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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인생 실패의 원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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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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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칼 마르크스는 인생을 생존경쟁으로 또는 적자생존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많은 사람이 먹기 위해 싸우고, 더 가지려고 싸우고, 빼앗으려고 싸우고,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고 싸웁니다. 계급에 대한 투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 사실 성경도 결국에는 이 같은 인간의 분쟁과 싸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1장 19-20절에서는 자기와의 싸움에 대하여, 2장 1-9절에서는 계급 간의 분쟁에 대하여 말씀했고, 4장 1-12절에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싸움에 대하여, 5장 1-6절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다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역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일반적인 성향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무모하고 줄기차게 힘을 추구하는 욕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욕망은 인간이 죽어야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절대 권력의 강력한 지배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거대한 괴물 리워야단(리바이어던-Leviathan)에 국가를 비유하였습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비유에서 인간의 악함을 주장하며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도의 철학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검은 개와 흰 개가 있어서 서로 싸우는데 검은 개가 이기면 육신이 좋아하고 흰 개가 이기면 영혼이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영혼과 육체가 서로 싸운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영혼은 고귀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악함과 그것에서 나오는 투쟁과 싸움의 문제를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이해를 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직면하는 싸움은 흰 개와 검은 개의 싸움도 아니고 영혼과 육체의 싸움도 아닙니다. 야고보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인간이 싸우는 원인은 정욕 즉 욕심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산책하는데, 귀여운 두 어린아이가 재미있게 놀고 있어서 호두 세 개를 주었더니 잘 놀던 두 아이가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서로 호두 두 개를 가지려고 싸웠습니다. 그때 대통령 보좌관이 대통령을 찾아왔다가 두 아이가 싸우는 것을 보고 ‘각하, 저 아이들이 왜 싸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이 ‘저 아이들은 지금 국제 문제로 싸우고 있네.’라고 하였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국제분쟁의 요인도 결국은 더 가지려고 하는 싸움입니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을 하고 있고 거의 전 세계가 이 싸움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있으며 이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불안과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티그라인들과 에티오피아 정부가 티그라이 전쟁이라고 하는 내전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분쟁과 전쟁의 요인들을 만들고 있으며 서로가 그 책임이 상대국에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 간의 싸움이나 국가 간의 전쟁의 요인이 서로 상대에게 있다는 주장 때문에 싸움과 전쟁은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산문제로 형제끼리 다투다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싸움에 대한 문제는 지금까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예수님께서 보실 때는 아주 간단한 합니다. 싸우는 이유가 어떤 것이든 결국은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싸울 필요가 없어집니다. 인간은 내가 남보다 많이 못 가졌을 때는 평등해야 한다는 욕심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평등해지고 나면 내가 남보다 좀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같은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부하게 되기 위해 욕심을 부리지만 욕심은 인간을 가난하게 하고 욕심을 버리면 부유하게 됩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평등하게 되면 사람들이 만족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물리적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 다르게 지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다면 물리적 평등으로 만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십인십색입니다. 나는 추운데 어떤 사람은 더울 수 있습니다. 나는 밥 한 그릇을 먹고 배가 부르지만, 또 다른 사람은 밥 한 그릇을 먹어도 배가 고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른데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을 똑같다고 전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각기 다르게 지으셨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다는 생각은 공평이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공평은 마르크스나 그의 추종자들이 생각하는 공평과 다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물리적 같음을 공평이라고 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것을 공평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달란트를 감당할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 주시고 다섯 달란트를 감당할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십니다. 사람은 아무리 공평하게 나누어도 개인의 차이를 다 잘 고려하여 공평하게 나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르게 주시는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보다 귀중하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공평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평한 것보다 더 귀중한 가치가 각기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공평하지 않은 것이 공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주시는데 인간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인간이 욕심을 버리게 되면 추위도 더위도 부도 가난도 감사의 조건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감사의 조건을 불평의 조건으로 생각합니다. 바울같이 큰 믿음의 사람도 자기의 질병을 성가시고 없으면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질병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서 질병이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질병이 해로운 것으로만 알고 없애 달라고 기도했는데 알고 보니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이로운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면 가난할 때보다 부유할 때 불평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은 없는 것 때문에 별로 불평하지 않지만,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동차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불평이 그리 많지 않지만, 부잣집 아이들이 불평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배고파서 도적질하는 사람은 정말로 많지 않습니다. 배고파서 도적질했다는 이야기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소설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도적질 하는 사람 중에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들이 아마도 몇 배 많을 것입니다. 욕심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욕심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욕심의 치명성을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좋은 일도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흔히 좋은 일은 욕심을 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괜찮지만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욕심을 부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면 좋지만,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 소용없는 학위를 따려고 공부에 욕심을 냅니다. 교수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발명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공부를 합니다. 그런 경우는 공부 욕심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더 일을 잘하기 위하여 배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학위 논문이라는 것이 내용도 부실하고 조잡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사람들도 그런 학위를 받은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욕심은 반드시 싸움을 불러옵니다. 욕심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을 욕심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내 욕심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내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싸웁니다. 욕심을 부리면 자기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싸움과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부간에도 이 욕심 때문에 싸우게 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욕심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족의 분쟁도 교회의 분쟁도 국제분쟁도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욕심은 싸움과 분쟁만 일으키고 얻고 싶은 것은 얻지 못하게 합니다.

야고보는 무엇을 얻기를 원하거든 욕심을 내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하므로 싸움과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지만, 기도로 구하는 것은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꼭 필요한 것 같아도 하나님이 보실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 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잘못될 위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까지도 욕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내 뜻을 관철하려고 기도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시장이나 비즈니스에서만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욕심을 부립니다.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기도하지만 욕심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욕심이든 욕심은 싸움을 만들고 싸움은 살인을 저지르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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