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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복음의 길, 그 어그러진 길

페이지 정보

짐보 (108.♡.♡.226)2018-10-22 11:08

본문

데살로니가 교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He that hath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ith unto the churches”

*라오디게아 교회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9]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함은
열매 없는 의에 떠난 어둠에서 그 일에서 돌아서서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심이라
에베소서는, 성도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하며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난다 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5:10-14]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살아있다면서 죽은 자 인 라오디게아 교회
그래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의를 잃어버린
교회라 부르기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오늘날의 라오디게아 교회 같은 교회
그런 교회에서 자부심을 갖고 분주하나 의의 열매가 없는 교회...
겉모습은 화려하나 실상은 초라한
화려해질수록 초라하게 보이는 교회의 건물과 교인...
성도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태를 바라보며 자신을 바라보며
라오디게아 교회의 글이 길어진다.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처럼 성령님이 교회를 향한 말씀을 듣고 행함이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의(義)로 그리스도인으로 온당한 도리의 열매며 결과라
시작은 미약하나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선(善)으로 착하고 올 바라서 도덕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치로 맺는 삶이라
진리(眞理)라 참된 이치라 그리스도인의 진실이라
이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공의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라
그리스도 주님의 복음의 시작이 의(義)의 시작이듯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사랑은
고난을 받으시며 우리를 사랑한 고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의 삶으로
의로운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이룬 진리라
진리는 이 사실이 진실이라는 진리라
진리는 공정하고 공평하며 정직하기에 그리스도 주님의 닮는 핵심임은
이는 진리로 충만한 삶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주님의 빛이라
빛이 어둠을 비추듯 그리스도인의 삶이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춤이 복음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부분은 빛으로 드러난다.
삶의 기준과 일상의 대화, 옷, 사업, 취미, 친구 관계, 자동차 등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정직하기는커녕 선하지 않아
세상의 안목의 정욕으로 명예를 탐하고 정직하지 못한 일로 물질을 탐하는 일이
교회와 삶에 일상이 된 자들은 어둠에 참여한 자들이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어둠의 일에 참여한 자들이 진리를 말하나 성령님과 동행 없이
어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어둠의 일에 참여 하지 말고 책망하라.
만약에 어둠의 일에 눈을 감고 책망하지 않는 다면
그자 또한 어둠에 있기에 불의에 눈 감음은 또한 불의라
주님은 이런 자들도 책망하시고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기에 어둠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 불의 한 자들은
은밀히 말하고 행하기에 믿는 다는 자들로 부끄러운 것들이라
비밀로 하기에 스스로 어둠에 거하며 은밀히 행하기에
어둠의 일은 진리에 반한, 반 복음적인 일들이라
이런 일은 끼리끼리 모이고 작당하고 편을 갈라 무리를 이루면서
어둠의 밀실에서 모의(謀議)하기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음모(陰謀)라
이런 자들을 책망하지 않는 다면 빛으로 온 진리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이전에는 어둠이었으니 이제는 주안에 빛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5:8]
빛의 자녀답게 행하여
빛의 열매를 맺으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For the fruit of the Spirit is in all goodness and
righteousness and truth;) 5:9]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성령님과 함께 하는 증거라
그 누구든지 믿는 다는 자는
선하고(all goodness)
의롭고(righteousness) 진실(truth)해야
빛인 진리를 따르는 자라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기에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21]
빛인 진리를 따르는 자들의 행위가 빛이라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지만
그러나 아직도 빛과 어둠에서 혼돈하여 죽은 믿음이라
잠자는 자들이 있기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의미가 그리스도 주님께서 일곱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깨어나라는 행위라,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기에
주님은 교회 같지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다른 교회를 아직도 사랑하셔서
책망하여 징계하심은 빛의 자녀로 인도하시고
주님과 함께 할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셔서
열심을 내고 회개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 ‘열심’ 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뜨거운 아주 끓는 불타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의로 행하기를
권하셨고 그리고 이제 지난 일들을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 주님을 닮은 행위와 함께한 그리스도인이 되라 권하셨기에
이 말씀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같은 의미라 회개가 마음으로 시인하여 행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듯이
이 행위는,
이 행위의 대가는 그리스도인이 의로 치러야 할 삶의 대가의 행위라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이 부인이 회개며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짐이
의로운 믿음의 행위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누구든 지라,
아무도 예외가 없는 모든 자라
주님은 이 말씀을 다시 하시며 강조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다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27]
그러시기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열심을 내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의에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하셨고
아직도 주님은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0]
주님은 아직도 문 밖에 서 계시며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아직도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날 아직도 교회 같지 않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신다.
비록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칭찬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더라도
사랑으로 초청을 함은
한 개인의 초청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들 인 교회의 초청이라
생명이신 그리스도 주님의 생명령 있는 교제로 돌아오라는 초청이라
그리스도인의 생명인 의로, 살아 있는 행위로,
살아있는 성도로, 참된 교회가 되라 하신다.
그러나 어느 이들은 이 구절을 전도를 위한 구절로 사용하는데
이는 문자적인 해석으로 잘못된 인용이다.
이 말씀은 믿는 자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
복음의 어그러진 길로 향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누구든지,
예외가 없는 모든 자라 공정이고 공평이며, 조건이라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누구든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조건이고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행동이라
믿음의 행위라,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행위는 단지 한 법의 응답으로 그침이 아니라
계속적인 응답이 되어야 함은
구원은 믿음의 산물이라
구원받은 자의 삶은
그리스도 주님의 고귀한 사랑을 간직한 자는
언제나 그리스도 주님을 따름이라
삶으로 주님께 응답하는 일은 믿는 자의 당연한 행위라
삶으로 주님께 응답을 할지 말지는 개인과 교회의 의지적이 요소이지만
삶이 그리스도 주님과의 교제라 이 관계가 언약의 관계라
이 언약이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이루어낸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랑의 초청이라
이 초청에 응하든 말든 그 응답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있고
개인인 성도는, 성도라는 말은 이미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있기에
주님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판단하시고 계신다.
왜 그러실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라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라,
이 세상에는 완벽한 교회도 없고 완벽한 신앙인도 없기에
진리로 서로 사랑함이 서로의 부족을 채우는
완벽하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행위라
서로 사랑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신앙인은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자기만족에 도취하여
주님을 부르면서 세속화한 교회라는 미명(美名)으로 내세운 교회가 아니라
이름뿐인 교회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 각자의 책임이라
교회라 하기에 민망한 오늘날의 모습에 가슴을 치는 회개가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빛의 자녀라면
서로가 서로의 빛이 되어 세상을 밝혀야 하는데
세상을 밝히지도 못하는 빛이 빛이며 진리인가.
도대체 무엇이 교회라는 말인가.
도대체 나는 당신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성령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심의 응답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이라 가치관이며 인생관이라
주님은 오늘도 문 밖에 서서
이 시간 너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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