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종합병원 이영만 전도사가 100파운드의 야윈 몸으로 전하는 고백
페이지 정보
탑1ㆍ 2026-03-07관련링크
본문
[기사요약] 20년 넘게 간 이식, 피부암, 혈액암 등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을 이어온 이영만 전도사가 오는 5월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8번 응급실에 실려 가는 고통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은 그와 가족, 지인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고난을 이기는 십자가의 은혜를 전한다.
![]()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영만 전도사와 이문희 권사 부부
새벽녘, 아버지는 아들의 간절한 부름에도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오랜 투병으로 지친 몸에 갑작스러운 이상이 생기며 잠시 의식이 흐릿해진, 어느 고단했던 밤의 풍경이다. 20년째 사선을 넘나들며 병마와 싸워온 이영만 전도사의 삶은 이처럼 매 순간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이영만 전도사의 지난 세월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2005년 간 이식을 시작으로 2013년과 2023년에는 피부암, 2019년 구안와사, 2021년 장 절제술을 거쳐 혈액암의 일종인 B세포 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육체는 날로 쇠약해졌지만, 그의 영혼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2025년 5월부터는 20년 전 이식받은 간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찾아왔다. 위장 내 정맥류와 혈전 등으로 인해 체내에 출혈이 발생하는 심각한 응급 상황이 이어졌다. 몸의 해독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체내에 독소가 쌓였고,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인지 능력을 잃고 기억이 지워지는 아찔한 위기까지 찾아왔다.
기억이 멈춘 밤, 가족의 눈물로 지켜낸 생명
아내 이문희 권사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문희 권사는 "새벽 시간, 남편이 평소와 달리 의식이 흐려진 상태로 발견됐다. 가족을 명확히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모습을 보여 급히 구급차를 불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플러싱의 병원을 거쳐 맨해튼의 대형 병원으로 긴급 이송될 만큼 상태는 위중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렇게 구급차에 올라 응급실 문을 두드린 횟수만 여덟 번에 달했다.
정작 환자인 이영만 전도사는 자신이 겪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문희 권사는 남편이 그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든 괴로움을 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이영만 전도사는 신학교 학업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봄 학기를 마지막으로 오는 5월 졸업 가운을 입는다.
몸 상태가 악화되어 휴학을 고민하던 그를 붙잡은 것은 고 김성국 전 학장의 생전 모습이었다. 학생회장직을 맡았던 이영만 전도사는 투병 중에도 자신을 격려하던 김 전 학장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학장님 본인도 아프시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제 손을 잡고 기도해주셨다. 한 사람이라도 신학교를 잘 졸업해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며 늘 용기를 주셨다"고 회상했다.
![]()
▲종합병원 이영만 전도사가 100파운드의 야윈 몸으로 전하는 신앙고백
기도의 끈 끊어진 날, 세 번의 노크 끝에 열린 신학교 문
늦은 나이에 병든 몸을 이끌고 신학교 문을 두드린 배경에는 뼈저린 후회가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간 이식을 받을 당시, 이영만 전도사는 병이 나으면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어 일하겠다고 서원했다. 건강을 되찾자 약속은 흐려졌다. 테니스를 아침저녁으로 치며 세상의 즐거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영적 방황은 2022년 어머니와 장모님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끝이 났다. 든든한 기도의 배경이었던 두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이영만 전도사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열렬한 중보기도 덕분에 자신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20년 전의 서원을 잊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초라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2022년 봄, 이영만 전도사는 늦은 나이에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그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신학교를 찾아갔지만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문 앞에서 두 번이나 발길을 돌렸다. 세 번째 찾아간 날, 이번에도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며 그를 맞이했다.
첫 학기를 마친 그는 섬기는 교회와 교단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로 편입하며 본격적인 신학 훈련을 이어갔다. 과거 수줍음이 많았던 그는 신학을 공부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영적 자신감도 얻었다.
불평 한마디 없는 성품, 가족을 향한 '엄격한 사랑'으로 승화
긴 투병 생활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무거운 십자가다. 아내 이문희 권사는 20년 넘게 남편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이문희 권사는 "젊은 나이에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견디냐며 주변에서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그때 힘든 줄 몰랐다. 하나님께서 미리 마음을 단단하게 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영이 충만하면 세상의 고난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생한 간증이었다.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친구의 증언은 이영만 전도사의 숨겨진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성창희 권사는 "20년 동안 아프면서도 인상 한 번 쓴 적이 없다. 본인이 아프면서도 의사나 간호사 앞에서는 항상 안 아픈 것처럼 웃어주고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한다"고 말했다. 이문희 권사 역시 조금만 아파도 짜증이 나는 인간의 연약함을 짚으며, 오랜 세월 불평 없이 고통을 인내하는 남편의 긍정적인 성품을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로 돌렸다.
최근 이문희 권사는 남편에게 한층 엄격해졌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문희 권사는 "밥을 먹고 나면 곧바로 누우려 하지 말고 10분이라도 걸어라. 비싼 음식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좋은 채소를 섭취해야 한다"며 애정 어린 잔소리를 쏟아냈다.
이영만 전도사는 졸업 후 계획했던 총회 고시를 내년으로 미루고, 30년간 쳐온 테니스로 다져진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건강 회복에 전념할 예정이다. 쉬는 날마다 집으로 찾아와 함께 울며 기도해 준 동역자들의 사랑이 부부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준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
▲이영만 전도사는 2024년 신학교 찬양축제 간증에서 세 가지 감사를 고백했다
"가족 대신 내가 아파서 감사합니다"…십자가 고난 묵상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든 이영만 전도사가 벼랑 끝에서 발견한 진리는 다름 아닌 '감사'였다. 그는 지난 2024년 신학교 찬양축제 간증에서 세 가지 감사를 명확히 고백했다. 첫째는 아침에 눈을 뜨는 하루하루의 기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천국의 소망이다. 둘째는 간절히 눈물로 기도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존재다.
마지막 세 번째 감사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영만 전도사는 "저에게 아픔을 주시고, 두 아들과 며느리, 아내 등 우리 가족 누구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자신이 아닌 아내나 자녀가 아팠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자신이 대신 감당할 수 있어 오히려 은혜라고 말했다.
투병 중인 성도들을 향해 이영만 전도사는 세 가지를 당부했다. 육체의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한 발자국씩 나아갈 것, 주변의 동역자들을 굳게 의지할 것, 세상의 끈은 놓아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절대 끊지 말 것이다.
뼈와 가죽만 남아 체중이 100파운드(약 45kg)에 불과한 앙상한 몸이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영만 전도사는 "누구나 죄가 있고 고통이 따르지만,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다"며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했다.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내 육체의 아픔을 예수님의 보혈로 감당해 내자는 그의 묵직한 고백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