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금지에서 에릭 리델의 금메달까지… 올림픽과 기독교 1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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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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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요약] 로마 황제가 폐지했던 이교도 축제 올림픽은 근대 기독교 사상과 만나 부활했다. 파리 올림픽의 조롱 논란과 스포츠 종교화 시도 속에서도, 에릭 리델의 헌신과 선수촌의 선교 단체들은 한계를 넘는 땀방울이 곧 진실한 기도임을 증명하며 올림픽을 신앙의 무대로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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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400m 금메달을 딴 에릭 리델. 주일 경기를 거부한 그의 선택은 훗날 영화 '불의 전차'로 만들어졌다 (AI사진)
전 세계가 열광하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제전은 한때 기독교인들이 가장 혐오하던 이교도 축제였다. 화려한 개막식과 메달의 영광 뒤편에는 무려 1천500년 동안 올림픽을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던 깊은 종교적 긴장감이 숨어 있다.
지난 22일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에서 2026년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서구 역사학계와 스포츠 선교 단체들은 대규모 국제 대회가 끝날 때마다 다신교 제사에서 출발한 올림픽이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맺어온 배척과 수용의 1600년 역사를 주요하게 조명한다.
황제의 철퇴와 '강건한 기독교'
기원전 776년 시작된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최고 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거대한 종교 제사였다.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공인한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서기 393년 이 대회를 전면 금지했다. 다신교 잔재를 뿌리 뽑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화려했던 경기장들은 지진과 홍수로 파괴되며 흙더미 아래 묻혔다.
사라진 올림픽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적 가치관의 변화였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강건한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 운동이 일어났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신앙이 깃든다는 철학은 스포츠를 단순한 오락에서 인격 수양의 도구로 격상시켰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영국 기독교 학교들의 체육 교육에 깊은 감명을 받아 올림픽을 부활시켰다.
올림픽의 우상화와 파리의 충돌
세월이 흘러 올림픽 자체가 거대한 종교적 성격을 띠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지낸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올림피즘은 모든 종교의 기본 가치를 통합한 20세기의 종교"라고 선언했다. 브런디지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올림피즘이 중세 가톨릭이나 현대 기독교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남겼다. 미국 복음주의 매체는 이러한 움직임을 올림픽의 우상화 현상으로 지적했다.
기독교와 올림픽의 팽팽한 긴장감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이 등장했다. 프랑스 주교회의는 공식 성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조롱과 모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랙 위에 새겨진 땀방울의 기도
화려한 조명 뒤 선수촌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966년 설립된 국제 스포츠 선교 단체 '애슬리츠 인 액션(Athletes in Action)'은 매 대회 다종교 센터 내에 예배 공간을 마련하고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를 파송한다. 메달리스트와 비메달리스트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이들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당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복음의 본질을 전한다.
올림픽과 신앙이 빚어낸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의 에릭 리델이 보여주었다. 주일 100미터 예선 경기를 포기해 거센 비난을 받았던 리델은 주 종목이 아닌 400미터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고, 훗날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며 영화 '불의 전차'의 주인공이 되었다.
오늘날 트랙 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가리키는 수많은 선수들 역시, 한계를 극복하며 흘린 정직한 땀방울이 과거의 이교도 축제를 가장 진실한 기도의 자리로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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