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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찬식을 자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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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2009-08-05

본문

제가 섬기는 미국인 교회에서는 매달 첫 주일에 성찬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교회 절기에도 성찬식을합니다. 그러니 일년에 성찬식을 하는 횟수가 한인 교회들에 비해서 월등히 많습니다. 사실 저의 기억에도 부교역자로 한국 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에는 담임 목사님들이 성찬식을 일년에 두세번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교회에서 일년에 세번 하면 많이 하는 편이고 네번 하면 굉장히 많이 한 편에 드는 것같습니다.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저희 교회의 성찬식 횟수로 말마암아 왠지 이상한 교회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자기 교회와 뭔가가 다르다던가 혹은 보통 교회들이 하지 않는 뭔가를 하면 일단 이단으로 보는 경향도 없지않아  있으니까요.)  실제로 얼마 전 저희 교회에 출석하는 한국인 자매님 한 분이 한국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드물게 하는데 왜 자주 하느냐는 호기심섞인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의 질문에 한미간의 교회들 사이에 신학적인 이해 차이가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찬의 핵심 가치를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문화적 접근 방법 차이라는 답을 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답하실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아는 한 교단에 상관없이 많은 수의 미국 교회들이 성찬식을 매달 한 차례정도는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매월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 교회들 보다는 훨씬 자주하는편입니다.

그럼 무엇이 한미 교회간에 이런 차이점을 만들어 냈을까요? 하지만 숫자적 차이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겠죠. 그 속에 담겨 있는 이해의 차이가 문제일 것입니다. 한미 교회들의 성찬식의 내용을 보면 이 차이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로 부터의 자유함과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점에 강조점을 둡니다.  각 주류 교단들의 성례식 내용들을 보아도 성찬의 의미 (meaning of sacrament)를 다루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골고루 포괄적으로다루며 기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이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와 기쁨의 축제인점을 강조합 니다.

반면 , 한국 교회들의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가치를 주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강조점을 두는 경향이 강합니다.  즉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를 지나치게 많이 강조합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의미는 되새겨 보기가 힙듭니다. 이러다 보니 한인 교회의 성찬식은 축제적 분위기는 상상도 못하고 왠지 장례식 분위기가 나기도 합니다. 배경음악도 슬픈 것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또한 한국 교회에서는 성찬에 대한 거룩함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찬식중에도 “그럼으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는 성경 구절이 누누히 강조됩니다. 이는 다시 “성찬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이고, 또 잘못하면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을 형성했습니다.

이런  경건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결국 거룩한 것은귀한 것이고, 귀한 것을 자주 하면 싼티나는 것같은 심리와 연결되서 성찬은  부활절 아니면 추수 감사절 혹은 성탄절정도에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됩니다. 그게 아니면, 혹 지나치게 많은 교회 행사의 영향으로 성찬식이 오히려 우선 강조 순위에서 뒤로 밀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찬은 단순한 교회예배의 한 순서가 아니라는 목회자들의 인식이 필수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말씀의 선포와 함께 성찬식이 교회의 핵심 사역임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성찬의 의미를  성찬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진정한 실체에 진심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개혁 신학의 아버지 존 칼빈은 성찬의 사용 횟수에 대해서 명학한 규칙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떤 분들은 일년에 한번을 하든 열번을 하던 무슨 상관이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칼빈은 성찬에 대한 다음의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님이 의도하셨던 목적을 신중히 고려해보면, 성찬의 사용은 지금 많은 곳에서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성이 수용할 능력에 따라 자주 성찬을 거행하는 습관이 모든 교회에 잘 세워져야 한다.”

칼빈의 이말은 성찬에 대한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근거도 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경험하는 귀한 교회 사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물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귀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자주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성찬은 중요한 교회의 핵심 사역으로써 말씀 선포 사역과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중요하는 목회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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