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9) 겨우 세 번 치고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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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목사ㆍ2025-11-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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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9) 겨우 세 번 치고 스톱?
<열왕기하 13장 18-19장>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여러 해 전입니다만 양로원에서 몇 년 동안 일했습니다. 양로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노인환자들을 수발할 때 가장 힘 드는 건 축 늘어지는 노인환자입니다. 사람이 축 늘어지면 아주 무겁습니다. 다루기가 너무 힘듭니다. 열왕기를 살펴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인간들이 바로 축 쳐지고 늘어지는 나약하고 맥 빠진 존재들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시지만 인간들이나 인간들의 왕국은 모래성, 사상누각 같아 하나님이 잠시만 돌아보지 않으시면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인간들은 타락하여 축 늘어지고 하나님은 붙잡아 일으키시고..... 인간의 끝없는 타락은 하나님도 못 말리겠다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시고 남왕국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끝없이 타락하여 무너져 내리자 예후를 세우셔서 아합과 이세벨을 징벌하셨고, 남왕국 유다에서 악한 태후 아달랴가 왕자의 씨를 진멸하려 할 때는 여호세바와 여호야다를 통하여 아달랴의 마수로부터 요아스를 빼내어 왕국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40년간의 통치기간 중 고모부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부하 방백들의 세력에 굴복하는 비굴한 군주의 모습을 보입니다. 아람왕 하사엘이 올라오니까 지레 겁을 먹고 예루살렘성전과 왕궁의 모든 금과 보물을 갖다 바치는 유약한 겁쟁이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부하들의 손에 죽습니다.
13장에 들어가면 한심스러운 일은 북이스라엘왕국에도 계속됩니다. 북이스라엘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17년 동안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노하시어 아람왕 하사엘의 손에 붙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학대를 당하자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이스라엘에 주십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다시 타락과 범죄의 수렁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아람왕의 손에 붙이십니다. 여호아하스가 죽자 그 아들 요아스가 대를 이어 똑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유다왕국에도 요아스가 왕이고 북이스라엘에도 요아스가 왕이 되어 성경을 읽을 때 좀 헷갈립니다만 어쨌든 남유다왕국이나 북이스라엘이나 어쩌면 사사기에 기록된 반복되는 타락과 배반을 그렇게나 따라 하는 것일까요? 왜 인간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 하고 한심스럽고 가증한 죄와 타락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혼나면서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를 못 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인간들은 축 늘어지는 양로원의 노인환자처럼 손만 놓으면 무너져 내리는 반복을 끝없이 계속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 하는 불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또 하나 기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엘리사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보다도 엘리사가 죽으면 이제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런 걱정으로 엘리사를 찾아간 요아스에게 엘리사는 활을 주면서 당기라고 합니다. 창문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대적을 쳐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실 것이라면서 요아스에게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겨우 세 번을 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사는 대여섯 번을 치지 않고 겨우 세 번을 치고 그만 둔 왕에게 노하였습니다. “적어도 대 여섯 번은 쳤어야지 세 번이 뭡니까? 그랬다면 하나님이 아람족속을 진멸하도록 치게 하셨을 텐데 이제 하나님은 아람 족속을 단 세 번만 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요아스왕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원기와 패기, 열정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요아스에게 하나님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과 열망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요아스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의뢰하였다면, 하나님이 요아스의 전부였다면, 절대로 세 번만 치고 그만 두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늙어 죽을병이 든 엘리사를 찾아와 '내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며 눈물을 흘린 요아스입니다. 그 요아스가 엘리사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아람을 진멸하도록 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방 뛰고 펄쩍펄쩍 날았어야 할 것입니다. 화살을 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신이 나서 팡팡 내리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세 번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람을 세 번 이겨 이전에 빼앗겼던 두어 성을 되찾기는 합니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무너져 멸망길로 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어서 엘리사가 죽어 묘실에 장사된 다음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었더니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신이 살아나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과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사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넘치는 원기와 패기와 기쁨으로 행하십시다. 노인환자처럼 축 쳐지지 마십시다. 겨우 세 번 두드리고 힘이 빠져 주저앉은 요아스처럼 되지 마십시다.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격으로 펄쩍펄쩍 야생마같이 뛰고 달려 나가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나타남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소망이요, 생명이요 나의 전부인 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혹시 나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지 못 해서는 아닐까요? 우리 하나님 앞에서 팡팡 치고 팔짝팔짝 뛰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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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3장 18-19장>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여러 해 전입니다만 양로원에서 몇 년 동안 일했습니다. 양로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노인환자들을 수발할 때 가장 힘 드는 건 축 늘어지는 노인환자입니다. 사람이 축 늘어지면 아주 무겁습니다. 다루기가 너무 힘듭니다. 열왕기를 살펴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인간들이 바로 축 쳐지고 늘어지는 나약하고 맥 빠진 존재들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시지만 인간들이나 인간들의 왕국은 모래성, 사상누각 같아 하나님이 잠시만 돌아보지 않으시면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인간들은 타락하여 축 늘어지고 하나님은 붙잡아 일으키시고..... 인간의 끝없는 타락은 하나님도 못 말리겠다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시고 남왕국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개입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끝없이 타락하여 무너져 내리자 예후를 세우셔서 아합과 이세벨을 징벌하셨고, 남왕국 유다에서 악한 태후 아달랴가 왕자의 씨를 진멸하려 할 때는 여호세바와 여호야다를 통하여 아달랴의 마수로부터 요아스를 빼내어 왕국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40년간의 통치기간 중 고모부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부하 방백들의 세력에 굴복하는 비굴한 군주의 모습을 보입니다. 아람왕 하사엘이 올라오니까 지레 겁을 먹고 예루살렘성전과 왕궁의 모든 금과 보물을 갖다 바치는 유약한 겁쟁이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결국 부하들의 손에 죽습니다.
13장에 들어가면 한심스러운 일은 북이스라엘왕국에도 계속됩니다. 북이스라엘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17년 동안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노하시어 아람왕 하사엘의 손에 붙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학대를 당하자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이스라엘에 주십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는 다시 타락과 범죄의 수렁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아람왕의 손에 붙이십니다. 여호아하스가 죽자 그 아들 요아스가 대를 이어 똑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유다왕국에도 요아스가 왕이고 북이스라엘에도 요아스가 왕이 되어 성경을 읽을 때 좀 헷갈립니다만 어쨌든 남유다왕국이나 북이스라엘이나 어쩌면 사사기에 기록된 반복되는 타락과 배반을 그렇게나 따라 하는 것일까요? 왜 인간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 하고 한심스럽고 가증한 죄와 타락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혼나면서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를 못 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인간들은 축 늘어지는 양로원의 노인환자처럼 손만 놓으면 무너져 내리는 반복을 끝없이 계속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 하는 불신앙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또 하나 기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엘리사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보다도 엘리사가 죽으면 이제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런 걱정으로 엘리사를 찾아간 요아스에게 엘리사는 활을 주면서 당기라고 합니다. 창문을 열고 쏘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대적을 쳐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실 것이라면서 요아스에게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겨우 세 번을 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사는 대여섯 번을 치지 않고 겨우 세 번을 치고 그만 둔 왕에게 노하였습니다. “적어도 대 여섯 번은 쳤어야지 세 번이 뭡니까? 그랬다면 하나님이 아람족속을 진멸하도록 치게 하셨을 텐데 이제 하나님은 아람 족속을 단 세 번만 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요아스왕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원기와 패기, 열정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요아스에게 하나님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소망과 열망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요아스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고 의뢰하였다면, 하나님이 요아스의 전부였다면, 절대로 세 번만 치고 그만 두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늙어 죽을병이 든 엘리사를 찾아와 '내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며 눈물을 흘린 요아스입니다. 그 요아스가 엘리사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아람을 진멸하도록 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방 뛰고 펄쩍펄쩍 날았어야 할 것입니다. 화살을 세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신이 나서 팡팡 내리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겨우 세 번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람을 세 번 이겨 이전에 빼앗겼던 두어 성을 되찾기는 합니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무너져 멸망길로 가게 됩니다.
성경은 이어서 엘리사가 죽어 묘실에 장사된 다음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 넣었더니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신이 살아나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로 일어나는 환상과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다고 보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사십시다. 하나님 앞에서 넘치는 원기와 패기와 기쁨으로 행하십시다. 노인환자처럼 축 쳐지지 마십시다. 겨우 세 번 두드리고 힘이 빠져 주저앉은 요아스처럼 되지 마십시다.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격으로 펄쩍펄쩍 야생마같이 뛰고 달려 나가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나타남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소망이요, 생명이요 나의 전부인 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혹시 나에게 닥친 고난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지 못 해서는 아닐까요? 우리 하나님 앞에서 팡팡 치고 팔짝팔짝 뛰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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