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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은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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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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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찬송가 384장 1절 가사는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가사에서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단어는 ‘만사형통’입니다. 이 찬송가를 지은 Fanny Jane Crosby는 매우 사소한 개인적 체험을 하고 나서 이 찬송가 가사를 지었습니다. 크로스비의 나이 54살이던 어느 날 그녀는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필요했던 돈은 단돈 5달러였지만 그 돈을 당장 구할 길이 없었던 그녀는 평소에 늘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녀가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이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그녀를 찾아 온 낮선 사람은 “당신의 영혼을 축복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자신을 그녀의 팬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 낯선 방문자는 잠시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떠나면서 크로스비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히 5달러였습니다.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정확하게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동하는 순간 영감이 떠올라 쓴 찬송이 바로“나의 갈 길 다 가도록”입니다. 5달러를 구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지은 찬송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크로스비는 수도 없이 많은 기도 응답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태어난 지 1년도 되기 전에 시력을 잃은 그녀는 95세가 되기까지 8쳔여 편의 찬송시를 지었고 수도 없이 많은 체험을 하던 중 5달러의 기도 응답에 감격하여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녀가 체험한 만사형통을 원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생애는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만사형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찬송가 2절의 가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그들의 광야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사형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광야 생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는 사실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웠었는가를 말해줍니다. 날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기적의 만나를 먹으며 산다는 것은 평안하고 신나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 삶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란 모든 것이 풍족하고 평안한 때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를 말리는 불안과 고통과 절망과 좌절의 끝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많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보다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삶이 형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기적 체험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많은 기적의 체험 없이 사는 삶이 기적을 많이 체험하는 삶보다 더 형통하고 복된 삶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사람에게 기적적인 은혜 없이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일반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일깨워주신 은혜가 바로 그 은혜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신 삶이 풍족하고 건강하고 평안한 삶이 아니라 불치의 병을 안고 사는 삶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이 생각할 때 없었으면 좋은 불치의 병을 주님께서 족한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체험만이 아니고 진정한 참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 백성의 체험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시작된 요셉의 이야기는 창세기 50장까지 계속됩니다. 그런데 창 38장에 유다의 이야기가 끼어 있습니다. 성경이 야곱의 생애를 다루다가 갑자기 요셉의 이야기로 흐름을 바꿉니다. 성경이 구속의 역사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렇게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마치 요셉을 약속의 계승자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약속의 계승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아닙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조상은 아닙니다. 요셉과 유다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일생을 산 인물이고, 유다는 창 38장에 의하면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에게서는 많은 교훈을 받지만 유다에게는 별로 교훈을 받지 못합니다. 이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특별히 간섭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일생을 살았고, 유다는 제멋대로 살았는데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메시지를 줍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과 애굽과 세계 많은 사람을 구하였는데, 유다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꿈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태마의 주인공으로 요셉을 제시합니다. 요셉이 꾼 꿈을 그의 비전으로 취급하며 긍정적인 꿈을 가지고 위대한 미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꿈을 품고 그 꿈이 성취되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긍정적인 꿈을 꾼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을 꿈꾸는 자라고 한 것은 그의 형들이 요셉에 대해 비아냥거리며 한 말입니다. 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 적도 없고 비전을 가슴에 품은 적도 없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메시지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다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메시지도 역시 임마누엘입니다.

은혜는 인간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로 그렇게 되면 복이 되지만, 자기에게 화가 되고 저주가 될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도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어떤 여자는 매우 값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미워서 팔아버렸는데 그 요셉이 자기들의 생명을 구원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은혜의 차원에서 보면 형들이 요셉을 팔았으므로 그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은 형들을 용서한 요셉의 관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형들이 요셉을 팔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보존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차원에서 보면 형들이 요셉을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보존하시고 그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꺾어보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꺾을 수 없고 오히려 결국 인간의 고집과 뜻이 꺾이고 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장차 이 세상에 모든 성경은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고 장담하였지만 그가 죽고 난 다음 그의 집이 성경을 출판하는 성서공회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생각할 때 결과를 보면 형통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에 의해서 팔렸고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형통은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종의 신분으로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형통이 아닙니다. 심지어 성폭력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성경은 요셉이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고 합니다. 노예의 신분이나 죄수의 신분으로 지내면서 형통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으로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요셉의 형통을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면에서 요셉의 형통을 이야기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는 일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요셉의 역할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보딜발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냈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도 하나님을 드러냈고, 간수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냈고,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도 그리고 애굽의 모든 술객과 바로의 신하들과 보좌관들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를 팔았던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왔을 때도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요셉이 온갖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드러냈으니 요셉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를 거꾸로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요셉이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드러내서 하나님이 그를 높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므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보디발이 요셉의 행동에서 요셉의 위대함을 본 것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요셉의 사건에서 그의 주위에 등장하는 가족에서부터 보디발이나 그의 아내나 간수나 두 장관이나 바로나 그의 신하들은 요셉의 뛰어난 점이 아니라 그와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을 형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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