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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하나님의 백성-신분과 소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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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2-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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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노예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에 심으셔서 주권국의 국민이 되게 하셨으면서도 그 땅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거류민과 동거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이민이 합법화되었기 때문에 거류민이나 동거자라는 호칭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류민이나 동거자는 지금의 영주권자와 불법체류자의 중간쯤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법 체류자는 아니면서도 영주권자처럼 합법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거류민은 아무리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재산을 모아도 그 나라 사람들의 눈 밖에 나면 빈손으로 쫓겨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없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실제적 형편도 그와 같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의 주인인 애굽 사람들의 눈에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독립 국가를 세우고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이스라엘은 그 당시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로 세우도록 지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많지만 처음부터 땅을 개인에게 분배해 준 것이 독특한 점입니다. 옛 국가들에서도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처럼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주신 땅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법으로 보장된 나라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토지를 영영히 팔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토지를 분배받았습니다. 성경은 땅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유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족별로 분배 받은 땅은 가족의 범주 안에서 보존되도록 엄격한 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땅을 가족별로 나눠주셨으면서 그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물과 유산으로 주신 땅의 소유주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불합리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깊이 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배려인지 모릅니다. 땅을 개인에게 선물로 주셨지만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감히 아무도 그 땅을 넘보지 못하였습니다. 왕이라고 하여도 개인의 땅을 함부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아합 같은 절대독재자가 나봇의 채전(菜田)이 탐이 났지만 함부로 빼앗지 못하고 고민했던 것도 그 법 때문이었습니다. 땅뿐 아니라 땅에서 나는 생산물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유권 선언이 얼마나 확실한 보장인지 모릅니다. 만약 이웃의 힘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의 땅을 빼앗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것을 빼앗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과 거기서 나는 생산물까지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유권을 주장하신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호 장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땅과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책임임과 동시에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땅과 거기서 나는 산물과 그 외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 사는 거류민이고 동거자입니다.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개념은 광범위한 책임을 낳습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거류민이고 동거자인 이스라엘에게 몇 가지 의무를 부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관리하는 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또한 서로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그 의무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 둘째는 가족에 대한 의무, 셋째는 이웃에 대한 의무입니다. 땅과 관계하여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그 땅을 하나님의 법대로 관리하며 소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의미는 열 개 중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고, 아홉은 내 것이라는 소유권의 분할이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시인하는 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류민이요 동거자인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입니다. 말라기가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서 십일조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을 incentive로 제시하신 것이지 본래의 목적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 중에 십일조 외에 추수의 첫 열매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출 23:16, 느 10:35,36).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첫 열매”로 표현하였습니다(렘 2:3). 살아 있는 생물이든 생명이 없는 물질이든 다 하나님의 것(시 24:1)이기 때문에 십일조와 추수의 첫 열매를 요구하심은 하나님의 소유권 주장입니다(민 8:16-18). 첫 열매는 제일 좋은 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의미이고 핵심적인 뜻은 하나님의 소유권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드리는 어떤 헌물도 그 의미에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요구하심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을 위해서(레 18:24), 또는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게 하셨습니다(신 26:12). 결국 십일조는 하나님이 필요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둘째는 가족에 대한 의무입니다. 땅과 관련하여 가족에 대한 의무는 양도 불가라는 것입니다. 즉 땅을 상업적으로 사고 팔 수 없도록 친족의 범위 내에서 보존하라고 하였습니다. 혹시 빚을 지거나 무슨 사정이 발생해서 땅을 팔게 되어도 그 땅이 남의 소유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친족이 책임져야 합니다. 즉 가까운 친족이 대신 사주고 형편이 나아지면 돈을 갚도록 하되 그렇지 못해도 희년이 되면 무조건 땅의 임자에게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땅에 대한 가족과 친족의 의무입니다. 이를테면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막으신 것입니다.

자본주의 제도의 가장 큰 약점이 부익부빈익빈임을 감안할 때, 땅을 사고팔지 못하게 되면 부가 몇몇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작용을 상당할 정도로 막을 수 있습니다(cf. Henry George, Progress and poverty). 셋째는 이웃에 대한 의무입니다. 이웃에 대한 의무에는 수많은 민법과 재산상의 손해 및 과실에 대한 자비로운 권고, 안전 예방책, 지게 표 존중, 추수 때 이삭을 남겨 놓는 자비, 고용인에 대한 대우, 일하는 동물에 대한 대우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웃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의 구체적 대안입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약자에 대한 배려인데, 하나님께 대한 책임의 내용도 약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웃에 대한 책임은 곧 하나님께 대한 책임의 구체적 방법이고 대안입니다. 사회보장제도, 노사문제, 환경보호, 동물보호 등이 다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가족에 대한 의무와 이웃에 대한 의무는 결국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웃에 대한 개념이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웃이란 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내가 선을 베풀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이웃의 범위가 지역적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사회구조가 단순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매우 좁은 범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달구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졸면서 달구지를 몰아도 남에게 피해를 줄 확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나 열차나 대형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가 졸면 수십, 수백 명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어떤 사람이 아주 나쁜 죄를 지었고 그 사건이 TV나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인에게 알려져서 그 뉴스를 듣고 누군가 모방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웃에 대한 책임 범위가 지구 끝까지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까지 져야합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나의 행동이 광범위한 지역의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나의 행동으로, 내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기도 하고 덕을 보기도 합니다. 사회 제도와 그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어떤 경로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행동하는 사람이 잘 모릅니다. 나의 행동이 몇 단계를 거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습니다. 몰랐다고 하여 책임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무지를 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알아야 하고, 이 세상과 복잡한 제도와 그 관계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행동하고 살 수 있습니다. 낭비와 사치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은 적게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저급한 가치의 배타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급한 가치는 내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사랑, 정의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곧 살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소유주이신 하나님의 땅에서 거류민과 동거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류민과 동거자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의무를 잘 감당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고 그 관계 가운데서 보호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주인으로 살게 하지 않으시고 주인을 모시고 사는 거류민과 동거자로 살게 하신 것은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소유인 첫 열매입니다. 감히 그 누구도 가로채거나 빼앗지 못하게 하심입니다. 땅과 모든 재물에 대한 소유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심은 우리의 안전을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우리가 소유주로 되어 있으면 힘센 자가 빼앗으면 빼앗길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소유주로 되어 있으면 그렇게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조그만 나라이지만 그 주위의 수많은 아랍권 나라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 국민 상당수가 미국 시민권 자들이기 때문에 미국은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합니다. 이스라엘의 적대 국가들은 미국이 두려워서 이스라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거류민으로 동거자로 삽니다. 우리의 신분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산다면 언제까지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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