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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하고 불쌍한 증가하는 난민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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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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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수많은 난민이 늘어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영적 난민을 바라보게 됩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은 영적 난민입니다. 교회들이 분쟁에 휘말리면서 자기 교회에 다닐 수가 없게 된 이들이 많습니다. 은퇴한 목사님이 자기가 목화하든 교회를 나갈 수 없는 것도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일부 교인들이 집단으로 쫓겨나 천막이나 공원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사설 용역원을 동원하여 반대편 사람들을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기도 합니다. 그 피해자들이 모두 영적 난민들입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 생각하면 그러한 물리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사상과 이념 그리고 영적으로 난민이 된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아주 이상한 현상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요즘 국회나 사회나 교회에서 회의가 민주주의 원칙대로 이루어지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어떤 사항들이 논의되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어도 반대한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파행을 일삼습니다. 아마도 국회가 대표적인 경우이고 요즘은 교회가 국회보다 더 심합니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Debate and Vote입니다. 자유롭게 논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투표로 결정이 되면 모두가 승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원칙이 국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지켜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법과 원칙이 필요합니다. 법과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불완전하고 또한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과 원칙이 있어야 질서가 서고 질서가 서야 모두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법과 원칙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질서가 깨어지고 질서가 깨어지면 정글의 법이 지배하게 됩니다. 정글의 법은 약육강식입니다. 말이 민주주의이지 오늘날 이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이 지배합니다. 코비드 규제법에서 국회의원들과 판사들을 제외한 정부 시책을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힘 없는 국민은 법과 정책이 정글의 법으로 바뀌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서로를 돌아보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이 창조의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내가 동생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항의하였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 실존입니다. 내가 왜 동생을 지키고 부모를 돌보고 형제를 도와주어야 합니까? 내가 왜 난민을 돌아보아야 합니까? 이러한 주장이 개인적 차원에서는 그 피해가 크지 않지만, 정부의 정책 차원이나 지도자의 권한이 그렇게 행사되면 그 피해는 온 국민에게 엄청만 규모로 미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든 자를 치료하여 주신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불쌍히 여기신 것임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또는 지도력으로 그렇게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이고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서로 돌아보지 않는 것은 창조의 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돌아보는 창조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 법은 정의와 사랑입니다. 정의는 사랑과 반대이거나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랑의 또 다른 형식입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창조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 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료해 주신 것은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하기 때문에 고쳐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 법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사랑보다 더 고상한 가치가 있다면 사랑을 수단화해도 되지만 사랑보다 더 높고 고상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말은 사랑을 행하면서 반대급부로 어떤 결과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사랑을 행하다가도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은 가장 불쌍한 사람을 먼저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이것을 사랑의 경제학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자에게 밥 한 그릇은 별 의미가 없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은 대단히 귀중합니다. 모든 사람을 돌아보고 도와주어야 하지만 가장 가련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을 먼저 찾아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셋째, 갚을 능력이 없는 자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자를 도와주면 그가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세속적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채무자로 둔 사람은 정말 두려울 것이 없는 든든한 백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행하면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상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지만, 또 한 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상을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상을 바라는 것은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다 영적 난민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도 교회의 지도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영적 난민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는 난민 같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자비의 마음과 손길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에 가장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존재 자체가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우리도 가고 예수님께서 관심을 보이시는 것에 우리도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경제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원인과 이유가 있겠지만 사랑을 실천함에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 없이 유리 방황하는 양 같은 가련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계셨으면 우크라이나, 아프카니스탄, 아프리카와 중동과 발칸 반도의 난민을 어떻게 보시고 대처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장애인들과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과 온갖 종류의 노숙자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는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철학적으로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창조질서와 하나님 나라 법인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정의도 사랑의 한 방법입니다. 사랑의 실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첫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다음은 그들이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목자 없는 양 같이 가련하고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가 직면한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워도 모두가 서로 돌아보도록 하신 창조원리를 실천하고 하나님 나라 법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 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해도 우리가 그렇게 노력한다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5-36)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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