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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붕괴 현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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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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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지금은 개인이나 정부가 보수적인지 아니면 이른바 좌파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 주제가 바로 LGBT입니다. LGBT는 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하여 부르는 단어입니다. 본래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퀴어(Queer)라는 용어가 있지만 LGBT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퀴어(Queer)에 비해 덜 논쟁적이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퀴어는 본래 "이상한", "색다른" 등을 나타내는 단어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LGBT에 Q를 붙여 LGBTQ라고 합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LGBTQ를 용납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데, 개인이나 정부가 LGBTQ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장려한다면 좌파가 틀림없습니다. 보수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은 LGBTQ에 대해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또한, LGBTQ처럼 그 지지 여하에 따라 좌우를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지는 않지만, 환경문제도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좌우로 갈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 환경문제는 델리케이트 한 부분이 많아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왜곡된 환경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데 반대를 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자는 데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환경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할 뿐 아니라 적극적이어야 하지만 왜곡된 환경론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정말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은 말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지만 왜곡된 환경운동가들은 그 자신이 엄청난 낭비와 사치로 환경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환경보호 운동가 중에 검소하게 살아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경문제는 극단적인 환경론자들의 주장처럼 석탄 연료나 석유를 많이 사용하는 것에 의해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100%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정직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환경의 변화는 주기적으로 또는 비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환경운동은 비전문가들의 환경운동에 의해 지나치게 왜곡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나 국제단체가 제시하는 환경보호 정책들은 거의 극단적인 환경론을 따르는 정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반환경적이고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방해하여 가난한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환경 보호 정책을 반대하면 환경보호를 반대하는 것으로 몰아 비난합니다. 미국에서 LGBTQ나 환경문제에 대해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내거나 주장하면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거나 아예 그런 주장이나 뉴스가 화제가 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든 권위가 신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지만, 현대에는 모든 권위가 사실로부터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문가에 의한 과학적 판단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에 대해 사실 검토가 중요하고 결국 과학적 판단을 따르기 때문에 과학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소위 팩트체크입니다. 의견이 분분하여 논쟁이 발생할 때 팩트체크를 통해 사실이 밝혀지면 논쟁이 종식됩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팩트체크가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팩트체크를 하는 전문가들이 팩트를 체크할 때 과학과 학자적 양심을 따르지 않고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경악할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페이스북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한 팩트체크는 팩트가 아니라 자기들의 의견일 뿐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동안 페이스북을 비롯하여 빅텍크들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통령의 발언까지 통제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의 주장이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들의 입장과 다르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그 사람의 주장이나 발언이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거나 지워버립니다. 어떤 주장이나 발언이나 심지어 이론이나 논문이나 통계까지도 자기들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왜곡하거나 지워버리거나 아예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왔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전적으로 빅텍크 오너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기업은 국가가 삼권이 분리되어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CEO의 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나 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빅텍크 CEO들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빅텍크들은 거의가 좌파이기 때문에 그들의 절대 권력을 보수적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집중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좌파는 두둔하고 우파는 비난하거나 그 영향이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힘을 행사하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팩트체크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팩트체크가 잘못된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문제 삼을 수도 없고 문제 삼았다고 해도 현 정부와 언론과 빅텍크들이 단합이나 한 듯이 한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참 팩트를 밝히려는 싸움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페이스북이 법정에서 자신들의 팩트체크가 팩트가 아니고 의견이라고 시인하였습니다.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ABC와 Fox News의 기자로 오랫동안 근무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스토셀( John Stossel)이 켈리포니아 주 정부가 삼림을 다루는 정책의 기술적인 부분을 심층 취재한 두 개의 비디오가 페이스북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존 스토셀은 캘리포니아에 산불이 자주 나기 때문에 혹 주 정부의 삼림 정책의 기술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취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스토셀의 태도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의 비디오를 가짜 뉴스로 분류해 버렸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조치에 대해서 스토셀은 페이스북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를 하였습니다. 그가 취재한 내용은 이념적으로 누구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삼림 정책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하여 조사를 한 것입니다. 고소를 당한 페이스북이 변호인단을 통해 법정에서 스토셀의 보도가 가짜라고 한 것에 대하여 변론할 때 변론의 정당성이 궁한 나머지 자기들이 한 팩트체크는 팩트가 아니고 자기들의 의견일 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페이스북이 그동안 팩트체크를 통해 정보나 소식을 통제하고 경고하거나 계정을 삭제해 온 것이 한두 건이 아닌데 자신들의 팩트체크가 의견에 불과하다고 무책임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해대는 독재자의 행태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주류 언론은 일절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저지른 횡포와 그 피해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거의 습관적으로 정부의 정책이 최선책이라고 믿어버리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경악할 나쁜 비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참 팩트를 밝히려는 시도는 정부와 주류 언론과 빅텍크에 의해 철저하게 차단되어 왔습니다. 이들은 정직한 이들의 팩트체크가 팩트가 아니라 자기들의 팩트체크가 옳고 다른 팩트체크는 거짓이고 가짜라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팩트가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된 데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전까지는 사람들이 모든 권위가 신에게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권위는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사실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과장이나 축소나 왜곡 없이 어떤 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문예사조에서 사실에 대한 강조는 낭만주의와 대립하는, 콩트의 실증주의의 영향을 바탕으로 감성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사조입니다. 이를 가리켜 사실주의라고 부릅니다. 사실의 어원은 라틴어의 ‘레알리스.realis'로 이는 ’실물‘을 뜻하는 것으로, ’관념‘과 대립되는 말입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과장하거나 주관적 판단을 개입시키거나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그 사물과 현실의 개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사실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 보는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즉 사실주의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의 진실한 모습, 그 일반화된 성격을 획득하고, 인간 생활을 그 발전과정에서 파악하여 생활의 진실, 생활 과정의 전형적인 것의 법칙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팩트에 근거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전에 전통을 중시하던 데서 과학과 통계를 중요시하는 팩트 위주의 리더십이 등장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팩트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사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곳은 아마 과학과 역사, 그리고 언론 분야일 것입니다. 정치 분야에도 사실이 중요하지만 언론에게 있어서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에 대한 이러한 강조가 조직화 되고 이념으로 발전한 것이 모더니즘입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신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왕이 절대 권한을 행사하였지만, 혁명 이후부터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정하는 전문가들 주장을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지도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문제든지 전문가의 팩트체크가 최종 권위를 갖는 지난 200여 년의 모더니즘도 그 유효기간이 다 한듯합니다. 물론 아직은 세계의 모든 정부가 모더니즘 베이스로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전문가들의 팩트체크에 대한 신뢰가 튼튼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팩트체크가 중요하지만 그 오용의 폐해가 점점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기적인 정치인들이 이념을 이용하듯이 팩트도 이용하여 그 부작용과 피해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에 대한 논증은 주장과 근거의 결합으로 이루어지지만 팩트는 잘못된 논증을 타당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글이나 심해 동물의 행동에 관한 연구를 통한 팩트 제시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사람이 별로 없지만, 팩트체크가 정치 현실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확정하기가 어려워서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고 오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논쟁이 되는 문제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한쪽이 '팩트'라고 제시한 데이터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편집된 데이터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은 왜곡된 팩트나 정보를 하늘같이 믿고 극단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팩트를 밝히는 것은 모든 이들의 의무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검증하는 절차가 없다면 왜곡된 정보가 대중에게 확산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게 됩니다. 한 사건에서 어떤 팩트가 참이지만 또 다른 더 중요한 팩트를 숨기면 사건에 대한 왜곡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팩트체크는 수많은 오류를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옳은 전제로 잘못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전제가 팩트라도 논리적 오류가 있는 논증의 오류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신공격의 오류, 피장파장의 오류, 발생학적 오류, 문맥을 무시한 인용, 의도확대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거짓 원인의 오류, 공통원인 무시의 오류, 인과 전도의 오류 등은 팩트 전제에서 잘못된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는 오류들입니다. 현대 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이러한 오류를 이용하는 귀재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탁월한(?) 기술과 능력이 대중에게 불신을 사게 되었고 반복되는 편집된 팩트체크에 식상하게 하였습니다. 팩트체크에 대한 이런 대중의 불신은 모더니즘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반 대중들이 전문가의 말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 미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19를 다루는 정부 정책이나 그 정책을 지지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주장은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이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의 팩트편집임을 알 수 있어서 대중들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둡고 암울한 한 해가 저무는데 이 해가 코로나19도 데리고 저물기를 바라지만 모더니즘이 붕괴되고 저무는 것은 역사의 종말 같다는 느낌이 들어 두렵기까지 합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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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ㅎㅎㅎ님의 댓글

ㅎㅎㅎ

저는 목사님의 이 말씀들을 목사님 자신에게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정치나 과학적 적용들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구분이 참 어렵습니다. 정부의 정책과 그를 지지하는 언론이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그 정책들을 반대하는 자들의 말이 말도 안되는 수준이고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의견이 나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나라의 일제시대와 같던 로마의 그 압제 속에서도 로마에 대항하라던가 이스라엘이 힘을 합쳐 일어서야 한다든가 하는 말씀 안하셨습니다. 예수님만 닮아가면 되고 하나님 말씀만 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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