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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200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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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목사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대개 목사나 장로 그리고 일반 성도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험상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사랑과 사역에 대한 열정,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우정이 배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배움과 사랑도 많지만 인간적인 실수에 대한 용납과 이해가 풍부하고 상대방에 대한 격려와 배려가 깊다. 이런 분들과의 만남이 있는 경우에는 인간의 실수나 허물도 종종 눈에 보일 때가 있지만, 그런 실수나 허물에 대한 서로간의 용납과 이해 그리고 격려와 배려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발견하곤 한다.

반면 내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입심이 세고 고집도 강해서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부류들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정인 사랑과 사역에 대한 열심은 있는지 모르지만 대개의 경우는 다른 사람과 말싸움이 흔하고 신학적인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대방의 실수에 대한 용납과 이해의 폭이 매우 좁다. 또 자신의 믿는 바를 목소리 높여 주장하느라 남이 가진 신학 사상과 주장은 무시하거나 반박하기에 바쁘다.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귀가 없다.

또 성경적인 지식은 해박하고 빈틈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받아주는 것에는 인색하다. 격려와 배려보다는 질책과 화의 감정 표현이 너무 크다. 사랑과 용서, 격려와 배려보다는 자기 정의감과 남 탓을 통한 상대방에 대한 정죄함이 큼으로 인해서 이런 사람들과는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어느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매우 능숙한 솜씨로 꽤나 열정적인 연주를 했다. 연주자가 자신의 혼신의 힘을 다해 하는 꽤나 감동적인 연주였다고 느꼈다. 연주가 끝난 후 의례 인사차 하는 앙코르가 아닌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정말 감동적 앙코르도 요구했었다. 연주가 끝나고 나오는데 자기 나름대로 느낀 연주 평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평하는 수준을 보아서는 피아노를 전공으로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평은 첫 곡에서는 몇 번의 실수를 했고 두 번째 곡에서 왼쪽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고 등등의 기술적인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연주가의 매 곡에 대한 해석은 관심밖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 연주회에 참석했던 어떤 평론가의 글이 신문에 실렸다. 저도 이 연주회에 있었던 탓에 관심 있게 읽었다. 그러나 이 평론가의 연주 평은 전날 제가 연주 후에 들었던 참석자들의 기술적인 평가와는 매우 달랐다. 이 평론가의 평은 기술적인 부분을 논하기 보다는 오히려 연주자가 어떻게 곡들의 해석해서 청중에게 전달했는가 하는 곡 해석 부분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 평론가는 이 연주가가 들려주려 했던 곡의 해석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럽고 특출했고, 청중을 자신의 음악세계로 마술처럼 빨아들였다고 평했습니다. 기술적인 실수 부분도 평을 했지만 그 것은 전체적인 연주자의 곡 해석에 비하면 적은 부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 옆에는 다른 연주가의 연주 평이 다른 평론가의 글로 실려 있었다. 그 평론가는 연주자가 너무나 완벽한 기교를 보였고 전혀 실수가 없었던 연주였다고 평을 시작했다. 그러나 평론의 끝은 인간의 혼과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기계가 하는 공장 작업과도 같았다고 혹평으로 끝냈다. 그리고 그 연주자에 대하여 다음부터는 연주에 인간의 혼과 정서와 감동이 담긴 해석을 담으라고 충고했다.

하나님도 이러한 음악 평론가와 같은 기준으로 우리를 평하신다고 믿는다. 진정한 한 신앙인에 대한 평가는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지식의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것을 자신과 이웃에게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지식만 있으면 자기가 가진 지식을 자랑하다가 스스로 교만하게 되기 쉽고, 또 그 지식으로 남을 평가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기 쉽고 원수 되기 쉽다.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도 용서하지 못하지만 남의 실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이 한 실수를 질책하다가 자기가 심판자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서는 우를 범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 같은 완벽함을 남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자기들 스스로 내적 상처가 많은 것을 발견하곤 한다.

사랑과 감동을 담고 있는 사람은 지식의 나열이나 유식한 말이 아닌 진실함이 있는 말과 잔잔한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이들의 생활이 비록 실수투성이고, 어설플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사랑의 진솔함을 통해서 사람들은 감동받는다. 우리 인간들의 사실적인 신앙 생활은 실수를 용납하고, 질책과 원수갚음보다는 용서와 화해하는 것에 그 가치를 두어야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풋풋함이 있는 따뜻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야말로 신행일치 (信行一致)를 위한 노력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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