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나서자 요원들이…” 한인 신부 딸 구금에 미 언론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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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2ㆍ2025-08-04 08:4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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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이민법원 출석 후 ICE(이민세관단속국)에 기습 체포된 한인 유학생 고연수 씨의 석방을 위해 뉴욕 종교계가 나섰다. 고 씨 변호인은 합법 체류를 주장하는 반면, 국토안보부는 비자가 2년 전 만료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미 주요 언론들도 이번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 연방 이민국 앞에서 열린 고연수 학생 석방 촉구 기도회 (ABC7ny 보도화면 캡처)
스무 살의 한인 유학생이 정기 이민법원 심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ICE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뉴욕의 다인종·다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해당 학생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성공회 뉴욕교구, 종교간 협력센터, 뉴욕 이민자연맹 등은 오는 8월 2일 오전 10시, 맨해튼 연방 이민국 건물 앞에서 고연수(20) 학생의 석방을 위한 기자회견 및 기도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퍼듀 대학교에 재학 중인 고연수 학생은 성공회 사제인 김기리 신부의 딸로, 지난 7월 31일 이민법원 출석 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현재 뉴욕 ICE 구금 시설에 수감 중이다.
고 학생 측 변호인에 따르면, 고 학생은 2021년 종교비자(R2)로 입국해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었으며, 이날 법원 출석은 다음 심리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통상적인 절차였다. 하지만 국토안보부(DHS)는 고 씨의 비자가 2년 전에 만료되었다고 주장하며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각기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하며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미 언론, 엇갈린 주장 속 사건 조명
CNN은 이번 사건을 가족의 이야기와 국제적 차원에서 다루었다. CNN은 고 씨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막 두 번째 학년을 준비하던 딸에게 이런 일이 생겨 가슴이 찢어진다"는 심경을 전하며, 고 씨가 루이지애나에 위치한 구금 시설로 이송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대한성공회의 성명을 인용해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와 정의의 상징이자 한국의 굳건한 파트너였다"며, 한국 정부 역시 이번 사안을 인지하고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이번 사건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분석했다. 뉴스위크는 고 씨가 체포된 당일, 페루 출신의 59세 망명 신청자 '케티'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구금되었다고 전하며 이 문제가 개인의 사건을 넘어선 패턴임을 시사했다. 특히 고 씨가 수감된 시설에 샤워 시설이나 침대, 따뜻한 음식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금 조치의 비인도적인 측면을 부각했다.
FOX5는 고 씨 변호인과 국토안보부의 엇갈리는 주장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양측의 입장을 명확히 대비시켰다. FOX5는 "고 씨의 변호인은 비자가 오는 12월에 만료되며 합법적인 상태라고 주장한다"고 전하는 한편, 국토안보부 트리샤 맥러플린 공보차관의 성명을 인용해 "고 씨는 2년 이상 만료된 비자로 체류한 불법 체류자"라는 정부 측의 입장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를 통해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인 '비자 유효성'에 대한 논란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뉴욕 지역 방송인 ABC7ny는 고 씨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안타까움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방송은 고 씨의 남자친구 레오 추 씨가 "어머니와 함께 있던 그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그날 밤 내게 전화했을 때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고 말한 내용을 전했다. 또한 친구 가브리엘라 로페즈 씨의 인터뷰를 통해 고 씨가 청문회 전부터 현 이민 정책 분위기 때문에 불안해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한 개인의 두려움이 현실이 된 비극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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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의견 Jonathan
우리가 미국에 이민을 왔다고 해서 무조건 이민자들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설명입니다. 왜 저의 설명이 이런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는 아닙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저는 이민 문제를 정치가 아닌 도덕성과 영적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 많은 한인 교회들이 "이민자 보호" 운동을 하지요. 왜? 이민을 받아들여야 교회 성도 숫자가 증가한다고. 그리고 헌금/십일조 더 들어오니까. 하지만 이민자들이 이민오면 꼭 우리들이 다니는 교회로 온다는 보장은 있을까요? 또한 모든 이민자들이 기독교인들인가요?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도 불법 이민자들을 체포하고 추방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같은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미국에서 이민자들이라고 다 이민자들 편만들면 한국의 입장을 어찌 될까요?
https://drive.google.com/file/d/1oUv_5EkeiYCk7fhZCFT6C_D2Da7aCdPq/view?usp=sharing
https://drive.google.com/file/d/1pa5G8ohJvYA2kFoPg8UrEPEtnDAJFU__/view?usp=drive_link
우리 이민자들은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 는 말을 들으면 불쾌하고 기분 나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인 우리 이민자들도 다른 이민자들에게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 는 위선적인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로마서 2:1).
또한 합법적으로 이민온 같은 한인들에게도 불공평합니다. 같은 한인들이라도 불법으로 이민온 한인들을 못마땅하지요. 왜? 자신들은 합법적으로 왔으니까 불법은 불공평하거든요. 또한 불법 이민자 사역자들을 청빙하지 않는 한인 교회들도 많다는 사실을 아 실 겁니다.
멕시코를 예를 들겠습니다. 저는 병원 사역 경험이 있는 원목 출신입니다. 불법 멕시코 이민자 환자들을 만났는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미국으로 와서 일하고 번 돈을 멕시코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왜? 돈을 보내면 그것을 멕시코 정치인들과 범죄자들이 (Mexican cartels) 가로채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멕시코가 안전하고 잘사는 나라이면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넘어오려고 할까요?
이민자들은 레위기 19:34 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지만 그러면 다른 성경 구절을 볼까요?
다른 나라의 법도 지키라는 말씀: 민수기 15:30-31/19:10
국경을 세워라: 민수기 34:1-15
다른 민족의 땅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씀: 신명기 2:4-19/27:17
타국인들 돕기전에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이웃들부터 돌보라는 말씀: 신명기 15:1-3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민수기 20:14-21
에돔이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락 없이 국경을 넘으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에돔은 군대를 보내서 자신들의 국경을 보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서자 에돔은 더 이상 쫓지 않았습니다. 에돔은 자신들의 국경을 지킬 임무와 권위가 있었던 겁니다. 또한 19절에 값을 줄 것이라는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을까요?
불쾌하실 수 있지만 그래도 말씀 드립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다른 이민자 비판 할 자격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자녀 낳으면 바로 시민권을 받는다고 미국으로 넘어오려는 한인 여성들이 많지요. 제가 감히 말씀드리는데 이건 비겁한 행동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이 저출산 문제로 시달리는데 미국에 와서 아이 낳으려고 한다? 이게 정말로 올바른 행동일까요?
마지막이 가장 심각합니다.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이단 믿음이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옵니다. 솔로몬왕의 아내들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겁니다. 그 내용은 아시겠지요.
이것이 우리가 이민자들이라고 해서 무작정 이민자들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는 이유입니다. 아주 신중하고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joshua105235님의 댓글
joshua105235
Jonathan님의 글은 이민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며, 성경 구절과 현실적인 경험을 통해 조심스럽게 논지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글에는 고민과 진정성이 묻어나오고, 그 점은 분명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 논점에서 성경 본문의 해석이 단편적으로 적용되었고, 복음의 핵심 정신과는 충돌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신학적·성경적 균형을 갖춘 반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제 댓글은 그리스도인의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려는 마음으로 작성했습니다.
1. "우리가 이민자라고 무조건 이민자 편에 서면 안 된다"?
그 말 자체는 들을 때 일리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편을 든다’는 극단을 설정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식의 논리 구성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무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민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민자(타국인)에 대해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난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라" (레위기 19:34)
이 말씀은 단순한 역사적 맥락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윤리 기준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나그네였던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를 자비롭게, 존중하며,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 “이민자 사역은 교회 성장과 헌금 유치를 위한 전략일 뿐이다”?
일부 교회가 현실적으로 그런 면을 고려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민자 사역을 동기 불순으로 단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외모나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사무엘상 16:7)
진정한 교회는 이민자를 '헌금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잃어버린 영혼으로 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7)
교회는 숫자를 채우는 기관이 아니라, 사랑으로 잃은 자를 찾아 나서는 복음 공동체입니다.
3. “모든 이민자들이 기독교인도 아닌데 왜 교회가 보호해야 하나?”
복음은 원래부터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희망입니다. 교회가 복음적이라면,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에게도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셨고,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고, 이방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을 깨달았도다.” (행 10:34–35)
복음은 국적이나 종교, 배경에 따라 제한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민자에게 다가가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4. “불법은 불법이다. 합법 이민자에게도 불공평하다”
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법보다 더 깊은 차원의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은 불법자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은혜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린도전서 6:11)
예수님은 불법을 저지른 세리와 창녀들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에게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합법적인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5. “멕시코와 같은 나라의 부패와 범죄는 이민 문제의 본질이다”
이것은 구조적 악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오류입니다. 성경은 어떤 집단 전체를 일반화해서 정죄하라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자 편에 서셨습니다.“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빈민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며” (출애굽기 23:3)
구약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억눌린 자의 편에 서신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소외된 자, 사회적으로 무가치하게 여겨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6. “민수기와 신명기 말씀처럼, 국경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지켜야 한다”
민수기 34장과 신명기 2장에서 언급된 국경 개념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종교적 맥락에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입니다. 이를 현대 국가의 이민정책에 문자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왜곡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이방 지역, 갈릴리 등 경계와 문화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셨고, 그리스도인은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마태복음 28:19)
복음은 국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생명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7. “이민자들은 이단이나 다른 종교를 가져온다 — 솔로몬의 아내들처럼 위험하다?”
솔로몬이 타락한 이유는 이방 여인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그들의 우상숭배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인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영적 타협입니다.
사실, 복음을 가진 교회가 진리를 견고히 붙든다면, 이방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유입은 오히려 선교의 기회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보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크심이라” (요한일서 4:4)
교회는 두려워 숨는 곳이 아니라, 진리를 들고 나아가는 복음의 전초기지여야 합니다.
8. “한국인들도 위선적이다 — 자기들만 시민권 얻고 다른 이민자 배척한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국인들도 이민자 문제에 있어 위선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다른 이민자를 비판할 면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위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여, 네가 판단하는 그 일로 네 자신을 정죄하나니…” (로마서 2:1)
복음은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선포합니다.
위선은 어느 민족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선을 회개하고, 겸손히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적은로, 우리가 이민자니까 이민자 편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자들 편에 서야 합니다.
복음은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합법자’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교회는 성벽이 아니라 피난처이며, 감시탑이 아니라 등대입니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31)
이민 문제를 대할 때, 우리는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 기울여야 하며,
정치적 구호보다 복음의 명령을 더 신실히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정체성은 우리를 이민자의 편에 서게 합니다.
아니, 복음의 편에 서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