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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설교,회중 비위 맞추다 예리함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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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ㆍ2007-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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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 신약학 교수 출신의 권성수 대구 동신교회 담임목사     ©뉴스 파워  

  

대구 동신교회 권성수 목사는 광주에서 열린 예장합동 목사장로 기도회 설교에서 국제적인 고립과 세계 최저 출산율, 세계 제2위 낙태율, 세계 제2위 이혼율, 높은 실업률을 들어 “지금 우리는 외국에 국권을 박탈당하는 국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여지없이 흔들리는 국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으면서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목사는 또 길선주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예로 들며 “한국 교회의 설교는 회중들의 비위에 맞추고 유행하는 사상에 맞추다가 예리한 각도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하고  “싸매고 치료하는 말씀도 필요하지만 찌르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어 수술하는 말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권 목사는 “한국 교회 성도들은 부르짖는 개인기도와 부르짖는 통성기도를 하는데 왜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는데 죄를 청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만, 탐욕, 사기, 부정부패, 간음, 성적 타락, 횡령, 도적질, 미움, 나태, 부모 거역, 분열 등을 회개해야 한다고 촉구한 권 목사는 “공적으로 범한 죄는 공적으로 회개하고 청산해야 한다. 공적으로 알려진 죄도 공적으로 고백하고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설교를 하고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청산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 주지 말아야 할 돈을 주고, 받지 말아야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돌려주거나 헌금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회개를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권 목사는 마지막으로 참석한 목사와 장로들을 향해 “설교를 통해 예리하게 지적된 죄악을 회개하고 청산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비상 충만을 동시다발적으로 부어주신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권 목사의 설교문 전문. 

 

청산회개가 부흥의 문을 여는 열쇠 (사도행전 2:37-41) 

권성수 목사(대구 동신교회)

 

한국교회는 지금 1907년 평양대부흥 때와 같은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평양대부흥이 일어나기 전 우리나라는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국민들은 원통한 가슴을 치면서도 나라를 회복할 희망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억압통치의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하나님은 소망을 불어넣는 대심방(Great visitation)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하심으로 개인 심령을 살리시고 가정을 살리시고 교회를 살리셔서 민족의 수난을 순교적 믿음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계 10대 교역 대국으로, 세계 제2의 선교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평양 대부흥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외국에 국권을 박탈당하는 국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여지없이 흔들리는 국체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지혜로운 국제공조 관계 속에서 전 세계로 쭉쭉 뻗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고립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 최저 출산율, 세계 제2위 낙태율, 세계 제2위 이혼율, 게다가 높은 실업률을 겪으면서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윤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처절한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교회는 세상의 지탄을 받으면서 점점 힘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평양대부흥과 같은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1907년의 대부흥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평양대부흥과 같은 부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1. 말씀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세계 전역에서 모여 온 사람들에게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나사렛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 하셨음에도 여러분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메시아이십니다.” 

 

베드로는 회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예리하게 지적했던 것입니다. 회중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는 탄식을 했습니다(37절). 회중들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찔리고 뚫리고 두들겨 맞고 놀라 가책과 고뇌 속에서 울부짖은 것입니다.  

 

부흥의 시작은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1장 23절에도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요 16:7-11). 부흥운동의 기간에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각성사역(convicting work)이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장대현교회에서 4개 장로교 선교회 연합 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과 30분 동안 찬양, 그리고 3시간 성경 공부, 오후에 전도, 저녁 특별전도집회로 이어지는 사경회에는 800-1000명이 운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4백리(160킬로) 밖에서도 걸어서 참석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이런 회중들에게 1월 6일 저녁에 “맛을 잃은 말라빠진 사람들아”라는 제목으로 회중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회중들은 성령께서 말씀으로 휘두르는 예리한 칼에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선교하던 남감리교 선교사 저다인은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설교할 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외과용 수술도처럼 사람의 심령을 깊이 쪼개어 은밀한 죄악들과 영혼의 숨겨진 암세포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했습니다. 회중들은 예리하게 죄를 지적하는 설교에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18세기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란 죄목으로 설교를 할 때 원고를 얼굴에 바짝 대고 설교했기 때문에 회중들은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에드워즈는 예배당에 가득 모인 신자들이 억제할 수 없도록 각성할 때까지 계속 설교를 했습니다. 드디어 한 사람이 펄쩍 뛰어 일어나면서  ”목사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교회 좌석을 꽉 붙잡았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심판의 날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드워즈의 설교가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무디 선생님은 “교회를 부흥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강단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설교자가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 없이 전할 때에 회중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이것이 부흥의 시발점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한국교회의 설교는 회중들의 비위에 맞추고 유행하는 사상에 맞추다가 예리한 각도를 잃어버렸습니다. 설교가 솜사탕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성도들이 강력한 도전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검인데(엡 6:17), 한국교회 설교자는 녹 쓴 검, 무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양대부흥 같은 부흥을 사모한다면, 설교자와 교인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싸매고 치료하는 말씀도 필요하지만 찌르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어 수술하는 말씀이 필요합니다. 교인은 양심대로 외치는 설교자를 세워주고 설교자는 강단의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2. 회개(기도)

 

본문에서 베드로는 마음에 찔려 고민하는 회중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38절). 여기서 “성령의 선물”은 ‘성령이라는 선물’입니다. 성령이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있는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39절).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최초로 믿는 사람에게도 해당되지만, 이미 예수님을 믿고 사는 신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신자는 물론 이미 성령님을 받아 성령님께서 신자 속에 내주하시고 계시지만(고전 12:3, 13; 롬 8:9), 회개하고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때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회개, 바른 태도, 믿음, 세례, 경배, 간구, 단합, 인내, 무조건 순종 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회개입니다. 회개가 부흥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모든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깨닫고 아는 모든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세례는 기독교 순종의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외부적으로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소극적으로 죄를 버리는 것이고, 세례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넓게 보아서 회개는 죄를 버리고 예수님께 속하는 것을 포괄합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동일한 마음에 알려진 죄와 동거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것은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과 축복이 내려오는 통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직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죄를 고백하고 청산해야 합니다(요일 1:6-10). 베드로 사도는 예루살렘 공회에서도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행 15:8-9). 

 

구약 성경에서 회개(‘슈브’)는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 (대하 7:14). 신약 성경에서 회개(‘메타노이아’)는 마음의 변화(change of mind), 즉 죄를 사랑하던 마음을 바꾸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행 26:20; 살전 1:9-10). 

 

회개는 지정의(知情意)를 포괄합니다. 회개는 지성 면에서,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는 정서 면에서 죄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의지 면에서 떠날 것을 떠나고 갚을 것을 갚는 것입니다. 머리(지성)와 마음(감성)과 행동(의지)의 변화가 일어나야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디 선교사는 원산과 강원도 통천 지방에서 3년 간 선교했으나 아무런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하디 선교사는 답답한 마음으로 처음에는 선교사들 앞에서, 주일 오전 예배 때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교만, 심령의 강퍅함, 믿음의 부족 등을 눈물로 참회했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죄를 고백한 후 한 청년이 교만, 탐욕, 위선적인 행위 등을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1903년 원산부흥운동은 상가에서와 같이 통곡하는 회개가 있었습니다. 

 

1907년 1월 13일 장대현교회 주일 저녁 집회는 죽은 것처럼 보였고 악령의 방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회중들은 더욱 간절히 간구했고 14일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습니다. 회개와 간증이 지속되면서 저녁 8시 시작한 집회가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교회의 장로인 나는 강유문뿐 아니라 방 목사를 미워한 죄를 지었습니다.”고 회개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완전히 나자빠져 흐느껴 울부짖었습니다. 남편들은 새 아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증오했다고 고백했습니다. 300불을 소책자에서 발견하고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강도가 자수하고 자진해서 구속된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손실들을 배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둑맞은 물건을 되돌려주고 갚지 않았던 빚을 청산하고 부정한 방법들을 전반적으로 바로 잡았습니다. 기만, 교만, 속됨, 간음, 탐욕, 증오, 질투 등을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세로 가족을 대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형제를 미워했다고 고백하고, 빚을 갚지 않았다고 회개하고, 한 남자와 1년 넘게 동거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토레이(R. A. Torre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땅 위의 어느 교회나 지역이나 도시에도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비결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 소수의 신자들(많은 신자들이 아니어도 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리끼는 것들을 철저하게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나머지 다른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둘째, 그들로 하여금 부흥을 위한 기도 그룹을 만들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기고 내려오실 때까지 기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데 적합하다고 보시는 대로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도록 자신들을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교회나 어떤 지역에도 부흥이 일어납니다. 저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 비결을 말씀드렸습니다. 많은 교회들과 지역들이 이 비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그 중에 한 경우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이 비결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빌리 그래함에게 “전도가 부흥입니까?”고 질문하자 빌리 그래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부흥이 올 때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째, ‘아, 하나님이 거룩하시구나!’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둘째, ‘아, 내가 죄인이구나!’ 하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어느 부흥 집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연일 집회는 계속되는데 신자들이 전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집회만 계속되자, 어느 날 저녁 장로님 한 분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무개 집사님과 제가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장로님이 이렇게 말하면서 그 집사님에게 찾아가서, “집사님, 우리가 5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요. 우리 화해합시다. 제가 먼저 손을 내밀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회중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교인이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 앞에서는 좋은 말만 하고, 목사님 뒤에서는 목사님에 대해서 줄곧 나쁜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많은 교인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부흥이 그 지역을 3년 동안 휩쓸었습니다.

 

부흥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면 부흥의 가장 큰 비결이 누가복음 11장 13절이라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한국교회 성도들은 부르짖는 개인기도와 부르짖는 통성기도를 하는데 왜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눈물 콧물을 흘리는데 죄를 청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곡하고 고백하는데 죄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인정하고 후회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그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살려주시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살려 주십니다. 머리와 마음과 행동으로 하는 진정한 회개는 부흥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명예와 권력과 지위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행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 탐욕, 사기, 부정부패, 간음, 성적 타락, 횡령, 도적질, 미움, 나태, 부모 거역, 분열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죄로 아픈 가슴으로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손해 끼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공적으로 범한 죄는 공적으로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알려진 죄도 공적으로 고백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설교를 하고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청산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주지 말아야 할 돈을 주고, 받지 말아야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돌려주거나 헌금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순간마다 누리는 생명적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바로 섬겨야 합니다. 

 

복음주의 지도자 존 스토트(John Stott)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실패를 양심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실패가 그리스도와 세상에 대한 범죄(offense)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말(talk)과 교회의 삶(walk) 사이에 공신력의 갭이 있음을 보고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에 대해 쉽게 변명하고 우리의 실패를 쉽게 묵인해 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확산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하나의 새로운 인류, 하나의 인류 공동체의 모델, 화해된 형제자매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하나의 가족, 성령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살아 계시는 거소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교회가 본래 그래야 하는 모습이요, 교회가 그렇게 드러나야 하는 모습이며,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 될 때에만 세상은 그리스도를 화해자(Peacemaker)로 믿을 것입니다. 그 때에만 하나님이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부흥 

 

성경에는 ‘부흥’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그 개념은 있습니다(대상 11:8; 삿 15:19; 시 85:6; 사 57:15; 64:1-2; 합 3:2). “부흥은 죽은 자들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이 전달되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영적인 건강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James Buchanan). 부흥은 “생명의 회복,” “교회가 쇠퇴한 후에 교회에 생명을 회복시키는 행위,” “거의 죽은 후의 회복”입니다.

 

교회의 생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성령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임하는 행위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대심방입니다. 하나님이 대심방 하시면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것이 많은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거리가 됩니다(행 2장, 4장). 하나님이 대심방을 하시면 영적인 각성이 뒤따라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꿀송이처럼 받아먹습니다. 사람들이 뜨겁게 기도합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대규모로 주님께 돌아옵니다. 성령의 비상한 운동으로 비상한 결과가 생겨납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가장 비상하게 역사하시는 모습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강한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갈망과 간구를 드립니다. 부흥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개입입니다. 부흥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성령, 오순절의 성령이 가시적인 교회를 강력하게 휩쓸고 지나가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통상적인 사역과 기도와 신자들과 새로운 회심자들의 삶에 복이 임합니다.” 부흥은 “정상적인 신약의 기독교에 비상하게 강렬한 축복의 계절”로 이해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John Armstrong, Preparing for True Revival: When God Moves [Harvest, 1998], p. 22).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은 경이롭고 경탄스러워 우리의 최고의 상상도 초월합니다. 성경에는 통상적으로 하시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과 비상한 것을 하시는 하나님, 즉 내려오시는 하나님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 . . 부흥은 성령님이 그야말로 백성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에 대한 의식입니다. 아마 여기 있는 우리들은 대부분 그것을 결코 체험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님의 심방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통상적인 생활과 사역의 최고의 체험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 중에 누군가가 계신다는 것을 의식합니다. 그들은 영광을 의식하고 임재를 의식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묘사할 수도 없고, 말로 옮겨 놓을 수가 없습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에 그들은 전에 몰랐던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게 됩니다“(Martyn Lloyd-Jones). 

 

“부흥 기간은 교회생활에서 통상적인 나날들이 아니라 비상하고 초자연적인 나날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압도적인 실체로 나타내시는 위대한 나날들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초월하심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동시에 당신 자신의 무가치함과 하나님께 대한 의존성을 깊이 인식하게 합니다. ... 부흥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너무도 강력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 때의 수년간의 신실한 사역보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이 몇 시간이나 며칠에 이루어내십니다”(Wesley Duewel). 

 

부흥에 대해서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부흥은 없다는 견해: 이것은 기독교 시대 전체가 부흥기라고 하는 견해입니다. 부흥은 비상한 사건이 아니라 신약 시대 전체의 지속적인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Richard B. Gaffin, Lewis Sperry Chafer, Frederick Dale Brunner, Abraham Kuyper, Charles Hodge). 이 견해에 의하면 부흥은 특수한 시기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하고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자체가 부흥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오순절의 축복이 1940년대의 신자들, 1904년의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롬 8:9). 

 

이 견해에 의하면 새로운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지금보다 더 나는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성령의 특별하게 놀라운 체험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전체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는 시대인 것을 분명하지만, 신약시대 중에도 성령께서 특별히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시대가 따로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Jonathan Edwards).

 

(2) 부흥은 가능하다는 견해: 이것은 기도와 성결(대하 7:14)과 전도 등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부흥이 가능하다는 견해입니다 (Charles G. Finney). 

 

그러나 역대하 7장 14절은 사죄와 고침의 약속이지 온 땅에 동시다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요한이 요한복음 7장 37-39절의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부흥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밧모섬에 유배되어 박해를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설교할 때는 3천명이 회개했으나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할 때는 몇 명만 회개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할 때에 열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비상하고 광범위한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심고 물주지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결과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예가 있습니다.  

* 조지 윗필드가 1740년에 미국 식민지역들을 수년 간 순회했을 때 어디서 설교하든 놀라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으로 돌아올 때 동일한 능력과 동일한 명료성으로 1740-42년에 설교했는데 1차 순회여행과 같은 추수는 없었습니다. 

* 찰스 스펄젼이 19세에 런던 뉴파크 스트리트 교회에 부임했을 때 1년에 1천명이나 회심했습니다. 그 후 30년 동안 계속적으로 놀라운 추수를 했으나 초기와 같은 추수는 결코 얻지 못했습니다. 

 

* 스코틀란드 목회자 차머 번즈(Chalmers Burns)는 1839-42년에 놀라운 열매를 맺었으나 1846년에 중국에 선교사로 들어간 이후 21년간 효과적인 전도를 했지만 결코 부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성경과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의 때와 하나님 나름의 방식과 하나님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3)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라는 견해: 하나님만이 부흥의 소낙비를 내려주십니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의 실제적인 영향을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획일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강하게 역사하실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거나 기다리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의 세 가지 견해를 보면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에 약속된 성령이 임하신 시대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흥을 주시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방법대로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할 때에 3천 명이나 변화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41절). 3천 명이 한꺼번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것은 굉장한 부흥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부흥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음식을 토하듯 죄를 토하는 회개, 죄악을 끊고 놀랍게 변화되는 전격적인 성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듣기만 하던 사람이 보는 것처럼 깨닫는 확신(욥 42:5), 불타는 전도와 천국 확장, 성령의 비상한 은사들의 나타남, 뜨거운 헌신(사 6:1-8), 악령과의 대결에서 통쾌한 승리 등--이런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부흥(revival)이라고 합니다. 평양대부흥은 회개와 성화와 헌신과 확신과 성장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1907년 당시 평양은 소돔성이라고 할 만큼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영적으로 희망이 없던 도시였습니다. 타락의 도시, 절망의 도시에 성령님께서 대심방을 하시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교회가 변화되었고 도시가 변화되었습니다. 회개와 변화의 강력한 새바람은 전국으로 불어갔습니다.

 

이승만이 감옥에 있을 때 많은 동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교가 대한(大韓) 장래의 기초”라고 했습니다. 이승만은 나라를 살리는 길은 경제 중흥도, 도덕 향상도, 사회 발전도 아니라, 오직 성령님이 성경으로 나라를 흥왕케 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양대부흥은 지방으로 확산될 뿐 아니라 중국 선교를 통해 해외로 확산되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그 후 1909-1910년 백만인구령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제에 짓밟힌 나라를 먼저 영적으로 살리고, 후에 육적으로 살리게 된 것입니다. 

 

캐나다 서부에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바이블 벨트’(Bible Belt) 지역에 위치한 사카툰(Sakatoon)은 조용한 평원 타운입니다. 그 타운에는 주민 750명 당 복음주의 교회가 한 개씩 세워져 있습니다. 캐나다 전체에서 교회가 제일 많은 타운입니다. 그 타운의 에벤에셀 침례교회(Ebenezer Baptist Church)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습니다. 설교자는 성경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살피도록 회중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설교자는 어떤 죄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지적하고 적절한 배상을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면서 자신들이 잘못한 것들을 배상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수년 전에 훔쳤던 물건들의 값을 지불하겠다고 가게로 나타나자 사업가들이 이미 손실로 처리해 버린 것들이기 때문에 배상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라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훔친 물건들을 상점에 돌려드리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상점마다 만원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웨일즈(Wales) 부흥운동 때 광부들이 얼마나 죄를 회개하는지 수년간 광산에서 학대 받았던 당나귀들이 갑자기 친절해진 광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다고 합니다. 

 

멕콜리 박사(J. C. Macaulay)가 히브라이즈(Hebrides) 섬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 걸어가고 있을 때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라이즈 섬에 있는 교회는 부흥이 일어난 교회입니다. 멕콜리 박사님이 어떤 사람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오두막집에서 낮은 목소리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함께 가던 사람이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분은 윌리암이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 통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곧 나올 것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과 같은 부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부흥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그런 부흥이 다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리한 검으로 사용하면서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 예리하게 지적된 죄악을 회개하고 청산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비상충만을 동시다발적으로 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우리 개인과 교회와 민족에게 성령의 폭풍, 부흥의 폭풍, 생명의 폭풍, 기적의 폭풍이 불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김성원  ⓒ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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