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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긍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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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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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의 시 중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새 한 마리만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더 넓은 공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새 한 마리 그려 넣자 그 넓은 공간이 무한한 가능성의 하늘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가치를 제대로만 발견하면 그 나머지 또한 무한히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족하고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 하나의 소중함을 발견할 때 그 나머지 또한 너무나 귀한 것으로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삶은 더 없이 풍요로워 지고 가능성은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안산동산고등학교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학교 이사장이 김인중씨가 쓴 책입니다. 그 학교에서 2005학년도 졸업생 570명 중 22명이 서울대에, 62명이 연세대에, 53명이 고려대에 진학하였습니다. 개교 십년 만에 명문고 반열에 오르고 대학진학률 전국 5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안산은 공단 도시이며 수도권의 변두리 지역입니다. 교육환경과 사회 환경이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안산 동산고등학교는 왕따가 없는 학교, 술 먹고 담배 피우는 비행 청소년이 없는 학교, 교내에서 학생들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 학교를 “입시전쟁 No! 행복전쟁 Yes!”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성적인 학생은 진지해서 좋다.
사교적인 성격의 학생은 정직하고 과장이 없어서 좋다.
소심한 학생은 실수가 없어서 좋다.
질투심이 많은 학생은 의욕이 넘쳐서 좋다.
말이 많은 학생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자신감이 없는 학생은 정직해서 좋다.
직선적인 학생은 속정이 깊어서 좋다.

이것이 사실은 아닙니다. 내성적이라고 반드시 진실하지는 않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 반드시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직선적인 학생이 반드시 속정이 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학생이 활달한 성격으로 바뀌는 것보다는 진실하게 되는 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좋다는 격력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보고 대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니까 좋은 점을 극대화해서 보고 대하는 것도 유익할 듯합니다. 특히 교육자나 부모들에게는 이런 태도와 생각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작가는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때로는 며칠, 몇 주, 몇 달, 아니 몇 년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면 카메라에 담는데,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아름다운 순간의 관점에서 늘 그 사물을 봅니다. 그래서 그 작가의 눈에는 평범한 것도 황홀하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다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니까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으로 만물을 평가하고 본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삶의 태도입니다.

유행가 가사에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하는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니까 당연히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에도 소중함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점을 발견하면 인생은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생애의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라는 영화에 호머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2차 대전 때 전쟁에 나갔다가 두 팔을 잃어 불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 영웅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나중에는 실직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어 사회문제가 되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불구자가 되어 돌아온 호머는 견딜 수 없는 좌절을 겪습니다.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 쪽 팔만 아파도 사람이 스스로 얼마나 무능하게 느끼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 쪽도 아닌 두 팔을 다 잃었다면 말할 수 없이 낙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호머는 두 팔을 다 잃고 말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두 팔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손으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물을 한 컵을 마음대로 마실 수도 없고, 가려운 데를 긁을 수도 없습니다. 옷을 스스로 입을 수도 없습니다. 화장실에도 혼자 갈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스스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머는 자신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얼마나 절망이 되고 좌절이 되었겠습니까? 정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이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어버린 두 팔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 대신에 잃어버린 것보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보람이 달라집니다. 두 팔을 잃었습니다. 불편한 것으로 말하자면 어찌 이루 말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생각의 방향을 잃은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많다는 쪽으로 잡은 것입니다. 두 다리가 있습니다. 두 눈이 있습니다. 두 귀가 있습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말 할 수 있는 입이 있습니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그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닥터는 의수를 만들어 달아주었습니다. 그는 의수로 글을 쓰기도 하고 타자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머 역의 실제 인물은 헤럴드 럿셀입니다. 그는 실제로 두 손이 없는 장애자입니다. 실재 장애자인 럿셀이 얼마나 연기를 잘했던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때 받은 상금을 상이용사를 돕는 데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극중의 호머나 실재의 럿셀이나 잃어버린 것으로 좌절했다면 그 자신이 비참한 생을 살았을 것이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남에게 도움이나 받으며 만족하지 못한 생을 살았겠지만 잃어버린 것보다 남아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게 되어 그 자신이 행복할 뿐 아니라 남을 돕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치 자기를 영영히 잊어버린 것 같은 절망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후대하셨다고 확신하였고 그 믿음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厚待)하심이로다.”-시편 13:1,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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