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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분쟁 해결에 대한 개인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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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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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있을 때에는 교회 안의 갈등과 분쟁이 마치 한인 교회의 트레이드 마크같이 여겨 졌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목회 영역이 다 민족권으로 넓어진 지금에는 교회내의 갈등과 분쟁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문화와 인종과 언어적 차별이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생각의 다름으로 인해서 의견의 충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I. 분쟁의 원인

분쟁의 특징가운데 하나는 누가 100 % 옳고, 누가 100 % 틀린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교회가 분쟁에 휩싸이는 경우 신학적인 문제로 발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가 교회에서 주도권을 갖는가 하는 것에 대한 싸움도 많고, 재정 문제 혹은 목회자에 대한 개인적인 섭섭함으로 인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크데 두 가지 뿌리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분쟁 당사자들 개인의 인성 발달과 관련된 것으로서 사람이 악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개인적인 상처와 이로 인해 형성된personality 문제이며 둘째는 교회 안의 집단별의 미묘한 group dynamics 이다.group dynamics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서 말하는 사람의 언어 표현 방법과 듣는 사람의 이해 정도 유무, 이야기가 전달된 상황과 시기, 그리고 교회 안의 각종 크고 작은 집단들의 전체 혹은 부분적인 분위기 등을 포함한다. 교회 분쟁은 혼자서는 일으킬 수 없지만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교회 전체를 파괴적인 분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II. 분쟁의 진행

교회 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문제에 대한 사실보다는 인신 공격과 편 나누기 등이 쉽게 일어난다. 내 탓이오 라고 하기보다도 자신이 옳다는 기도가 먼저 나온다. 자신을 정의의 사도 혹은 반대로 박해자로 지칭하기까지 한다. 상대방을 사탄의 자녀라든가 목회자에 대해서는 사악한 종 혹은 양 잡는 목자 등의 극적인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주께서 원하시면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 죽기까지 싸우겠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다 헛되고도 헛되며, 극도의 감정에 싸여 있는 영적 공황의 극한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에 대한 사실보다는 입 소문에 근거한 유언비어가 돌게 마련이다. 종종 분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간에) 자기 교회가 속한 교단의 헌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로 자기 식의 해석 혹은 남의 교회의 경우 혹은 다른 교단에 속한 교회를 예로 들어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 시키기도 한다. 성경의 구절 구절을 여기 저기서 인용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말하기도 한다. 또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 문제의 핵심을 와전시키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에서 분쟁이 생기면 이러한 소식을 전단을 통해서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까지 전달하기도 하고, 인터넷 시대인 요즘은 이 메일을 통해서 빠르게 돌리기도 한다. 심하면 신문사나 언론에까지 투고하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 본인이 담당하는 한 노회의 한 다 인종 연합 교회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교회의 정책에 반대한 측에서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뉴욕 타임즈 등과 같은 전국 신문에까지 문제를 투고하였던 적이 있다. 이렇게 하는 당사자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분명 성경이 가르치는 바도 아니고 이 땅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어떤 교회와 교단도 교회 문제를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서 해결하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문제를 감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대화로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파괴적 분쟁 상태에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상처만 받을 뿐이다. 분쟁의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과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상처를 받는다. 목회자의 경우도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쉽게 상처를 받는다. 또한 분쟁을 지켜보는 다수의 교인들은 침묵하며, 누가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를 떠날 궁리를 하게 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 자신이나 함께 사역하는 미국인 교회 갈등 전문 목사님들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렇게 교회내의 문제들을 세상 바깥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나 집단들의 경우 한 명도 예외 없이 그 교회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해당 교회를 떠났다. 물론 위의 사례와 관련된 사람들도 해당 교회를 떠났다. 왜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세 싸움에서 졌기 때문 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 속으로부터 그 답을 찾아야 한다. 한 예로써, 교회 분쟁의 핵심에 선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그가 목사이든 평신도 이든 상관없다.) 개인적인 personality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대인관계 폭 역시 좁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감성 부분 속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 해결되지 않고 품어온 문제들(태교 때부터 성장기 때의 것들이 주로임)로 인해서 분노라는 감정이 그들의 모든 내면 세계를 강하게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길 바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 자신들이 화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무의식 속에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화나는 것을 보아야 자신과 같은 동질성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목적인 달성된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의 감정은 다른 사람들이 화난 보습을 보면서 기뻐하면서도 또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쉽게 정당화 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만큼 쉽게 그리고 무섭게 공격한다. 정의를 외치지만 그 정의 조차도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거나 생각에 대한 동의만을 요구하는 이기적인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그들 스스로의 행위로 말미암아 주위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사실 이것이 그들의 반복되는 life pattern 일 가능성도 많다.) 그러면 결국 자기 화에 자기가 못 이기고, 교회를 떠난다는 점이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pattern이 다른 교회나 단체에 가더라도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들 스스로에게는 자신들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할 능력이 없다. 오직 성령의 불로 치유를 받는지 상담 전문가로부터 장기간의 상담만이 해결 방법이다.

III. 분쟁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안

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풀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문제를 만드는 경우들에는 이와 연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절대로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거나 세상 언론을 통한 여론 몰이하는 식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서 만든 교회 법이 따로 있고, 이 교회 법의 내용의 바탕은 세상 법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문제가 있으면 대화로 먼저 풀어야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교회가 속한 교단의 노회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최후의 방법으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경우 교회가 소속한 교단의 법과 어긋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사실에 근거해서 교단 헌법이 정한 정차를 따라야 한다.

교회의 분쟁 소식을 접하는 목사님들은 자기 개인적인 논평은 신중하게 자제해야 한다. 특히, 분쟁에 대한 노회나 다른 기관에서 해당 교회를 대상으로 중재를 진행중인 경우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밖에서 그 분들이 듣고 아는 내용이 실제의 사실과 다를 수 있으며, 목회자의 무심코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해당 교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내가 담당하는 지역 노회들 안에서 일어나는 개 교회 분쟁에는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사태 진행에 대한 계속적인 보고는 받을지언정- 절대로 직접적인 중재에는 나서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가 아닐 수 도 있고, 모두 정확하다고도 볼 수 없으며, 이미 형성된 개인적인 감정으로 말미암아 일을 한쪽에만 서서 잘못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분쟁은 언제나 엄격히 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대외적으로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작은 분쟁은 해당 노회가 해결하도록 하지만, 상태가 심한 경우 대회의 전문 중재 팀이 개입하거나 혹은 The Alban Institute과 같은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도록 권한다.

일반 언론사나 기독교계 신문사들도 이러한 투고나 소문을 다룰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흥미위주로 다루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계 언론사들의 경우 신문 발행인의 특정한 신학적 관점을 마치 성경의 절대 진리처럼 함부로 적용해서 개인이나 교회 혹은 교단이 가지는 다양한 신학 노선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색깔론 이나 이원론적인 접근 방법을 경계해야 하며, 마치 이단 시비하듯 정확한 근거도 없이 누구의 자 잘못을 기사로 다루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섣부르게 다루어지는 교회 분쟁에 대한 기사는 사건과 상관없는 제 3자들까지도 쉽게 영적인 시험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스스로 침을 뱉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끼리도 상대방에 대한 인식 공격은 반듯이 피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해결하려는 지를 비공격적이고도 이성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감정적인 분노에 의한 인신 공격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 어떤 개인 혹은 어떤 집단이 타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 전달의 부적절함으로 생기는 갈등의 경우도 있음으로 그 원인을 줄이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교회의 리더쉽 그룹만이라도 올바른 대화법 (communication skills)에 대한 개발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세 보다는 제기되는 이유들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듣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 교회의 장점은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한국 교회들의 약점은 이런 준비를 비 성서적으로만 보아서 막상 갈등이 생길 때에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는 교회와 교단에서 활동하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제 3 의 중재자(혹은 그룹)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속한 교단이나 미국 교단들에게는 이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물론 초 교파적으로 하는 기관들도 많다. 이 중재자들의 사역은 누구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오히려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 할 수 있는지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일반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 분들이 자신의 목회와 더불어 충분한 시간을 내서 해당 교회들을 도와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한인 교회들이나 아시안 교회들은 언어문제와 문화적인 이해 차이로 인해서 이 제도를 활용하기를 꺼린다. 혹 이 제도를 활용 한다고 해도 너무 늦게, 그리고 사태가 회복 불능한 단계에 가서야 도움을 청한다. 또한 종종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순순한 마음으로 분쟁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제 삼자(개인이나 집단)가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고자 나서는 경우들도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경우에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거나 사태가 더 악화되기만 한다.

IV. 마치는 말

누구도 분쟁에 휩싸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분쟁 중일 지라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정의’는 분노를 기초로 한 ‘심판’과 ‘징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서로에 대한 ‘용서’와 화해’와 ‘용납’이다.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려면 세속적인 ‘정의감’ 혹은 ‘피해 의식’ 속에서 누구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이전에 모두가 죄인이라는 의식이 먼저이다. 본인은 교회 안에 분쟁이 잃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하지만 갈등과 분쟁이 일단 일어난다 해도 교회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고 또 그러한 여유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초대 교회로부터 있어왔다. 교회가 그들의 분쟁을 극복하는 방법을 지혜롭게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을 향해서 사탄이라고 말하거나 원수로 여기지 말자. 그리스도안에서 모두가 하나님께 사랑하시는 자녀이다. 누구는 의인이고 누구는 죄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이를 본받아야 하고 이러한 생각과 모습을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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