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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는 '덜어내고' 한인교회는 '모인다'… 사순절을 대하는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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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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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뉴욕의 사순절, 미국교회와 한인교회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미국교회는 긴 호흡의 성찰과 일상 속 실천(Giving up)을 강조하며 '흩어지는 경건'을 추구한다. 반면 한인교회는 특별 새벽기도회와 금식으로 '모이는 경건'에 집중하며 영적 전투를 치른다. 최근에는 2, 3세대를 거치며 사회적 실천과 정체성 탐구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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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해튼의 한 미국 성공회 교회에서 신자가 이마에 재를 바르고 나오고 있다(왼쪽)와 퀸즈에 있는 한인교회의 뜨거운 새벽기도 현장. (AI사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었던 지난해, 맨해튼 5번가를 걷다 보면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검은 재를 바른 직장인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시각, 퀸즈 플러싱의 한인교회 주차장은 새벽 5시부터 빽빽하게 들어찬 차들로 빈틈이 없었다. 사순절이 시작되면 미국교회는 더 조용해지고, 한인교회는 더 뜨거워진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40일의 여정은 같지만, 그 길을 걷는 보폭과 호흡은 확연히 다르다.

미국 교계와 한인 교계가 사순절을 보내는 가장 큰 차이는 '표현의 방식'에 있다. 미국 주요 교단, 특히 성공회나 루터교, 가톨릭 배경이 강한 회중들은 사순절을 시각적이고 예전(Liturgy)적으로 접근한다. 이들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라"는 사제의 말과 함께 이마에 재를 바르며, 죽음과 겸손을 몸으로 기억한다. 또한 초콜릿, 커피, 소셜 미디어 등 자신이 즐기던 것을 끊는 '기빙 업(Giving up)' 문화를 통해 일상 속에서 조용한 고행을 실천한다.

반면 한인교회의 사순절은 '집약적인 에너지'로 설명된다. 이민 1세대가 닦아놓은 신앙의 유산인 '특별 새벽기도회(특새)'가 그 중심에 있다. 미국인 목회자들은 평일 새벽에 수백 명이 모여 통성으로 기도하는 한인교회의 모습을 보며 "불가사의한 영적 현상"이라며 놀라워하곤 한다. 한국 특유의 '한(恨)'의 정서가 신앙과 결합하여, 고난주간이 다가올수록 금식과 철야 기도로 그 강도가 세진다. 미국교회가 침묵으로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한인교회는 부르짖음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셈이다.

느린 절기인가, 영적 전투인가

이러한 현상은 시간을 해석하는 신앙적 감각의 차이에서도 온다. 미국 교회에게 사순절은 '느리게 흘러가는 영적 계절'이다. 40일이라는 긴 호흡을 가지고 설교 시리즈를 이어가거나, 묵상집(Devotional)을 읽으며 차분히 개인 저널을 쓴다. 서두르지 않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한인교회에게 사순절은 일종의 '집중 캠페인 기간'이자 '영적 전투'의 시간이다. 평소보다 더 치열하게 매달려야 하는 시기로 인식한다. '특별'이라는 단어가 붙은 새벽기도회, 릴레이 금식, 부흥 집회 등이 40일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진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이 신앙생활에도 투영된 결과다.

미국 신자들이 40일을 '과정'으로 즐긴다면, 한인 신자들은 40일을 '완주해야 할 목표'로 삼는 경향이 짙다.

흩어지는 경건 대 모이는 경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즉 '어디에서 사순절을 보내는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서구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삶의 자리로 흩어지는 경건'을 강조한다. 교회 건물보다는 가정, 직장, 학교 등 개인의 일상 공간에서 절제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묵상하며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프라이버시' 존중 문화가 여기서 나온다.

반면 이민 교회는 여전히 '성전으로 모이는 경건'이 중심이다. 이민 1세대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선 '확대 가족'이자 피난처였다. 외로움과 고달픔을 서로 나누며 버텨온 역사가 있기에, 고난도 물리적 공간에 함께 모여 겪어내려는 연대 의식이 강하다. 사순절 기간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예배당의 불빛은 이민자들에게 여전히 가장 큰 위로다. 미국 신앙이 '일상으로의 침투'라면, 한인 신앙은 '거룩한 장소로의 초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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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1.5세 및 2세들의 새로운 사순절 실천 (AI사진)

고난에서 정체성으로: 세대별 진화

최근에는 이민 역사가 깊어지며 사순절 풍경도 세대별로 분화되고 있다. 1세대가 '고난 신학'과 '통성 기도'로 십자가에 동참했다면, 2세대(EM)는 이를 '사회적 실천'과 '윤리적 선택'으로 재해석한다. 단순히 음식을 굶는 금식을 넘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탄소 금식'이나 절약한 돈으로 지역 노숙인을 돕는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신앙을 증명하려 한다.

더 나아가 3세대에 이르면 사순절은 '정체성 탐구'와 '문화 번역'의 장이 된다. 이들은 한국적 영성(새벽기도의 열정)과 미국적 영성(사회 정의와 합리성) 사이에서 자신만의 신앙 언어를 찾으려 노력한다.

뉴욕의 한 미국인 목회자는 "한국 교회의 뜨거운 기도가 미국 교회의 식어가는 심장을 깨우고, 미국 교회의 차분한 성찰이 한국 교회의 분주함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사순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십자가라는 렌즈를 통해 나를 죽이고 예수를 사는 것, 그것이 뉴욕의 봄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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