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이 교리를 삼켰다... 텅 빈 예배당이 말하는 미국 교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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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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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사회과학자 라이언 버지는 신간 <The Vanishing Church>를 통해 정치적 양극화가 어떻게 미국 교회의 허리를 끊어놓았는지 분석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공존하던 '중도적 교회'의 소멸이 민주주의와 신앙 공동체 모두에게 위협이 되고 있음을 경고하며, 사회적 자본으로서 교회의 기능 회복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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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중도층이 설 자리를 잃고 교회가 이념의 전장으로 변질되면서, 공동체의 사회적 안전망 기능마저 붕괴하고 있다. (AI사진)
미국 교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나란히 앉아 예배드리던 '보라색(Purple) 교회'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성도가 한 공간에서 성만찬을 나누며 혐오를 녹여내던 완충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정치적 정체성이 신앙적 정체성을 집어삼킨 결과, 양극단만 남고 허리는 텅 비어버린 '도넛형 교회'가 가속화되는 중이다.
사회과학자이자 목회자인 라이언 버지(Ryan Burge)는 최근 RNS 주최 가상 포럼에서 자신의 신간 *The Vanishing Church(사라지는 교회)*를 인용해 이 같은 현상을 진단했다. 버지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양극화가 어떻게 지역 교회의 생태계를 파괴했는지 데이터를 통해 입증하며, 이것이 단순한 교세 감소를 넘어 민주주의와 사회적 안전망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텅 빈 예배당, 사라진 연결고리
버지는 자신이 직접 목회하며 폐쇄 절차를 밟아야 했던 일리노이주 마운트버논의 제일침례교회 사례를 들었다. 1960년대 300명이 넘던 교인은 2006년 50명으로, 마지막에는 10명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버지는 "내 교회가 사라지는 과정은 미국 전역 수천 개 중도 교회가 겪는 현실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교회는 사회적 사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버지는 대학 시절, 실직 후 월세를 걱정하던 한 청년이 교회 중보기도 시간에 사정을 털어놓자 예배 후 교인이 일자리를 제안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오늘날 가난한 청년은 교회에 오지 않고, 중산층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며 "이제 그들은 AI가 읽는 이력서 시스템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처지"라고 꼬집었다. 교회의 쇠퇴가 곧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적 자본의 소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기형적 쏠림'
데이터는 충격적이다. 1975년 미국 인구의 30%를 차지하던 메인라인(Mainline, 주류 개신교)은 오늘날 8%로 급감했다. 버지는 "도로 한가운데 서 있으면 양방향에서 차에 치인다"는 마가렛 대처의 말을 인용하며, 정치적 중도를 지향하던 교단들이 좌우 양쪽에서 공격받으며 설 자리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천주교와 복음주의권의 우경화는 더욱 뚜렷하다. 최근 10년 내 서품받은 가톨릭 사제의 85%가 신학적·정치적 보수를 자처한다. 2016년 트럼프에게 반감을 가졌던 히스패닉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마저 2024년에는 10% 포인트 이상 우측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힌두교도나 무슬림 중 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이 설문조사에서 자신을 '복음주의자(Evangelical)'라고 표기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 버지는 "이제 '복음주의'라는 단어는 신학적 용어가 아니라 '공화당을 지지하는 종교인'을 뜻하는 정치적 라벨이 되었다"고 해석했다.
온라인 부족주의와 현실의 괴리
인터넷 알고리즘은 이 분열에 기름을 부었다. 소셜 미디어는 가장 극단적인 목소리만을 증폭시켜, 평범한 중도층으로 하여금 "내가 이상한 것인가?"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버지는 "온라인상에서는 전투적인 의견이 지배하지만, 실제 데이터상 미국인의 다수는 여전히 중도적이며 타협을 원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교회 내 온건파들이 침묵한다는 점이다. 강성 목소리를 내는 소수에게 공격받기 싫어 입을 다물면서, 교회는 점차 극단적인 주장만이 통용되는 '메아리 방(Echo Chamber)'으로 변질되었다. 버지는 "목회자가 강단에서 '나도 이 성경 구절이 고민된다, 확신이 없다'고 말할 때 오히려 성도들은 위로를 받는다"며 확신의 과잉이 아닌, 의심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회복을 제안했다.
녹는 빙하 위의 북극곰
버지는 현재의 상황을 '지구온난화로 녹아가는 빙하 위의 북극곰'에 비유했다. 중도적 성향의 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빙하(교회)'는 쪼개지고 작아져, 결국 헤엄치다 지쳐 익사하거나 원치 않는 극단적 진영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암 사망률 감소 등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낙관하지만, 사회적 고립 문제는 수십 년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버지는 63%의 미국인이 여전히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그는 정치적 논쟁을 떠나, 단순히 '출석'하는 행위 자체가 개인의 삶과 사회를 회복시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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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양극화로 타격을 입은 미국 교회에서 한국교회도 교훈을 얻는다(AI사진)
태극기와 촛불 사이, 십자가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 교회의 '사라지는 중도' 현상은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진 한국 교회에 섬뜩한 데자뷔를 선사한다. 강단이 복음 대신 특정 이념의 확성기로 전락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신앙의 척도로 둔갑할 때, 가장 먼저 교회를 떠나는 이들은 합리적인 중도층과 다음 세대다.
버지의 경고처럼, 이념적 순결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교회는 그들만의 견고한 요새가 될지언정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잃어버린 '고립된 섬'으로 전락할 뿐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정치적 선명성'이 아닌 '영적 포용성'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가 바로 옆자리에서 함께 찬송을 부르고 성찬을 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속 정치가 흉내 낼 수 없는 교회의 신비이자 사회적 안전망이다.
정치적 구호가 난무하는 광장이 아니라,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의심과 질문을 품은 채로도 환대받을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텅 빈 예배당이 되지 않기 위해 한국 교회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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