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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보다 말씀에 주도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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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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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옛 중국 전한 시대에 북쪽 변방에 살던 한 촌노의 이야기“인생만사 새옹지마”는 널리 알려진 고사성어입니다. 그 노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그렇게 이해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생활에서 당면하는 사건들을 합리적인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서 언제나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가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소한 상처가 패혈증이 되거나,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실직하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하는 일들을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그 모든 경우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판단되는 이유에 집착하기보다도 만사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멀리 바라보면서 하루하루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 노인이 낚시하러 아침 일찍 나가고 할머니는 한가로이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 속보가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낚시하러 가는 국도에서 웬 차 한대가 역주행하고 있으니 그 국도를 이용하는 이들은 특별히 조심하라는 속보였습니다. 할머니는 낚시 간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셀 폰으로 전화를 하여“여보, 지금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국도에서 웬 차 한대가 역주행 한다는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네. 조심하라고...”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화가 난 듯이“제기랄…. 한대가 아니야. 수 십 대가 거꾸로 오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습니다. 닥터가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몸을 눌러보면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닥터가 그 환자를 자세히 살펴본 후 “당신의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실수와 착각을 관점의 차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자기 혼자 정당하고 다른 모든 사람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병든 관점입니다. 나의 관점이 부러진 손가락처럼 병들어 있으면 모든 곳이 병든 것으로 판단하게 되고, 내가 역주행을 하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사람이 역주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역주행이라는 것을 누가 규정하느냐를 문제 삼는 시대이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배가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을 남성으로 느끼는지 여성으로 느끼는지를 질문한다고 합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느낌에 따라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에는 무엇을 결정하거나 판단할 때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을 따라 판단했지만 이제는 그 기준 자체를 개인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어서 한 가지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하는 것을 나는 옳다고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기준이 다르면 개인에 따라 판단과 결정이 다르게 되고 그 다른 판단과 결정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향이 교육계와 법조계와 정치계 뿐 아니라 모든 영역으로 급속도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느낌에 따라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해서 기존의 법과 가치 질서를 허물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에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 실행되고 있고 미국도 유럽과 같이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지금 그 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정부는 과거의 재판 판결을 마음대로 뒤집는 정부이고, 입법부는 그 집권 여당이 다수당으로 되어 있으니 교회를 비롯하여 몇몇 단체가 아무리 반대를 해도 그 법이 통과되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명분은“차별금지법”이지만 핵심 내용은 동성혼 합법화 법입니다. 동성혼 합법화는 그동안의 전통적 가치 질서를 허물어야 입법이 가능한 법입니다. 가치 질서를 허무는 일은 진보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고 그 근저에는 무신론이 꽈리를 틀고 앉아서 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순수한 성경적 가치관으로 어려움 없이 살기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순수한 신앙적 결정이나 선택 때문에 비난과 법적 제재를 받게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나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전통적 가치가 아니고 예상되는 부작용 같은 것 때문이 아닙니다. 동성애나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의 결과들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예상될 뿐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성결혼의 가장 확실한 부작용은 출산율 저하입니다. 그러잖아도 인구 감소가 사회적 문제뿐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존립의 문제가 되고 있는데 동성결혼의 합법화는 인구 감소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개인의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동성결혼 가정에 입양 된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 국가를 상대로 고소를 하였습니다. 고소의 내용은 자신이 어려서 입양 되었기 때문에 남자 아버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성결혼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누구나 부모의 성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입양되고 그것이 개인은 물론 사회적 불만으로 누적될 것입니다. 의사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동성결혼 커풀들의 27가지의 성생활 부작용이 보고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할 때 그 부작용들을 주된 반대 이유로 제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나 동성결혼이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그것을 금하셨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동성결혼 합법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복을 가로채고 형 에서의 원한을 피해 외삼촌의 집에 도망 가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못된 짓을 하고 도망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할 것이고 반드시 고향으로 되돌아 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살면서 결혼을 비롯한 여러 일에서 여러 차례 외삼촌에게 속았고 비난과 의심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생각할 때 더 이상 외삼촌의 집에서 함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외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외삼촌이 야곱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설렁 외삼촌이 보내주어도 형 에서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형편에서 야곱은 그 다운 묘책과 결단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사람을 집으로 보내 두 아내 라헬과 레아를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상황 설명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온 힘을 다해 외삼촌을 섬겼고 외삼촌은 갖은 악랄한 수법으로 야곱을 속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야곱에게 유리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야곱의 말에 의하면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습니다. 라반은 야곱과의 약속에서 양 중의 점 있는 것을 가지라고 했다가, 얼룩무늬 있는 것을 가지라고 했다가, 아롱진 것을 가지라고 했다가 자기 마음대로 약속을 변경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두 아내는 맞장구를 치면서 아버지 라반의 부당하고 교활하고 몰인정한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야곱의 의견에 동의하였습니다. 이제 야곱은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해서 떠난다고 하면 될 텐데, 떠날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 일리가 있는 이유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들어 외삼촌을 떠나겠다고 하면 감정이 상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잔꾀를 내어 몰래 도망을 치게 됩니다.

야곱이 외삼촌에게 당한 그 모든 부당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하란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섭리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일을 추진하였으면 일이 복잡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이유를 들어 떠나려고 하면 일이 복잡해지고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인간적 잔꽤이고 약점이며 한계입니다. 성화라는 면에서도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 생활하고 기도생활 하는 것은 세상적인 생활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도 아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말아야 했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뜻은 말씀으로 야곱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역사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고 대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주권적 차원에서 야곱의 사건을 살펴보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야 합니다.

야곱은 떳떳이 떠날 수 있었는데 잔머리를 굴려 도망을 쳤습니다. 몰래 도망친 야곱을 라반이 추격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그런 하나님을 믿고 외삼촌에게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셔서 떠나야겠다고 했다면 라반이 강제로 떠나지 못하게 했어도 하나님께서 떠날 수 있게 조치를 하셨을 것입니다. 야곱은 떠나는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인간적인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외삼촌이 자기의 품삯을 떼먹었다고 불평을 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신부의 지참금을 떼먹었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아내들은 아버지가 자기들을 팔아먹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이 원수처럼 생각됐고 야곱의 아내들도 아버지가 원수처럼 생각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했다고 하면서 떠나면 외삼촌이나 아버지를 미워할 필요도 없이 떠날 수 있었을 텐데 떠나야 할 이유를 인간적인 부당함에서 찾게 되자 비난과 원망과 미움과 증오가 증폭되고 문제의 해결은 도망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매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중대한 일에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과 보장이 된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 뒷일을 걱정하고 인간적인 잔꾀로 도망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수치스러운 태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떤 일이라도 하실 수 있고 또 어떤 일이라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주도권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외삼촌 때문에 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나를 억울하게 하고 불리하게 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의 결단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할 뿐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말씀 주도적인 사람은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과 환경과 형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주도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말씀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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