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영웅들 뒤엔 아무도 없었다"… KWMC, '끊어진 허리' 잇기 위한 40년 만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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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988년부터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를 이끌어온 KWMC가 2026년 제11차 대회를 앞두고 '창조적 파괴'를 선언했다. 1세대 리더십의 고령화와 중간 허리의 실종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20명 모집 MK 장학금에 475명이 몰린 사태는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실무진은 '강의' 대신 '예술(Arts)'을, '열정' 대신 '데이터'를 생존 전략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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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KWMC 성보영 협동총무, 조용중 사무총장, 이우승 총무
"솔직히 말해봅시다. 지금 우리 선교 현장의 머리색이 어떻습니까? 다 하얗게 셌습니다. 문제는 그 뒤를 이을 '검은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난 12월 8일부터 사흘간 뉴욕소재 퀸즈한인교회(김바나바 목사)에서 열린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 제38차 연차총회. 2026년 5월 개최될 제11차 한인세계선교대회의 청사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리더십들의 표정에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1988년 1차 대회 이후 40년 가까이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를 이끌어온 '항공모함' KWMC가 마주한 현실은 명확했다. '1세대의 급격한 고령화'와 '젊은 리더십의 실종'이다. 기자단과 만난 조용중 사무총장은 인터뷰 내내 이 문제를 뼈아프게 지적했다. 그는 2026년 대회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끊어질 위기에 처한 한인 선교의 맥박을 다음 세대에 이식해야 하는 '심폐소생술'의 현장임을 숨기지 않았다.
위기의 징후 1: '지는 해' 1세대, 그리고 텅 빈 '허리'
"초창기 멤버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용중 사무총장의 진단은 냉혹했다. 80~9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전 세계로 뻗어나갔던 1세대 선교사들은 이제 70대를 훌쩍 넘겨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 KWMC를 지탱하던 거목들이 하나둘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레 동력은 약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허리'가 없다는 점이다. 조 사무총장은 "지난 몇 년간 김학진, 박성일, 백운영, 노창수 목사님 등 소위 '차세대'라 불리던 분들이 리더십에 들어와 애썼지만, 냉정히 보면 그분들도 이제 시니어 그룹에 속한다"고 털어놨다.
1세대의 헌신을 보고 자라, 40~50대의 나이로 현장을 진두지휘해야 할 '중간 리더십'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소위 '낀 세대'의 부재는 선교 전략의 단절은 물론, 2030 젊은 세대와의 소통마저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다. 조 사무총장은 "지금 세대교체를 하지 못하면 한인 선교는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제38차 연차총회에서 김바나바 목사(퀸즈한인교회)가 공동의장에 합류하고, 박은성 목사(나성영락교회) 등 40~50대 젊은 목회자들이 전면에 등장하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위기의 징후 2: 475명의 지원자… MK들이 보낸 무언의 구조신호
이 '단절'의 징후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KWMC가 이번 회기 중 야심 차게 준비한 MK(선교사 자녀) 장학금 사업이다. 실무진은 당초 20명 정도의 학생을 선발해 1인당 소정의 장학금을 주며 격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전 세계에서 무려 475명의 지원서가 쇄도했다.
이는 단순한 인기가 아니었다. 1세대 부모를 따라 선교지에서 자랐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정작 교계와 파송 교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다음 세대의 '아우성'이었다.
조 사무총장은 "475명이라는 숫자를 보고 우리 모두가 말을 잃었다. 부모 세대의 사역에 가려져 있던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절실하게 거기 있었던 것"이라며 "우리가 그동안 '선교'만 외치느라 정작 '선교사의 미래'인 자녀들을 놓치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결국 예산을 급히 증액해 3만 달러를 조성, 6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지만, 탈락한 415명의 명단은 KWMC 리더십에게 "다음 세대를 세우지 않으면 선교의 미래는 없다"는 서늘한 경고장이 되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2026년 대회의 방향성을 '어른들의 잔치'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플랫폼'으로 급선회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솔루션 1: 경제학 박사들이 선교 본부에 떴다… '데이터 경영'의 시작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등판한 구원투수는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조 사무총장과 호흡을 맞추는 이우승 총무는 각각 경제학과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직 출신들이다. 늦깎이로 목회자가 되어 "데이터 없는 선교는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라는 기조 아래, 지난 1년간 미주 한인교회 선교사 파송 현황을 전수 조사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88년 1차 대회 당시 10명 미만이던 선교사가 40년이 지난 지금 몇 명인지조차 정확한 데이터가 없었다. 각 선교 단체는 보안이나 행정력 부재를 이유로 명단을 공유하기 꺼렸다. 이우승 총무를 필두로 한 실무진은 3월부터 6월까지 끈질긴 추적 조사를 벌였고, 7월 분석을 거쳐 약 1,500명이라는 유의미한 숫자를 도출해 냈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향후 KWMC가 은퇴 선교사 대책이나 지역별 재배치 전략을 짤 때 사용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주먹구구식 '열정'이 아닌, 차가운 '통계'와 '전략'으로 선교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다.
솔루션 2: "강의는 가라"… 일본 닛코(Nikko)에서 시작된 '아트(Arts) 혁명'
통계가 '이성'이라면, 다음 세대를 끌어안을 '감성'의 무기는 바로 '예술(Arts)'이다. KWMC는 2026년 대회의 핵심 키워드로 '아트 인 미션(Arts in Mission)'을 선언했다. 왜 갑자기 예술인가?
기존 선교 대회에서 문화 예술은 설교 전 분위기를 띄우는 '특송' 정도의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 사무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예술은 보조 수단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선교 언어이자 주체"라고 규정했다. 이는 지난 3월 일본 닛코에서 열린 '아트 미션 서밋'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 세계 43명의 예술 선교사들은 "예술가가 곧 선교사"라는 합의를 도출했다.
성보영 협동총무는 "K-Pop 공연으로 젊은이들을 모으겠다는 얄팍한 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예술가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예술적 재능 자체가 '사역'임을 인정하고,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논리적인 설교보다는 이미지와 경험을 중시하는 다음 세대에게, KWMC는 '예술'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솔루션 3: 'Business AS'가 아니라 'Business AND'
신학적 전략의 수정도 감지됐다. 조 사무총장은 인터뷰 도중 '비즈니스 선교(BAM)'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는 'Business As Mission(선교로서의 비즈니스)'보다 'Business And Mission(비즈니스와 선교)'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전자가 목회자 선교사가 현장에서 비즈니스를 배워서(주로 서툴게) 사역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평신도 전문가가 자신의 탁월한 직업적 역량을 그대로 가지고 선교에 동참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선교사는 목회자여야 한다"는 1세대의 고정관념을 깨고, 전문직 평신도들을 선교의 주역으로 초대하겠다는 개방형 전략이다.
2026년 뉴욕,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선 지역 교회와의 연합
모든 전략이 집결될 2026년 5월 대회의 장소 선정도 치밀하다. 과거처럼 외딴 수양관에 선교사들을 격리하는 방식을 버리고, 도심 한복판인 '뉴욕 퀸즈한인교회'를 택했다. 핵심은 '지역 교회 파트너십'이다.
대회 기간 선교사들은 호텔뿐만 아니라 뉴욕 성도들의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된다. 대회가 끝나는 목요일 이후부터 주말까지는 뉴욕 일원 지역 교회로 흩어져 '선교 주일'을 인도한다. 주최 측은 1,200명의 등록 인원 중 절반을 청년과 MK로 채우고, 저녁 집회에는 연인원 2,000명의 지역 성도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KWMC의 2026년 프로젝트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1세대의 퇴장과 리더십 공백이라는 '위기' ▲475명 MK들의 아우성이라는 '충격'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데이터와 예술이라는 '혁신'이 뒤엉킨 거대한 실험이다.
"은퇴하는 영웅들의 뒷모습을 보며 박수만 치고 있을 순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선수들이 뛸 운동장을 만들어야죠."
조용중 사무총장의 말처럼, 늙어가는 선교 현장에 새로운 심장을 이식하려는 KWMC의 사투가 뉴욕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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