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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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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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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서나 정직은 장려되고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정직해야 할까요? 왜 우리는 거짓 말 하면 안 될까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정직하라고 하셨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우리는 정직해야 하고 또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정직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제시된 것 중에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이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왜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약속 안 지키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니까 약속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면 사회가 무질서 해 지니까 거짓 말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정직한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착하게 행동해야 하고, 정의를 실천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J. 밴덤이나 J. S. 밀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이론의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개인이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모두가 행복해 지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선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도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 그 자체는 도덕적 가치가 아닙니다. 도덕적 가치는 그것이 선한가 혹은 악한가 하는 것이 도덕적 가치입니다. 따라서 이런 주장은 도덕적 가치가 아닌 것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그 다음 제기되는 질문은 “그러면 왜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불행하면 어떤가? 왜 굳이 행복해야만 하는가?” 여기에 대해 J.S. Mill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은 자연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연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면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마땅히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런 모순과 오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E. 칸트는 의무주의를 주창하였습니다. 의무주의에서는 인간이 직관적으로 무엇이 악하고 선한가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나쁜데, 거짓말을 하면 그 사회가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하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의 정언명령입니다.

그의 몇 가지 정언명령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의 준칙(準則)이 보편적(普遍的)인 자연법칙(自然法則)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 그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 준칙은 개인의 행동원칙을 말합니다. 이 명령은 어떤 결과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지켜야 하는 명령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필요하면 거짓말을 한다.”라는 준칙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준칙이 보편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도 좋다면 필요할 때 얼마든지 거짓 말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칸트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나는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필요할 때 거짓말을 해도 괜찮으냐?”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필요할 때 거짓말을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이 필요할 때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칸트의 전제입니다. 이것이 그의 정언명령의 골자입니다.

만약 “나는 필요하다면 도적질한다.”라는 준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이 필요하면 도적질해도 괜찮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에 그렇게 되면 내가 도적질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애를 써서 도적질 해봐야 다른 놈이 다 훔쳐 갈 테니까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도적놈은 자기 혼자 도적놈이래야 수지가 맞지 모든 사람이 다 도적놈이면 낭패입니다. 따라서 도적놈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아주 철저하게 정직하기를 바랍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잘못을 보고 특별히 화를 많이 내는 경우 바로 그 자신이 바로 그 문제의 약점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심지어 선한 일도 자기 혼자 해야지 남이 하면 배 아파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비즈니스도 자기 혼자 성공해야지 남이 성공하면 배 아파하는 심리가 있고, 교회도 자기 교회만 부흥해야지 다른 교회가 부흥하면 배 아픈 고약한 심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성경적 인간관을 지지하는 증거들입니다. 부정에 대해 가장 큰 소리치는 관리가 가장 부패한 관리일 수가 있습니다. 국회의원들 중에도 남의 부정에 대해 화를 가장 많이 내는 국회의원이 가장 부패한 국회의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필요하면 도적질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보편적인 법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칸트의 주장입니다. 칸트는 나에게 해로운 것은 남에게도 해로우니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칸트가 발견한 것이 아니고 동양철학에서도 주장되어 온 것입니다. 기소불요를 물시의인(己所不要를 勿施於人)하라고 하여 자기가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칸트의 주장이나 동양 철학의 가르침은 이미 성경에서 오래전부터 가르쳐 온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마태복음 7:1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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