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교회,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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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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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미국의 피난처 교회(Sanctuary Church) 운동은 더 이상 교회 건물 안에 이민자를 숨겨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변화된 정책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법률 지원, 추방자들을 위한 물품 제공, 법정 동행, 연대 시위 등 포괄적인 지원과 연대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개별 교회를 넘어 교회 연합과 종교간 협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피난처 교회 운동은 개별 교회를 넘어 교회 연합과 종교간 협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AI 생성사진)
미국 전역의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 정책이 계속해서 변화의 물결을 타는 가운데,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이민자들에게 어떻게 긍휼을 보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이전까지 교회는 이민 단속 요원들이 함부로 법을 집행할 수 없는 '민감한 장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 지침이 폐지되면서, 교회 역시 이민 단속의 예외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만약 이민 단속국 직원이 교회의 문을 두드린다면, 추방의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회자와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은 오늘날 미국 교회가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언제나 약자들의 피난처 역할을 감당해왔다. 현대적인 의미의 피난처 교회 운동은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당시 엘살바도르의 극우 암살단을 피해 미국으로 온 23세 공대생 호세 아티가(Jose Artiga)의 이야기는 이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버클리 지역의 다섯 개 교회(루터교, 장로교, 가톨릭, 성공회, 감리교)는 그를 포함한 망명 신청자들에게 교회를 피난처로 제공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이스트베이 피난처 서약(East Bay Sanctuary Covenant)'이라는 연대를 만들어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돕는 일에 힘을 합쳤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400개 이상의 교회가 동참했고, 2016년 대선 이후 그 숫자는 두 배로 늘어났다.
'교회 건물'을 넘어선 '희망의 공동체'로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피난처 운동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이제는 단순히 교회 건물 안에 이민자를 머물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클랜드 성바울 성공회 교회의 관계자는 "피난처 운동은 사랑과 보호, 정의에 뿌리를 둔 신성한 전통"이라며, 과거 지하철도를 통해 흑인 노예들의 자유를 돕고 80년대 중앙아메리카 난민들을 지원했던 것처럼, 지금은 추방, 구금, 가족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 이민자 가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교회는 이민자들에게 희망과 지원을 제공하는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다. 성바울 교회는 추방되어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이들에게 깨끗한 옷과 생필품이 든 가방을 채워준다. 그들은 "빈손으로 떠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망명 신청자들이 법정에 설 때 동행팀을 꾸려 함께하고, 가구와 집을 구하는 일을 도우며, 이민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도록 '권리 찾기' 세션을 주최하기도 한다. 이민법 개혁을 위한 집회와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목소리를 낸다.
이처럼 오늘날의 피난처 운동은 한 사람을 교회 안에 숨기는 소극적 보호를 넘어, 그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포괄적인 활동으로 확장됐다.
샌프란시스코의 성요한 교회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 교회는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한다. 첫째, 엘살바도르로 추방된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매주 기도한다. 둘째, 이민자들이 부당한 요구에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교육한다. 셋째, 시민권을 가진 교인들이 직접 시위에 참여해 연대한다.
'나홀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연대'라는 키워드가 있다. 캘리포니아 교구의 메토이어 성공회 신부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정의의 문제를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온몸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회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공회의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교단, 나아가 다른 종교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이민자 지원 활동은 더욱 효과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결국 피난처 교회 운동의 진화는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교회의 본질은 높은 담장과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상처받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다.
이민자들을 위한 교회의 노력은 단순히 사회 운동이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고백 그 자체다. 법과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서 사랑과 긍휼이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미국의 교회들은 함께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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