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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적 에로스에 천착(穿鑿)하지 말고 아가페에 올인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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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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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본능을 주셨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식욕과 성욕입니다. 식욕은 다른 것으로 대체(代替)가 불가능하고 승화(昇華)도 불가능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는 것 말고는 배고픔을 해결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배고픈 것은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해결하기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거나 예술에 심취하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하지만 성욕은 승화가 가능합니다. 아무리 고상한 것을 추구하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배고픔의 문제는 승화가 불가능하지만 성욕은 다른 것으로의 대체가 가능하고 승화가 가능합니다.

인류 역사에는 성욕을 억제하며 깊은 신앙심과 경건으로 남을 위해 선을 행하며 예술이나 문학이나 기타 학문에 긍정적으로 크게 기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욕이 본능이지만 다른 것으로의 대체가 가능하고 승화가 가능함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수도승과 같이 성욕을 선행과 의로움으로 승화시킬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욕도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욕이 하나님께서 그어 놓으신 부부침실의 선만 넘지 않는다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성욕에 대한 미신이 있습니다. 성욕은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미신이 있고, 승화가 불가능하다는 미신이 있습니다. 성욕은 성적으로만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에 대한 미신입니다. 이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성욕을 에로스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에로서가 비록 이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혼인의 신성한 질서 안에서 윤리적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다 그렇듯이 에로스는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절제와 통제가 없는 에로스는 너무나도 빨리 권태에 이르고, 그 권태가 성욕에 대한 그릇된 미신과 분별없이 만나게 되면 다른 우물을 찾게 되는데, 거기에 부부간의 갈등이 첨가되면 사회적 신분도 고려하지 못할 만큼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이것을 나는 에로스에 대한 미신적 천착(穿鑿)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고귀한 성(性)을 이렇게까지 천하게 만들어버린 정신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장은 인간이 타락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의존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도록 지어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가운데 인간의 참 행복을 넣어두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사실을 알면서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섬김의 길에 참 행복이 있음을 애써 부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우상은 가짜 신(神)입니다. 참 하나님을 인간의 마음에 맞는 신으로 바꾼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실재하는 신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당신의 주권대로 하시는 것이 못마땅하여 사람이 자기 마음에 맞고,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대로 잘 들어주는 신인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상은 결국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빙자하여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강력하게 무엇을 요구해도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시고 다스리지만 우상은 무엇이든지 인간이 요구하는 대로 들어줍니다. 하나님을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분으로 상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시는 하나님을 견디지 못하여 자기 마음에 맞는 하나님, 곧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우상을 섬기는 길에서는 필연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게 되어 우상의 제의식(祭儀式)에는 어김없이 종교의 이름으로 성의 방종이 허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도덕적 질서와 종교적 경건으로 통제되지 않는 성은 감각적 쾌락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쉽게 식상하게 되어 결국 동성애나 수간(獸姦) 같이 견딜 수 없이 역겨운 비정상적인 성을 탐닉(耽溺)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자기를 섬기게 되고, 자기 섬김의 합리화가 우상이며, 우상은 윤리와 도덕의 규범을 해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한 인간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과 이유가 이렇게 분명하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기독교 신자들까지 성욕에 대한 미신적 에로스에 천착(穿鑿)하고 있습니다. 성욕은 절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제나 승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미신입니다.

에로서와 대비되는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에로스는 자기를 위하는 이기주의이고 아가페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이타주의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부부간의 사랑을 명할 때도 아가페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에로스는 감정적이지만 아가페는 의지적입니다. 에로스는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지만 아가페는 미워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아가페는 미운 원수도 사랑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하는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의 사랑은 얼마나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인간적으로 표현한다면 미워 죽겠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였습니다.

성욕과 에로스에 대한 그릇된 미신적 천착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는 길은 아가페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관과 윤리와 정치와 경제와 학문과 신앙과 구원과 목회와 비즈니스와 이 세상 나라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잘못된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입니다. 사실 아가페는 본래 인간에게 없었던 것인데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아가페(ἀγάπη)가 헬라어이지만 그 단어가 본래 헬라어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번역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성경 번역자들이 만든 단어입니다. 인간에게는 본래 아가페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또는 영어 성경이나 한국어 성경에는 아가페와 에로스가 구별 없이 번역되었기 때문에 에로스를 아가페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에로스와 아가페가 비슷한 것이라면 오해가 있어도 그 피해가 크지 않겠지만 에로스와 아가페는 정 반대 개념입니다. 에로스를 아가페로 오해하고 실천하였다면 그것은 아가페의 정신의 정 반대로 행한 것입니다. 이것은 에로스와 아가페에 대한 오해와 혼동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로스와 아가페가 정 반대 개념이라는 사실은 미신적 에로스에 대한 천착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아가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신약 신학자 C. H. Dodd가 아가페를 잘 설명했는데, 나는 아직 아가페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은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가페는 “감정도 아니고 애정도 아니고 의지의 능동적 결단이다(Neither affection nor emotion, 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가페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뒤틀어져버린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 기쁘시게 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곧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곧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와 인권과 자유와 정의와 윤리와 도덕 등 아무리 고상한 것을 부르짖고 강조하여도 그 자신은 죄의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누구라도 마땅히 미신적 에로스에 천착하지 말고 아가페에 올인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 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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