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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가 있다고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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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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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리스에 소피스트들이 활개를 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유명한 철학자를 찾아와서 수사학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그 철학자는 젊은이에게 수사학을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지금은 돈이 없지만 수사학을 배운 후 재판에서 이기면 수업료를 내겠다고 하였고, 그 철학자는 그 약속을 믿고 젊은이에게 수사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의 수사학이란 오늘날의 변호사가 되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에게 수사학을 배운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늘 놀기만 하였습니다. 그에게 수사학을 가르쳤던 스승은 수업료를 내라고 독촉하였지만 젊은이는 재판을 해서 이기면 수업료를 주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재판을 하여 이길 때까지는 수업료를 내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이의 소행을 괘씸하게 생각한 스승은 그를 법정에 고발하였습니다. 고발을 하면서 스승이 젊은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 재판에서 지면 당연히 수업료를 내야하지만 이겨도 수업료를 내야하네. 지면 졌으니까 수업료를 내야하고, 이기면, 자네가 재판에서 이기면 수업료를 낸다고 했으니까 수업료를 내야할걸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내가 이기면 이겼으니까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고, 지면, 이기면 수업료를 낸다고 했는데 졌으니까 수업료를 내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논리의 딜레마입니다. 정당하지는 않지만 말이 되고 일리도 있습니다. 옛말에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신자는 일리나 논리의 허용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소비를 미덕이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는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일리 있는 경제학적 논리를 폅니다. 쾌락과 향락을 좇는 사람들은 사람이 스트레스가 쌓이면 병이 되기 때문에 가끔씩은 확 풀어버려야 한다고 의학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창녀촌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몸을 파는 여자들이야 말로 사회에서 가장 소외계층이기 때문에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고, 또한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사회정의론을 들고 나옵니다. 인생만사 일리 정도 없는 일이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불법으로 영주권을 내어주는 일도 사정을 알고 보면 딱하기도 하고 동정이 가기도 하고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회는 불법 영주권 신청을 변호사에게 부탁하고 변호사는 불법을 합법적인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사정이 딱해서 불법으로 영주권을 내어준다고 하면서 돈까지 챙기는 “거룩한(?) 사기꾼”들도 나름대로 논리와 변이 있을 것입니다.

강단에서 쏟아내는 저질적 발언과 나이브한 유머도 굳이 딱 부러지게 거부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오늘날의 신자들의 수준을 탓하면 교만하고 별나다는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예배당 건물이 좀 크고 모이는 신자의 수가 좀 많은 교회 지도자라는 이유로 불법과 무례함과 비도덕적인 언행에 대해서도 쉽게 면죄부를 받는 경향이 있음을 우리는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큰 교회 지도자도 하나님 앞에 거짓 없이 경건하여 존경할만한 분이 있겠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을 것인데 이것은 작은 교회 지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크게 잘못되지 않았고 일리가 있고 논리만 서면 좇아가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을 용납하고 포용하는 것과 정당성에 대한 분별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그 옛날 소피스트들은 어떻게든 자기의 주장에 논리만 세우면 그것을 능력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말재간으로 출세를 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어떤 소피스트는 순진한 시민에게 돈을 빌리면서 며칠 후에 갚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약속일에 돈을 빌려준 사람이 소피스트에게 돈을 달라고 하자 내가 언제 당신에게 돈을 빌렸느냐고 하면서 빌린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순진한 시민은 당신이 나에게 돈을 빌려간 것이 틀림없는데 왜 빌리지 않았다고 하느냐며 따지자 소피스트는 돈을 빌려갈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순진한 시민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여 돈을 떼이고 말았습니다. 돈을 빌려갈 때보다 수염이 좀 더 자라기도 했을 것이고 손톱이 더 자라기도 했을 것이기에 동일인이라는 증명은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에서는 소위 능력이라고 평가되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너도 나도 이 기술을 배우려고 소피스트들을 찾았습니다. 옳고 정당한 것의 객관적 기준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의 말이라고 다 정당한 것이 아니고, 순진한 사람의 말이라고 다 믿을 것이 못됩니다. 작은 교회라고 다 부족한 것이 아니고 큰 교회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보수라고 다 믿을 만하고 진보라고 다 경계할 것도 아닙니다. 이런 비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따를 객관적 기준은 계시로 주어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아가서는 그 말씀을 상식과 논리를 따라 해석하고 적용할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여 자신의 몫의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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