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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팥원리와 하나님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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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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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역사와 철학은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대표적인 두 학문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어떤 역사와 철학도 인간과 세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과 세상은 역사와 철학으로 다 설명이 안 되는 차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원이 바로 창세기 1장 1절에서 선언하는“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그들의 역사와 철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의 첫 권 첫 장 첫 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역사적 방법과 아무리 심오한 철학으로도 인간과 세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그 차원과 영역이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역사 이해와 철학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의 역사 연구의 방법과 철학은 그 차원과 수준에서 의미 있고 유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는 유한합니다. 유한하다는 것은 그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철학으로 수학의 문제를 풀 수 없고 수학으로 철학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 이해와 철학을 비롯한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지만 그것은 유한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것을 부분적으로 알 따름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차원과 대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정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66권 중 첫 권인 창세기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하고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이 역시 하나님의 창조로 끝을 맺습니다. 창조로 시작하고 창조로 끝나는 세상과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의 창조와 요한계시록의 창조를 통해서 이해와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세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때까지 전 역사의 과정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어떤 법칙이나 인과관계를 통해서 설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인과율이나 자연법에 얽매이지 않고 합리성을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의 예측을 불허합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을 두려워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예측을 불허하는 하나님일지라도 우리가 그 하나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믿는 것은 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겪게 되는 모든 경험은 상당부분 인과율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인과율의 법칙을 통해서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말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콩팥원리, 즉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안에서 작동합니다. 자연의 원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연의 원리에만 맡겨두지 않으시고 친히 간섭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물이 얼고 기온이 올라가면 얼음이 녹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얼음이 녹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 때 거기서 해빙을 명하셨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시 147:18).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생물학적 원리에만 맡겨두지 않으시고 직접 캐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과 생물학적 원리를 동시에 보호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오늘 눈이 내리는 것은 순전히 자연 법칙에 의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자연법칙 배후에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임의로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과 직접 통치를 병행하시는데, 우리는 그 조화와 지혜를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도로교통법규에 의하면 사거리의 신호등 보다 경찰의 수신호가 우선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자연법칙보다 우선하지만 어디까지가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나님의 직접 통치인지 구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도 무시하지 않으시고 또한 자연법칙 위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인간사는 콩팥원리나 인과율의 법칙으로만 작동되지 않습니다. 역사와 인간사에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제는 세상이 콩팥원리나 인과율의 법칙으로만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하나님 나라 백성일지라도 이런 경우 매우 당황하게 되고 심지어 믿음이 흔들리기까지 합니다. 시편에는 그런 경우를 당한 사람들의 갈등과 불안과 부르짖음과 기도가 많습니다.

구약의 욥은 그런 경우를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당대의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는데, 도무지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한 재난을 겪게 됩니다. 욥이 당한 어려움은 처음부터 콩팥원리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논리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일에 대해 욥의 친구요 당대의 기라성 같은 논객이었던 그들이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설명을 하였지만 그 설명은 결국 콩팥원리에 근거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욥은 그러한 설명을 수긍할 수 없었고 의문과 혼란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욥에게는 재난 자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도무지 그 재난의 원인이 무엇이지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욥에게 하나님께서 느닷없이 창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창조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기 전, 인간의 인식이 명료하게 닿을 수 없는 아득한 태초와 시원의 차원을 포함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 38:1-7).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신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욥기 38장에서 41장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 들은 욥은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지금까지 친구들이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자신이 그러한 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말씀하실 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38:4)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닿을 수 없는, 시간도 창조되기 전, 인간의 인식과 의식으로부터 아득한 태초,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던 때는 욥이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시간과 자연의 원리와 합리성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를 욥이 알 리 없고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만물과 그 만물 가운데 있는 온갖 이치와 원리와 질서와 가치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 창조에는 욥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생각과 욕망과 주장과 가치와 능력이 일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부여하신 질서나 원리에 의해서 생동하고 작동되는 것으로 믿지만, 더 높고 넓고 깊고 신비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의해 생동하고 작동되고 보호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콩팥원리까지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의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의 가장 우선되는 내용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성경 계시의 시작이 창조이고 끝이 창조일 뿐만 아니라 처음 창조와 마지막 창조 사이의 전 과정에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세상의 모든 문제는 창조 세계 내적 문제입니다. 그러나 창조는 창조 세계 외적 차원, 즉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인간과 세상의 사소한 문제는 창조 세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창조 세계 외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차원의 해법은 당연히 인간에게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문제는 인간과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사소한 모든 문제도 크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만, 사소한 문제는 치명적이지 않아서 해결이 되지 않아도 큰 고통이 없고, 따라서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이나 나라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절망하게 됩니다.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당한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은 그들이 그동안 믿고 알고 있던 신앙으로 이해할 수 없고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현실은 하나님이 무능력하든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사야 43장은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해결도 할 수 없고 아무런 소망도 없다는 이스라엘에게 “창조”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욥이 이해할 수도 없는 고난으로 괴로워할 때 그랬던 것처럼 포로생활로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창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나를 만드셨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앙고백의 핵심이며 세계관의 근간이기 때문에 콩팥원리나 인과율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아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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