성 회복 

 

앞으로 사람들의 영적인 갈망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거리두기’는 서로를 소외하게 만들 것이고 오히려 교회는 목회차원에서 성도들의 ‘하이 터치’에 대한 갈망을 영적으로 충족시킬 방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가 한편으로는 ‘하이테크’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터치’로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줌(zoom)과 같은 여러 문명의 이기를 통해 세계가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지역교회로서만이 아니라 목회의 ‘콘텐트’(contents)에 따라 지역을 넘어 연결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보통 생각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니까 큰 교회들 사역자들이 많은 교회들이 전문적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잘 할 것이기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닙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를 가지고도 콘텐츠만 좋으면 할 만 한 것이고 아무리 사이즈가 크고 돈이 많은 교회라고 해도 내용이 볼 일 없으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크다고 좋은 시절은 지났습니다. 

 

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라는 곳은 특별히 같은 교단에서 함께 목회한다는 것은 서로 더불어 합력함으로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목회를 만들어 가도록 부름 받은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족하지만 더불어 도우면서 행복한 비결을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협력하며 서비스 질을 고도화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보니 뉴저치 체리힐교회와 뉴욕 미드허드슨 교회가 여름성경학교를 온라인으로 함께했다고 합니다. 거리상으로 거의 4시간 넘는 거리입니다. 얼마 전 후러싱제일교회 중고등부 온라인 예배에 다른 도시의 유스 그룹이 함께 참여해도 되는지 문의가 들어왔기에 고맙고 대환영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이런 협력적 경쟁을 위한 플랫폼 공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세계적 유행병 팬데믹(pandemic)과 같은 어원에서 나온 Pandemonium은 밀톤의 소설 ‘실락원’(Paradise Lost) 에 나오는 지옥의 중심부입니다. 그런데 낙원 ‘파라다이스’는 구원받은 자들이 최후심판의 날 부활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실제적 ‘팬데믹’의 반대어는 ‘샬롬’(Shalom)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평화이고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세상의 위기입니다. 이것을 파라다이스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에게 주어진 예수 구원의 사명 하나님 구원역사의 기회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목회는 그동안의 목회보다 여러가지로 많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오히려 교회를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는 새롭게 거듭남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역사는 항상 고난을 통해 새로운 선교의 기회를 얻었고 복음이 확장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잠깐이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면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결과가 사도행전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아픔과 두려움이 현실이고 앞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이 가능하지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말씀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것이 언제인가 우리들의 복음확장 간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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