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잭슨이 떠났다... 흑인 교회가 키워낸 마지막 거인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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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6-02-2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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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흑인 민권 운동의 거목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로 별세했다. CNN은 짐크로우법 시대부터 경제적 평등과 주류 정치의 벽을 허물기 위해 60년간 헌신한 그의 삶을 조명했다. 마틴 루터 킹의 최연소 스태프에서 대선 주자까지, 잭슨 목사가 미국 사회에 남긴 깊은 족적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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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 차별의 벽을 넘어 미국 사회 변화를 이끈 잭슨 목사 (AI사진)
1941년, 미국 남부의 흑인 유권자 등록률은 단 3%에 불과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도, 백인 이웃과 같은 건물에 들어갈 수도 없던 시대에 태어난 한 소년은 훗날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도를 흔드는 정치적 거목으로 성장했다.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제시 잭슨 목사의 이야기다.
CNN은 분석 기사를 통해 제시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잭슨 목사가 미국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집중 보도했다.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잭슨 목사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최연소 스태프로 민권 운동에 뛰어든 이후, 평생을 경제적 평등과 소수자의 정치적 권리 확대를 위해 헌신했다.
흑인 교회가 길러낸 리더, 경제적 해방을 외치다
동시대 많은 민권 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잭슨 목사가 공적인 삶을 시작한 곳은 흑인 교회였다. 잭슨 목사는 교회에서 대중의 영혼을 울리는 법을 배웠고, 정의를 도덕적 의무로 여겼던 선배 세대의 발밑에서 리더십을 훈련받았다. 1970년대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 잭슨 목사는 시민 단체인 '푸시(Operation PUSH)'를 설립했다.
이 단체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생전 마지막으로 짊어졌던 과제를 이어받아 흑인과 빈곤층의 경제적 해방을 목표로 삼았다. 잭슨 목사는 흑인들을 국가 경제 체제에서 배제하려는 자본 권력을 향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잭슨 목사가 체결한 경제적 협약들은 수십 년간 흑인들이 기업 요직에 진출하고 프랜차이즈와 실질적인 소유권을 얻는 문을 열어주었다.
암살의 위협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전진
잭슨 목사의 삶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견뎌낸 긴 세월 그 자체다. 잭슨 목사가 공인으로 활동한 60년 동안, 머리 위에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39세, 메드가 에버스는 37세, 프레드 햄프턴은 21세에 총탄에 쓰러졌다.
가족을 향한 끊임없는 위협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잭슨 목사는 늘 맨 앞에 서 있었다. 잭슨 목사는 단순한 인권 투쟁을 넘어,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온전한 경제적, 정치적 참여를 누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 흑인 미국인들이 포춘 500대 기업의 CEO가 되고, 흑인 대통령과 부통령이 선출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잭슨 목사 세대의 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
주류 정치의 룰을 바꾼 두 번의 대선 도전
잭슨 목사의 운동은 흑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성,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잭슨 목사의 투쟁 덕분에 혜택을 입었다.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선거 출마는 미국 정치사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에 오른 잭슨 목사는 "우리는 인종적 전쟁터를 떠나 경제적 공통분모와 도덕적 고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잭슨 목사의 캠페인은 소수자의 표만 취하고 권력은 나누려 하지 않던 주류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경고 사격이었다. 잭슨 목사는 아웃사이더 후보로서 기득권에 맞서 싸웠고, 수백만 명의 유권자 등록을 이끌어내며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었다. 대선 후보 지명 규칙을 변경하게 만든 잭슨 목사의 노력은 훗날 버락 오바마가 2008년 대선 후보직을 거머쥐는 토대가 되었다.
희생으로 시대를 변화시킨 세대의 퇴장
2020년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몸에는 셀마에서 맞은 구타의 흉터가 남아 있었다. 잭슨 목사가 84년의 삶을 마친 지금, 그가 남긴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져 있다. 킹 목사의 암살을 목격하고, 수십 년의 위협을 견뎌온 그 심리적 무게는 어떤 사진으로도 포착되지 않는다.
목요일, 시카고 PUSH 본부에서 그의 추도식이 시작됐다. 흑인 교회가 길러낸 마지막 거인 중 한 명이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싸워서 얻어낸 것들 - 투표권, 기업의 문, 대통령이 된 흑인 남성 - 은 이제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 당연함이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기억하는 세대도, 이제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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