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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십자가 지겠다니..." 반면 기독교인들이 무심코 쓰는 불교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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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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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뉴욕교협 이사회에서 허연행 회장은 "스님이 십자가를 지겠다"는 뼈 있는 농담으로 종교 간 언어 혼용을 꼬집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매주 먹는 '점심', 예배당에 들어서는 '현관'이 불교 용어라는 사실과, 맛집을 찾아다니는 세태가 '성지순례'로 불리는 현상을 통해 언어의 유연성과 신앙의 품격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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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기독교의 언어를 거침없이 가져가 소비한다. 대표적인 것이 '성지순례(Pilgrimage)'다.(AI사진)

"스님이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절간의 동자승이 비장한 표정으로 손을 들며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라고 외친다. 이 기막힌 상황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본이 아니다. 지난 14일, 뉴욕교협 이사회 강단에서 터져 나온 예화다.

허연행 회장은 이날 '존귀한 자의 품격'을 설교하며 이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꺼냈다. 교회 바로 앞 사찰 승려들이 시끄러운 통성기도 소리에 항의하러 가기 꺼릴 때, 동자승이 총대를 메겠다며 던진 말이 바로 "십자가를 지겠다"였다는 것이다. 이 예화는 날카로운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얼마나 무심코 타 종교의 언어를 쓰고 있으며, 세상은 또 얼마나 기독교의 언어를 가져다 쓰고 있는가?

흔히 '이판사판'이나 '야단법석'이 불교 용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매 주일 교회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들 속에도 불교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다.

예배 후 먹는 '점심', 그리고 '현관'

가장 충격적인 예는 바로 '점심(點心)'이다. 주일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은 친교실로 향하며 "오늘 점심 메뉴가 뭐지?"라고 묻는다. 그런데 이 '점심'은 선종에서 유래한 용어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으로,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수행 중에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허기만 채우는 식사를 의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한인 교회의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 수준을 넘지는 않는가?

우리가 예배당에 들어설 때 거치는 '현관(玄關)'도 마찬가지다. 이는 본래 '그윽하고 현묘한 도(道)로 들어가는 관문'을 뜻하는 불교 용어였다. 지금은 아파트 입구부터 교회 입구까지 건물의 출입구를 통칭하지만, 그 어원에는 깊은 불교적 철학이 담겨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흔히 설교 예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主人公)'이라는 단어도 득도한 인물을 가리키는 불교어였다.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입니다"라고 설교할 때, 사실은 불교적 깨달음의 용어를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적인 일을 뜻하는 '다반사(茶飯事)' 역시 불가에서 유래했다. "기적을 다반사처럼 체험하십시오"라는 기도는 언어학적으로 보면 종교 통합적인(?) 문장이 되는 것이다.

맛집 투어가 '성지순례'? 담장 넘은 기독교 언어

반면, 세상은 기독교의 성스러운 언어를 거침없이 가져가 소비한다. 대표적인 것이 '성지순례(Pilgrimage)'다.

본래 예루살렘이나 사도들의 발자취를 쫓는 거룩한 여정을 뜻하던 이 단어는,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 맛집 탐방'이나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녀간 곳 방문'을 뜻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오늘 빵집 성지순례 다녀왔습니다"라는 SNS 게시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전도사'라는 직함도 마찬가지다. 교회 밖에서는 특정 기술이나 제품을 열정적으로 알리는 사람을 일컬어 '행복 전도사', 'AI 전도사'라 부른다. 심지어 불교계에서조차 어려운 일을 도맡을 때 허 회장의 예화처럼 "십자가를 진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쓴다고 한다. 언어에는 국경도, 종교의 담장도 없는 셈이다.

언어는 그릇, 담기는 것은 마음

허연행 회장이 이날 강조한 '품격'은 단순히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며 언어의 영적 무게감을 강조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든, 세상 사람들이 맛집을 찾아 '성지순례'를 가든, 중요한 것은 그 언어에 담기는 내용이다. 불교 용어인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 식탁에서 예수의 사랑을 나누면 그것은 성찬의 연장이 된다. 반대로 기독교 용어인 '장로'나 '집사'가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그 언어는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동자승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서는 유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내가 내뱉는 말이 내 신앙의 현주소라는 사실, 그리고 그 언어의 품격이 곧 그리스도인의 향기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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