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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성탄절에 오는 그들을 '가짜 신자' 취급하는 눈빛을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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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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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성탄절, 뉴욕의 한인교회들은 모처럼 찾아온 '가나안 성도'와 EM(영어권) 자녀들로 북적인다. 미 교계 매체들이 제시한 '성탄 목회 가이드'를 한인 이민 목회 현장에 비추어 재해석했다. 핵심은 '꼰대스러움'을 내려놓는 것. 1년 치 출석 체크 대신 따뜻한 눈맞춤을, 장황한 훈계 대신 명료한 '환대'를 택할 때, 비로소 그들은 내년 성탄을 기약하며 교회 문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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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 가장 낯선 얼굴들이 많이 모이는 성탄 예배, 목회자의 시선은 심판관이 아닌 고향집 아버지의 눈빛이어야 한다. (AI사진)

 

뉴욕의 12월, 매서운 바람을 뚫고 교회 주차장에 들어서는 차량들의 번호판이 낯설다. 타주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온 유학생,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1년 만에 교회 문턱을 넘는 2세 자녀들, 그리고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려 혹시나 하고 찾아온 초신자들이다.

 

이 순간 강단에 선 한인 목회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신앙생활은 잘 하고 있냐"는 걱정 어린 훈계를 해야 할까, 아니면 "세속적 성탄 문화"를 질타해야 할까.

 

최근 미 주류 교계 매체인 뱁티스트 뉴스 글로벌뱁티스트 프레스가 내놓은 '성탄절 목회 가이드'는 이러한 목회자의 '본능'에 경종을 울린다. 특히 세대 간 갈등과 문화적 차이가 뚜렷한 한인 이민 교회에서 이 조언들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성탄절은 '밀린 숙제 검사'를 하는 날이 아니라, 지친 이민자들에게 '영적 고향'을 확인시켜주는 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타'와 싸우지 말고, '아마존'을 이기려 들지 마라

 

한인교회의 성탄절 회중석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흐른다. 연말 특수를 누려야 하는 자영업 성도들의 피로감, 자녀 선물 마련하느라 얇아진 지갑, 그리고 화려한 맨해튼의 트리 불빛 아래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곳에서 목회자가 "성탄의 주인은 산타가 아니다"라며 상업주의를 매섭게 비판하는 것은, 이미 세상살이에 지친 성도들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얹어주는 일일 수 있다.

 

데이비드 헨슨의 지적처럼,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미 쇼핑몰의 캐럴과 카드 명세서 사이에서 충분히 공허함을 느꼈다. 굳이 강단에서까지 세상 문화를 적으로 규정하고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오랜만에 온 젊은 세대(EM)에게 이런 설교는 "역시 교회는 고리타분해"라는 확신만 심어줄 뿐이다. 필요한 것은 냉철한 문화 비평이 아니라, 그들의 팍팍한 이민 생활을 위로하는 따뜻한 성육신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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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오는 그들을 '가짜 신자' 취급하는 눈빛을 거두어야 한다. (AI사진)

 

통역 설교의 비극... '핵심'만 남기고 다 버려라

 

한인교회 성탄 예배의 가장 큰 난관은 언어다. KM(한어권)과 EM이 함께 드리는 연합예배라면 설교 시간은 통역 때문에 두 배로 길어진다. 여기에 성가대 칸타타와 주일학교 재롱잔치까지 더해지면 예배는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척 로리스가 조언한 "설교를 짧게 하라"는 원칙은 한인교회에서 생존의 문제다.

 

오랜만에 온 '김 집사님 아들'은 신학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동정녀 탄생의 교리적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거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읊는 것은 멈춰야 한다.

 

설교하는 목사는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초대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이 낯선 땅, 우리 삶의 한복판에 찾아오셨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 하나면 충분하다. 복잡한 신학은 주중 성경공부 시간으로 미루고, 이날만큼은 '짧고 굵은' 울림을 주어야 한다.

 

'등록 카드' 대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예배의 성패는 설교단이 아니라 친교실에서 결정된다. 특히 한국 정서상 '밥상 공동체'는 복음의 통로다. 하지만 뱁티스트 프레스의 지적처럼, 우리만의 언어와 관습은 낯선 이들에게 높은 장벽이 된다. "오늘 처음 오신 분 일어나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세우거나, 밥 먹는 낯선 이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등록 카드 쓰셨냐"고 묻는 것은 환대가 아니라 취조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그들을 '가짜 신자' 취급하는 눈빛을 거두어야 한다. 그들은 어쩌면 부모님의 체면 때문에, 혹은 이민 생활의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에 마지막 용기를 내어 교회 문을 열었을지 모른다. 목회자와 리더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차 안내부터 식사 자리까지, 그들이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도록 묵묵히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베들레헴 마구간의 기적은 그곳이 왕궁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낮고 열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성탄절, 뉴욕의 한인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날카로운 지성보다, 일 년 만에 돌아온 탕자(혹은 손님)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넉넉한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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