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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 (2) 설교 예화 찾으려 책 읽지 마라… '적후(積厚)' 독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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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6-01-1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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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뉴욕목사회 신년 세미나에서 김기석 목사는 자신의 독서 철학과 서재 활용법을 공개했다. 저술가이기도 한 그는 신학교 시절 '아웃사이더'로서 문학에 천착했던 경험을 고백하며, 당장 써먹을 실용서가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두텁게 쌓는(積厚)' 공부를 주문했다. 특히 책 뒷면 여백을 활용한 인덱싱과 비교 독서법 등 구체적 노하우를 전수하며 목회자들의 지적 나태함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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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두텁게 쌓는 것"이라며 순자의 적토성산을 설명하는 김기석 목사 (AI사진)

 

"저는 스물한 살에 처음 교회를 갔습니다. 신앙의 뿌리 없이 신학교에 가니 모든 게 낯설더군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 '너 시험 들었구나'라는 핀잔만 돌아왔습니다. 저는 정답이 아니라, '나도 그 고민 해봤어'라는 공감을 원했는데 말이죠."

 

1월 15일 오전, 뉴욕 한울림교회 강단에 선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원로)의 첫마디는 의외로 '부적응'에 대한 고백이었다. 뉴욕지구한인목사회가 주최한 신년목회자세미나 현장은 일순간 어색함에 잠겼다. 한국 교계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문학적 설교'의 대가로 불리는 그가, 사실은 신학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Outsider)에서 자신의 영성을 키워왔음을 토로했기 때문.

 

이날 세미나는 단순한 목회 방법론 전수가 아니었다. 한평생 텍스트와 씨름해 온 노장의 '읽기'와 '쓰기', 그리고 그 이면에 깔린 치열한 구도(求道)의 과정을 엿보는 시간이었다.

 

콜린 윌슨, 그리고 지적 방황이 만든 '통섭'

 

김기석 목사는 신학교 시절, 채플을 빠지고 학교 앞 서점으로 도망쳤던 일화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책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23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비평가가 된 저자를 보며, 동년배인 자신은 좁은 인식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이 책에 인용된 모든 텍스트를 다 읽겠다고요. 단테의 『신곡』부터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카뮈, 사르트르, 키르케고르까지. 1년 반 동안 그 책들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신학 수업은 출석만 하고 문학의 숲에서 길을 잃었던 셈이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방황이 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지금의 사고를 만든 결정적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서재는 신학 서적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수천 권의 시집과 소설, 인문학 서적이 그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는 "목회에 당장 써먹을 실용서보다는, 나를 지적으로 흥분시키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을 읽으라"고 조언했다. 이는 신학이라는 뼈대 위에 인문학이라는 살을 입혀야 비로소 동시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탄생한다는 지론이었다.

 

기억을 믿지 말고 '흔적'을 남겨라: 김기석식 독서법

 

참석자들의 관심은 그의 방대한 독서량을 소화하고, 이를 설교와 글쓰기에 녹여내는 구체적인 '기술'에 쏠렸다. 김 목사는 "기억력은 믿을 게 못 된다"며 "정밀한 메모 대신 책의 '물성'을 활용한다"고 답했다.

 

그가 공개한 비법은 '책 뒷면 여백 활용'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뇌리를 때리는 구절이나 영감이 떠오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저는 책 맨 뒷장 여백에 나만의 인덱스를 만듭니다. 핵심 주제어와 페이지 번호만 적어두는 식이죠. 나중에 그 주제가 필요할 때 뒷장만 보면 바로 해당 페이지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후배들에게 꼭 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단순한 발췌독을 넘어선 '비교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타자(The Other)'라는 철학적 개념을 예로 들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와 데리다가 말하는 타자가 어떻게 다른지, 각 책의 인덱스를 통해 비교하며 읽어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연결할 때 비로소 개념의 총체성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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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후(積厚), 흙이 쌓여야 산이 되고 짐승이 깃든다

 

김 목사는 이날 강연의 핵심 메시지로 순자(荀子)의 '권학편'에 나오는 '적토성산(積土成山)'과 '적수성연(積水成淵)'을 인용했다. 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 짐승이 저절로 깃들고,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면 고기가 논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가 주목한 글자는 쌓을 적(積)과 두터울 후(厚)였다.

 

"공부는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얇게 쌓으면 안 됩니다. 두텁게 쌓아야(積厚)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 예화나 찾으려고 급하게 책을 뒤적입니다. 그건 얇은 공부입니다. 평소에 두텁게 쌓아둔 인문학적, 신학적 체력이 있어야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는 유능한 서기관이 됩니다. 내 안에 맑은 기운이 쌓여야 신령함이 깃드는 법입니다."

 

김기석 목사는 목회자의 독서가 '생존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위한 내공'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급조된 설교는 바닥이 드러나지만, 두텁게 쌓인 독서에서 나온 설교는 청중의 영혼을 울리는 깊이를 가진다는 것.

 

"바빠서 못 읽는다? 핑계일 뿐"

 

은퇴 후에도 그의 루틴은 현역 시절과 다르지 않다. 매일 아침 식사 전 100페이지,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오가는 길에 80페이지, 일과 중에 읽는 분량을 합치면 하루 평균 250~300페이지를 읽는다. 1년이면 100권이 훌쩍 넘는 분량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가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보다 더 바쁘신 것 같습니다(웃음). 독서는 시간이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습관입니다. 10분, 15분의 자투리 시간을 모으고, TV를 끄면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 쌓임의 시간이 결국 설교의 결을 바꿉니다."

 

김기석 목사는 40년간 신문과 잡지에 글을 연재해 온 원동력 역시 이 '자투리 독서'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비워둔 마음으로 서가를 바라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말을 걸어온다는 것.

 

뉴욕의 차가운 겨울 아침, 김기석 목사는 목회자들에게 '쉬운 은혜' 대신 '고단한 독서'를 주문했다. 강단 아래 책상 위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설교의 무게를 결정하며, 그 무게를 견디는 힘은 오직 '두텁게 쌓인 활자'에서 나온다는 서늘한 교훈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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