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 비둘기똥콩 한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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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목사 (172.♡.♡.114)ㆍ2025-11-05 22:5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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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 비둘기똥콩 한 사발
[열왕기하 6장 24-30절]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아람왕 벤하닷을 아합이 멋대로 살려주는 바람에 벤하닷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이 됩니다. 아합의 첫째 아들 아하시아가 죽고 둘째 아들 여호람 왕 때 아람왕 벤하닷이 다시 군대를 끌고 와 사마리아를 포위합니다. 완전히 고립되어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는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굶주린 백성들....... 먹거리의 값이 천정부지로 뜁니다.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입니다. 80 세겔이면 거의 1 킬로그램, 은 1킬로그램이면 지금의 화폐가치로 쳐도 수백만원은 넘을 것입니다.
합분태, “비둘기 합, 똥 분, 작은 콩 태”, 즉 ‘합분태’란 “비둘기똥”, 아마 비둘기똥처럼 생긴 작은 콩인 것 같습니다. 그 합분태 사분의 일, 아마 4분의 1 오멜인 것 같습니다. 작은 사발 한 그릇 정도 됩니다. 그 비둘기똥처럼 생긴 콩 한 사발이 은 다섯 세겔, 그러니까 은 60그램 정도, 백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 똥이라도 사먹어야 하는 처참한 기아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 극심한 굶주림으로 인하여 두 여자가 자신들의 아기를 잡아먹는 처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여자가 아들을 잡아먹기로 하고 한 아이를 잡아서 삶아 먹은 다음 다른 여자가 자기 아들을 숨겨버렸습니다. 자기 아들을 먼저 잡아서 나눠먹은 여자가 억울하다고 왕에게 하소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처참한 이야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 이 세상에는 악의 무리, 괴롭히고 죽이는 자들이 끝없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은 마귀요 사단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한사코 놓아주지 않으려 했던 애굽왕 바로는 사단이었을까요?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은 왜 이런 악인과 고난과 악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러한 악을 제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욥기를 보면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칩니다. 어째서 사단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욥을 치도록 허락 받는단 말입니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 세상을 알 수 없고, 우리는 우주의 시공 속에 살면서도 우주와 시공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주물리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조차 말입니다. 인간은 보고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부터 인간의 지성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는 결코 악이 없으시나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시험과 고난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고 다듬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욥기가 그렇고, 에스겔서, 요한계시록 같은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단을 사용하여 시험하시고 욥을 연단하고 복 주셨으며 곡과 마곡의 코를 갈고리로 꿰어 끌어와 예루살렘을 치도록 하시고 그 다음 그것들을 진노로 파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같은 고난이 있어야 정금 같은 믿음이 드러나고 선과 악이 구분되고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집니다. 고난이 있어야 상 줄 구실이 생깁니다. 고난 없이 상을 주면 사단이 시비를 걸 것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의 고백과 같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중이신 것입니다. 연단은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이스라엘 민족도, 유다 백성들도, 그리고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은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고난이 닥치거든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신뢰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보고 계시며 약속대로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붙잡은 자들에게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고난이 혹독하다면 그만큼 상도 더 클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하는 자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여호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그 여자들은 굶주림에 굴복하여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고 아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메시아의 약속이 아들을 통하여, 언젠가는 메시아가 사람의 아들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생각한다면 아들을 잡아먹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메시아의 약속을 스스로 끊어버린 무시무시한 죄입니다.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이스라엘 군대장관은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비웃으며 불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성문 밖 네 문둥이가 아람군대에 항복하러 갔을 때 아람군대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여 모든 식량과 물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습니다. 엘리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이든 국가이든 어떠한 고난과 환난과 위험이 닥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도 그렇다 싶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성문 밖에서는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군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아람군대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열왕기하 6장 24-30절]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아람왕 벤하닷을 아합이 멋대로 살려주는 바람에 벤하닷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이 됩니다. 아합의 첫째 아들 아하시아가 죽고 둘째 아들 여호람 왕 때 아람왕 벤하닷이 다시 군대를 끌고 와 사마리아를 포위합니다. 완전히 고립되어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는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굶주린 백성들....... 먹거리의 값이 천정부지로 뜁니다.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입니다. 80 세겔이면 거의 1 킬로그램, 은 1킬로그램이면 지금의 화폐가치로 쳐도 수백만원은 넘을 것입니다.
합분태, “비둘기 합, 똥 분, 작은 콩 태”, 즉 ‘합분태’란 “비둘기똥”, 아마 비둘기똥처럼 생긴 작은 콩인 것 같습니다. 그 합분태 사분의 일, 아마 4분의 1 오멜인 것 같습니다. 작은 사발 한 그릇 정도 됩니다. 그 비둘기똥처럼 생긴 콩 한 사발이 은 다섯 세겔, 그러니까 은 60그램 정도, 백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이 없어 똥이라도 사먹어야 하는 처참한 기아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 극심한 굶주림으로 인하여 두 여자가 자신들의 아기를 잡아먹는 처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여자가 아들을 잡아먹기로 하고 한 아이를 잡아서 삶아 먹은 다음 다른 여자가 자기 아들을 숨겨버렸습니다. 자기 아들을 먼저 잡아서 나눠먹은 여자가 억울하다고 왕에게 하소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처참한 이야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 이 세상에는 악의 무리, 괴롭히고 죽이는 자들이 끝없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사마리아를 포위한 벤하닷은 마귀요 사단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려먹으며 한사코 놓아주지 않으려 했던 애굽왕 바로는 사단이었을까요?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은 왜 이런 악인과 고난과 악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러한 악을 제거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욥기를 보면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칩니다. 어째서 사단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욥을 치도록 허락 받는단 말입니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도 이 세상을 알 수 없고, 우리는 우주의 시공 속에 살면서도 우주와 시공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주물리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조차 말입니다. 인간은 보고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부터 인간의 지성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는 결코 악이 없으시나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듯이 하나님은 시험과 고난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고 다듬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욥기가 그렇고, 에스겔서, 요한계시록 같은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사단을 사용하여 시험하시고 욥을 연단하고 복 주셨으며 곡과 마곡의 코를 갈고리로 꿰어 끌어와 예루살렘을 치도록 하시고 그 다음 그것들을 진노로 파하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같은 고난이 있어야 정금 같은 믿음이 드러나고 선과 악이 구분되고 알곡과 가라지가 나누어집니다. 고난이 있어야 상 줄 구실이 생깁니다. 고난 없이 상을 주면 사단이 시비를 걸 것입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의 고백과 같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중이신 것입니다. 연단은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이스라엘 민족도, 유다 백성들도, 그리고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은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고난이 닥치거든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신뢰하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보고 계시며 약속대로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붙잡은 자들에게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고난이 혹독하다면 그만큼 상도 더 클 것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하는 자들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여호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그 여자들은 굶주림에 굴복하여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고 아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메시아의 약속이 아들을 통하여, 언젠가는 메시아가 사람의 아들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생각한다면 아들을 잡아먹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메시아의 약속을 스스로 끊어버린 무시무시한 죄입니다.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 이스라엘 군대장관은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신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비웃으며 불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성문 밖 네 문둥이가 아람군대에 항복하러 갔을 때 아람군대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하여 모든 식량과 물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습니다. 엘리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이든 국가이든 어떠한 고난과 환난과 위험이 닥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도 그렇다 싶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성문 밖에서는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군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아람군대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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