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률이 한국 90%, 미국 60%를 넘어서며 장례 문화가 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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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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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화장률이 한국 90%, 미국 60%를 넘어서며 장례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뉴욕·뉴저지 한인사회는 묘지 가격 상승과 자녀들의 관리 부담을 덜어주려는 1세대의 배려로 화장 예배가 주류가 됐다. 정교회는 화장을 금지하고 가톨릭은 허용하되 산골(散骨)을 막는 반면, 개신교는 박형룡·존 파이퍼의 신중론과 김세윤의 수용론이 공존하며 '부활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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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인근의 한 추모 공원에 조성된 봉안당. 좁아지는 묘지 공간 대안으로 화장 후 유골을 안치하는 문화가 한인 사회에도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AI사진)
장례식장 화로의 육중한 문이 닫히고 붉은 불빛이 점화되는 순간, 유가족의 오열 사이로 미묘한 신학적 긴장이 흐른다. "육신을 태우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수천 년간 기독교인의 무의식을 지배해 온 '매장(Burial) 선호' 사상과,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화장(Cremation) 보편화' 사이의 괴리다. 성도들은 묻는다. 효율성을 위해 불을 택하는 것이 혹시나 고인의 부활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니냐고.
뉴욕의 현실: "자식들에게 벌초 짐 주기 싫다"
데이터는 감정보다 냉정하다. 한국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화장률은 90%를 넘어섰다. 미국 역시 전미장의사협회(NFDA) 보고서 기준 60.5%를 기록하며 매장률을 추월했다.
이 흐름은 뉴욕·뉴저지 일대 한인 교회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10년 전과 비교해 화장 예배 비율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이는 단순히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뉴욕 인근 묘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경제적 이유가 1차적 원인이다. 여기에 자녀들에게 벌초나 묘지 관리의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이민 1세대의 현실적인 배려가 맞물렸다. '죽어서도 짐이 되기 싫다'는 부모의 마음이 화장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재촉한 셈이다.
정교회 vs 가톨릭: 금기와 조건부 허용 사이
교파별로 온도 차는 분명하다.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곳은 동방 정교회(Orthodox Church)다. 그들은 시신을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 보기에 인위적인 훼손을 엄격히 금지하며, 화장을 부활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다. 정교회 신자에게 화장은 여전히 금기어다.
반면 로마 가톨릭은 유연한 변화를 택했다.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화장을 공식 허용했다. 단, 조건이 붙는다. 유골을 산이나 강에 뿌리는 산골(散骨)이나, 집에 보관하는 행위는 금지한다. "부활을 기다리는 육신은 거룩한 장소(묘지나 성당 내 봉안당)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학적 지침 때문이다. 즉, 태우는 것은 허락하되 흩뿌리는 것은 막아선 것이다.
개신교 논쟁: 박형룡·존 파이퍼의 '신중론'
그렇다면 개신교 복음주의 진영은 어떠한가. '금지'는 아니지만 '신중'을 기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한국 보수 신학의 거두 고(故) 박형룡 박사는 생전 조직신학 저술을 통해 화장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화장을 이교도적 관습이자 '심판의 불'을 연상시키는 행위로 보았으며, 성경적 모범인 매장을 고수하는 것이 도리라고 가르쳤다.
미국 복음주의의 존경받는 리더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 역시 결이 비슷하다. 그는 "화장이 구원을 취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은 매장을 선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장은 부활을 기다리며 육신을 심는 '복음적 상징(Symbol)'인 반면, 화장은 육신을 파기하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김세윤 교수: "부활은 재조립이 아닌 재창조"
그러나 현실적인 화장의 확산 속에서, 성도들에게 자유함을 주는 신학적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풀러신학교 김세윤 원로교수(신약학)는 '부활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촉구한다.
김 교수는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시체가 소생(Resuscitation)하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5장을 인용하며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Soma Pneumatikon)'"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전능자이시기에, 시신이 흙으로 분해되든 불에 타 원소로 흩어지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히시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본질은 기억하는 방식
결국 논쟁의 끝은 형식이 아닌 본질로 귀결된다. 뉴욕 교계의 한 중진 목회자는 "과거 매장이 부활 신앙의 고백이었다면, 현대의 화장은 이웃 사랑과 청지기 정신의 표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요한 것은 남겨진 육신을 처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인이 남긴 신앙 유산을 기억하고 천국 소망을 재확인하는 '예배'다. 흙으로 돌아가든 한 줌의 재로 돌아가든, 그 마지막 여정이 부활을 향한 대합실임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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