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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콜만 PCUSA 총회장 “교단차원에서 엘리야의 죄를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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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ㆍ2019-05-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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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NCKPC) 제48회 총회 및 전국대회가 “남은 자는 회복하는 자입니다” (욜 2:32, 롬 11:4~5)라는 주제로 5월 21~24일(화~금)의 일정으로 플로리다 올랜도 Rosen 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관련기사]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총회 제48회 총회 및 전국대회

http://www.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9471

 

총회 둘째 날인 22일(수) 오전에는 주강사인 PCUSA 총회장 신디 콜만 목사와 예장 통합 총회장 림형석 목사 등이 강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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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총회장 림형석 목사는 “영적부흥의 마중물로서의 NCKPC(합 3:2)”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먼저 영적부흥이 무엇인가를 소개했다. 이어 부흥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전하며 부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부흥은 계속적인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또 영적부흥의 필요성을 나누며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인교회를 위해서도 더나아가 미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을 통해 영적부흥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나누었다. 림형석 목사는 △부흥은 기도를 통해 온다(10:2) △부흥은 전도를 통해 온다(10:19-23) △부흥은 말씀 선포를 통해서 온다(10:44) △부흥은 회개를 통해 온다(역대하7:14)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미주한인교회들의 부흥을 위해 목회자가 먼저 부흥을 경험하고, 우리교회가 부흥을 경험하고, 한인교회 전체가 부흥을 경험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구했다. 

 

PCUSA 총회장 신디 콜만 목사는 이에 앞서 총회 주제인 “남은 자는 회복하는 자입니다”의 성경구절인 요엘 2:32과 로마서 11:4~5 말씀과 이것과 연관된 성경말씀을 놓고 묵상하고 기도한 내용을 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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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32)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장 4-5 절) 

 

로마서 본문에 언급된 이 사건은 엘리야와 선지자로서의 그의 시대에 대한 더 큰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하며 하늘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불로 쏟아져 내리기 전 엘리야는 저들을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이후 그는 서둘러 도망쳤고, 아무도 닿을 수 없는, 숨을 수 있는 동굴을 발견합니다. 그곳에 도착한 엘리야는 맥이 빠졌습니다. 그는 바로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흠뻑 젖어 있던 희생제물을 불덩어리로 태워 버리신 하나님, 하늘에서 비를 막아 온 땅에 가뭄이 들게 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 말입니다. 엘리야는 죽기를 빌며, 그의 사역과 소명을 끝내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엘리야는 왜 맥이 빠졌고 죽기를 간구했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홀로 하나님께 충성했고, 홀로 전능자의 뜻을 행하고 있었으며, 홀로 이스라엘의 의를 지키고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목회 사역을 하며 어려움을 경험할 때에 파트너 혹은 동역자를 볼 수 없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봉사하는 회중이 어떤 새롭고 흥미로운 방법들로 이웃을 섬길지에 대한 비전을 가진 목사일 수 있습니다. 누구도 교회의 사역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장로일 수도, 그 누구도 진실되고 충분히 예수님을 따르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회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또한 독선적인 분개의 함정에 우리를 빠지게 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엘리야에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하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가 했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엘리야에게서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만 홀로 남은 충성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손길을 보지 못하기에, 또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가질 수 있는 오해입니다. 엘리야는 그 자신만이 의로운 남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만이 하나님의 선하신 이름을 지킬 책임을 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신념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변에서 일하셨던 많은 방법들에 대해 눈을 감게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 함정에 매우 쉽게 빠집니다. 우리가 그럴 때, 주님의 몸 안에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몸의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 대해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같은 방식으로, 몸의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행하는 방식이 나와 다르므로 너는 몸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남은 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는 그와 더불어 칠천 명의 신실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엘리야는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엘리야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엘리야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의롭고 신실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에 계속해서 영광을 돌리기 위한 남은 자들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증거할 사람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남은 자들을 결정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신실한 사람을 결정하십니다. 우리가 엘리야의 교훈을 배우고, 실망하여 숨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부르시는지에 대해 걱정하거나 의심하는 대신에,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고 계신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요, 우리 마음의 모든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우리를 부르시는 그 특별한 사역은 우리 마음과 생각과 육신의 합당한 초점이 됩니다. 

 

엘리야의 이야기와 요엘서를 통해 배우는 두 번째 교훈은, 남은 자들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모임을 위한 주제로 사용된 구절의 바로 전에, 우리는 주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실 것이라고 증거하는 선지자 요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엘 2:28~29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들으십니까? 몇몇이 아니라 만인에게, 단지 가치 있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명백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입니다. 정말로 분명하게 확인합시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그룹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자녀들, 늙은이, 젊은이, 심지어 남종과 여종. 

 

우리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이 누군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 고민하며 다가간 것을 묘사한 것을 봅니다. 광야에서 엘리야가 심통이 났던 것처럼, 제자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무리에 있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9:38~41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막 9:38-41) 만약 우리가 주님의 일을 위한 부르심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고, 우리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성령님과 그 일을 위해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에 의해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 염려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 중 하나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자격과 공로가 아닌 오직 은혜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들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결코 우리의 행위나 그것의 결핍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세워진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걱정하거나 심지어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역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여부를 가늠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지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침은 예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요점(강령)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부르심과 사역을 가늠하거나 평가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풍성하고 충분합니다. 

 

이 구절들과 이번 주제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세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만이 신실한, 하나님의 은혜의 영원하신 팔에 기댄 사람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벌어진 틈을 채우는 치유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복음의 기수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풍성한 삶으로 다른 이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면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가 우리가 가는 곳을 결정합니다.  만약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다면, 그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에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우리의 초점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이끕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전하기 위해 불완전한 도구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은 진정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초점을 잃었고, 남들을 정죄해왔고, 그 누구도 우리들만큼 신실할 수 없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으로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악일 때, 우리가 완전히 자기중심적일 때, 광야에서 삐죽거리고 있을 때, 혹은 우리 그룹에 속해 있지 않은 누군가를 지적할 때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최악에 있는 우리들을 사용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폭은 가장 잘 표현되어집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집중할 때, 그때 하나님의 자비가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통해 흐릅니다. 그때 우리는 치료자들와 회복시키는 자로서, 다리들과 안식처들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8:12이 이 비전을 선언합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이사야 58:12) 이 구절의 맥락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새로운 믿음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금식은 모두 그들 자신들과 자신들의 욕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일꾼들과 이웃들을 억압하고 부당하게 대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지겹다고 하셨습니다.  정의와 의의 행동들로 움직이지 않는 경건과 경배의 행위들은 마치 시끄러운 징과 울리는 꽹과리처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치유자와 치료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들의 삶은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염원을 반영해야만 합니다.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6-7)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하더라도, 우리만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일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더 큰 몸으로부터 분리된 우리들을 발견한다면, 우리가 외로움을 느껴 불평하고 비뚤어진다면,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치 않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할 수 없다고 정죄한다면, 우리가 신실하고자 할 때라도 비틀거리거나 넘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사랑의 띠로 한 몸이 될 때 하나님의 치유와 자비, 공의와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미국장로교라 불리는 이 특별한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한인총회로 모인 여러분에게, 또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 가득했던 불신과 분열의 시대에 대해 다소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오늘 말씀드린 세 가지 교훈들을 통해 지난 수십년을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다툼, 단절, 지적, 비난을 해왔고, 모든 면에서,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과연 우리가 경험한 고통, 분노 그리고 가슴 아픈 말들과 행동들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문제들, 관심사들, 결정들 그리고 행동들을 깔끔하고 간결한 방법으로 요약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세는 것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서로와 그리스도의 몸을 괴롭혀왔던 깊은 상처들을 표현하는 것은 한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오늘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간다면, 갈라진 틈을 메우고 우리 삶의 현장의 치유자가 되어진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치유자들로 부름받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여기, 오늘, 이 모임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수반하는 주제와 성경 구절들을 통해 출발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로 시작합니다. 저는, PCUSA라 불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른 방법들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른 방법들로 목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해해온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고립시켜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만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안다고 결정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만이 옳다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납득하도록 하기 위해서 번갈아가며 삐죽거렸고, 도망 다녔고, 싸워왔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고백이 우리 교단 전부를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좌, 우, 중도, 복음적, 진보적, 온건함을 따질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엘리야의 실수를 저질러 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목사로서, 노회 지도자로서, 그리고 223대 총회의 동사 총회장으로서, 저는 개인적인 차원과 교단적 차원에서 엘리야의 죄를 고백합니다. 고백은 회개를 수반합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이런 분열과 자만의 죄를 회개하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며 넘쳐나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에 충분함을 압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나를 맡깁니다.

 

이렇게 하면서, 저는 가장 고통스러운 날들에도, 심지어 가장 격렬한 싸움 중에도,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아름답고, 다양한, 여러 방면의 방식들을 알기 위해 나 자신을 엽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넘어, 나와 연관되어 있고 나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나의 제한된 이해를 뛰어넘어 확장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저는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주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시고, 정의를 세워주심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자신만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저들을 멈추게 하십시오. 저들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던 제자 요한처럼, 이전에 지적했었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이제 저는 제가 신실하다고 믿었던 자들만이 남은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 시간과 장소에 부르셨던 모든 이들이 남은 자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남은 자라기 보다는 하나의 운동(movement)입니다. 단지 그냥 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에,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거리를 지킨 사람들입니다. 고백과 회개 후에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PCUSA가 새로운 시기와 새로운 목적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기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의 교회가 되기 위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의 명령을 따라 구체적이고, 지속적이고,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역사에 의해 교회가 개혁되어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종종 겪는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모든 언어와 인종과 정체성과 성향과, 농촌, 교외, 도시의 거리에서, 전 세계에서, 우리가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를 나누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해 헌신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신실한 삶을 가르치는 성경을 믿으며, 또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통해 새롭게, 흥미진진하게, 도전적인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주 편안하게 항해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약속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더 함께 하고 싶어 하십니다. 성령의 바람은 우리를 향해 불어오고 있으며, 예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하는 자들, 회복시키는 자들, 고치는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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