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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교수 “말씀대로 살지 못해도 설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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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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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목사회(회장 김종윤 목사)는 11월 26일(월)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설교세미나를 30여 명의 목회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뉴저지순복음교회(이정환 목사)에서 열었다. 세미나는 뉴저지 교협이 후원했다.  

 

“강해설교와 적용의 신학적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마나의 강사는 훼이스신학교 이홍길 교수. 이 교수는 합동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졸업, 달라스신학교 신학석사, 남침례신학교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으며 강해설교를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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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교수는 △이민교회의 설교 이슈 점검 △강해설교의 성경적 원리와 적용 △강해설교 워크샵 등의 주제로 강의를 이어 나갔다. 

 

이홍길 교수는 “이민교회의 설교 이슈 점검” 통해 현대설교 특히 이민교회의 설교의 5가지 이슈를 나누었다. 1. 해석의 문제 2. 신학적인 원리의 문제 3. 전달의 문제 4. 청중들의 이해에 대한 문제 5. 적용에 대한 문제 등이다. “해석의 문제”는 이전 기사를 통해 나누었고, 이후 4가지 이슈를 소개한다.

 

[관련기사] ① 이홍길 교수 “설교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http://usaamen.net/bbs/board.php?bo_table=data&wr_id=9086

 

2. 

 

제가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신학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생기는 문제이다. 도발적인 질문을 하겠다.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는데 누구에게 주셨나? 믿는 자에게 주셨는가?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믿는 자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후에 전달이 된 것이다. 이것이 목회자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설교할 때 중요한 부분인데도 잊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1차 독자가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들어서 반응하도록 한 1차 독자가 있다는 것이다. 1차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를 해야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정확하게 그 반응을 가지고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굉장히 큰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실제로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경 저자들은 영감을 받아 말씀을 기록을 했다. 기록할 때 성경 저자들의 머릿속에는 대상이 있다. 이 말씀을 기록해서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가, 누가 읽어야 하는가 하는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했다. 1차 대상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다. 구약 백성이거나 신약 백성이거나 대상이 있다. 그래서 그 대상들을 머릿속에 놓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어떻게 전달해야 잘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한 것을 잘 반응할 수 있는지를 머릿속에 생각하면서 말씀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설교자들에게도 그것을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며, 그 과정이 소위 주해 과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이 이해하고 그들이 반응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그 다음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설교자들은 그 부분들을 생략한다. 그리고 성경을 바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인식하고 성도들에게 바로 전달한다. 그러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목회자 중에서도 고민했을 법한 본문으로 신명기 21:18~21이다. 부모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답지 않는 행동으로 부모 얼굴에 먹칠하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을  데리고 성읍의 장로에게 나가서 아들의 잘못을 말하면 장로들이 듣고 아들을 돌을 쳐서 죽인다는 내용이다. 만약에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주신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 목회자나 중직자들의 아들 중 골치 덩어리가 있다면 데리고 오라고 해서 돌로 쳐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자녀들에게 회초리만 들어도 바로 법정에 서야 한다. 그런 이민사회에서 말씀대로 했을 때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 안되니 그냥 넘어가야 하는가? 이런 것을 전하면 교회분쟁이 생기니 전하지 않으면 되는가?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성도들이 다 알아야 하는 것으로 전하라고 주셨다. 그렇다면 설교자가 전하기 걸꺼러운 본문이 나와도 설교자로서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맞다. 이 본문도 동일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면 이 본문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했던 말씀이라 해석을 하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어떻게 적용시킬까 하는 부분을 이해하기위해 신학적인 원리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 달라스 신학교에서 처음 배웠고, 논문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이해를 하고 말씀을 보기 시작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다른 예이다. 어머니의 날에 가장 많이 설교하는 본문은 어디인가? 에베소서 6:1-3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말씀하신다. 많은 목사들의 설교를 들으면 비슷한 패턴이 많다. 적용은 집에 돌아가 멀리계신 부모에게 전화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한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셨을까?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이 순종의 문제를 다루는가? 부모에게 효도하게 하려는 말씀일까?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보았는가?

 

만약에 이 논리에 따라 부모에게 순종하면 장수한다고 해석하고, 자녀가 병이 생기고 일찍 죽으면 자녀가 순종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문제이다. 뭔가 이 말씀에는 다른 요인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 이해하지 못하기에 순종하면 장수한다는 고리로만 설교하는 것이다. 뒤돌아 질문을 한번만 해보면 이 논리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알게 되면, 말씀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면 성도들의 반응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설교자로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신학적인 원리의 핵심은 바로 성경의 1차 독자가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내가 성경을 읽었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시 그들이 이해한 것과 그들이 반응한 것을 우리가 알아야 그 다음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이들의 반응과 똑 같은 결과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신학적인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이 부분에서 부족한 면이 있기에 이 부분을 보완하면 강력한 설교가 될 수 있다.

 

강해설교 용어 중에 최근에 나온 용어는 “본문이 주도하는 설교”라는 것이다. 그 말은 본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본문이 설명하고 싶은 것을 설명하도록 하고, 본문이 적용하고 싶은 것을 적용하도록 하는 모든 주도권을 성경 본문이 잡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성경 본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도록 하는 설교가 “본문이 주도하는 설교”로 강해설교의 핵심내용이다. 그래서 신학적인 원리도 이 부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설교자가 되기를 바란다.

 

3. 

 

설교 전달에 있어 논리가 부족한 경우에 생긴다. 설교학 책을 읽으면 이런 내용이 많으니 오래 설명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설교는 스피치 즉 연설이다. 우리가 글을 읽듯이 설교를 하는 것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글을 읽듯이 설교를 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을 설교자가 이해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못한다면 설교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성도들이 따라가지 못하며 결국 이해를 못하게 된다.

 

그래서 설교는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많은 유명 설교자들이 설교를 쉽게 하라고 한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서 설교를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성도들이 설교를 쭉 따라갈 때 중간에 끓기거나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의심하거나 한 번 더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연결고리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잘 설교를 만들어야 성도들은 계속 그 논리를 따라간다.

 

그런데 만약 설교자의 논리가 중간에 끓기면 목사의 설교는 앞으로 계속 나가지만 성도들은 못 따라간다. 대부분은 중간에 한 번 논리가 끓기면 왜 이 말씀을 했지, 누가 들으라고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지 등등의 생각으로 뒤에 설교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된다. 그것은 설교자의 책임이다. 논리적으로 성도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를 다 준비한 다음에 사모 앞에 설교하여 논리적으로 잘 따라 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설교는 연설이다. 그래서 연설할 때 필요한 요소들을 설교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4. 

 

설교자가 청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제 이야기이다. 오래전에 저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많은 경우에 우리 목사님의 설교는 목사 급이나 그런 분들에게 하는 내용이지 우리와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성도들이 매일 사는 삶속에서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설교로 듣는다. 구름위에서 좋은 소리만 하고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실재로는 내 삶 가운데 전해져 와 닿지 않는 설교, 제가 그런 설교를 했다. 이민목회를 경험하지 못했을 때이다.

 

실제 이민자들의 삶을 경험하면서 성도들이 매일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알고 실제 경험하면서 내 설교가 많이 바뀌었다. 아마 이민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삶을 많이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설교할 때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이민교회 목회자이지만 설교할 때는 이민자의 삶과 고통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붕붕 떠다니는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성도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설교를 하는데 성도들이 자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토요일까지 또는 주일 새벽까지 일하다 그래도 믿는다 생각하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모습들, 그런데 설교가 연설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요소가 부족하여 성도들이 연결고리를 놓치면 금세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아무리 집중하려도 해도 잠을 자게 된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죄송하지만 설교자 책임이다.

 

운전하면서 설교를 많이 듣는다. 어느 날 차에서 설교를 듣는데 설교자가 잠자는 교인에게 호통을 치는 것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도 운전하며 설교를 들으며 논리가 끓여져 좀 졸았다. 설교를 들을 때 신경을 쓰며 논리를 따라가면 되는데, 한번 끓기면 논리가 못 따라가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 순간에 설교자가 왜 자냐고 고함을 지른 것이다. 그것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졸게 만든 분이 설교자이다. 그런데 혼나는 것은 성도였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 성도들의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씀가운데 잘 반영하도록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적용에 대한 문제가 있다. 설교학을 공부할 때, 목회도 잘하고 강의도 잘하는 교수가 있었다,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성경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 전하라고 주신 본문이지만,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전하지 않는 것이 맞는가?” 제가 질문하며 기대한 것은 자기도 그렇게 못살면서 성도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교수는 “하나님이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하라고 주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다 전해야 한다. 그러나 “설교자가 인간으로 부족해서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 말씀을 진정성 있게 전하면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어 교수는 해돈 로빈슨 교수의 설교학 책에 나오는 설교의 정의를 말해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도전을 받았다. 해돈 로빈슨의 설교의 정의는 “강해설교라는 것은 성경의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다. 성경본문이 가지고 있는 말씀을 역사적으로 문법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잘 연구해서 찾아낸 성경개념을 성령님을 통해 목회자에게 먼저 적용하고,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강해설교”라는 것이다.

 

그 설명은 제 마음에 큰 도전이 되었다. 내가 말씀대로 못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먼저 목회자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목회자가 먼저 연구하고 깨닫고 고민하는 가운데 목회자의 삶 가운데 적용을 하고, 그 적용한 흔적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나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해설교라고 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 앞에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약점이 잡힐까 그렇다. 설교자는 이렇게 못사는데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라고 말하면, 목사가 되어 이렇게 못산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 부분까지도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으로 말씀을 적용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하는 목사가 이찬수 목사이다. 이 목사의 설교를 많이 들어본 분은 경험했을 텐데 이 목사는 본인이 못한 것을 다 이야기한다. 한번은 이런 설교를 했다. 해외에 집회가 있어서 갔는데 전날부터 눈이 많이 왔다. 현지 공항에 내리고도 눈이 많이 오자 이 목사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집회를 취소하자고 했다. 하지만 집회를 주최한 목사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집회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게 역사하셨다. 폭설로 인해 모든 모임이 취소되었는데, 그러자 집회에 못 올 사람들도 와서 기대한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모였다는 것. 그리고 이찬수 목사는 “목사의 믿음이 이렇다”고 말하자,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에 성도들에게 나누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강하게 선언할 때 성도들 삶 가운데 큰 도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해돈 로빈슨 목사이 말한 설교의 정의이다.

 

실제 우리가 설교하면서 고민되는 것이 아닌가? 성도들은 설교를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통해 설교를 듣는다. 성도들은 어느 목사의 설교가 좋았다고 말을 할 수 있지만 실제 성도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목사의 삶이다. 목사의 말과 삶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씀처럼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실수하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성도들이 알기에 그런 목사가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이 그 말씀을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고 삶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은 목사의 삶을 통해 변화가 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책임이 바로 그것에 있다.

 

저는 설교자가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에게 이 말씀의 비밀을 전하기 전에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먼저 말씀의 비밀을 주셨다. 목회자들에게 설교의 놀라운 은혜를 먼저 주셔서 먼저 경험하게 하시고 먼저 묵상하게 하시고 먼저 적용하게 하셔서 그 적용한 것을 통해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 중 일부를 성도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성도들과 나누었을 때 그 일부에 은혜를 받고 성도들이 실제 삶이 도전을 받고 변화를 받는다. 그 부분에 대해 설교자가 엄청난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교수의 답을 듣고 목사로 설교자로 정말 복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다. 설교를 준비할 때 하나님이 먼저 말씀을 주시고 먼저 말씀에 대해 고민하게 깨닫게 하시고 먼저 적용하게 고민하고 씨름하고 씨름한 결과를 가지고 말씀을 전할 때 성도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러분들도 설교에 있어서 그런 부분을 가지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성도들이 목회자도 안되는 것을 자꾸 시키는 것이라 불평을 듣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살아본 삶의 모습들을 자꾸 나누고 설교를 통해 도전을 주고 그 성도들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기대할 수 있는 설교가 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 5가지만 목회자가 좀 더 조심하면 그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모습을 우리가 실제 목회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설교와 준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강의를 통해 어떤 설교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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