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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회의 문화: 한국인 목사들과 미국인 목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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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200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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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안에서나 타 교단과의 에큐메니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각종 대표 회의에 참석해 보면서 회의에 임하는 미국인들과 한국인들간에는 같은 목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두 그룹 사이에 여러가지 차이가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항상 미국 사람들이 우리보다 좋은 것은 아니고 우리도 그들보다 낳은 점들이 있지만 몇 가지 그들로부터 배울 것들이 있어서 글로 적어 봅니다.

우선 동등한 발언의 기회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인들은 나이나 성별 혹은 장로나 목사의 직분과는 상관 없이 누구나 평등한 발언의 기회를 갖고 회의에 임합니다. 이런 개방적이며 평등의 모습은 어떤 사람이든지 회의 진행에 불만이 있는 경우, 막후에서 불필요한 쑥덕공론을 할 명분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회의의 토론 과정 중에 비록 어떤 사람이 자기 의사와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더라도 정중하게 들어줍니다. 미국인들은 개인이 가진 권위나 직위보다도 법과 그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과 회원간의 전체적인 화합과 상대방에 대한 인격의 존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회의의 진행이 매우 부드럽고, 돌발적인 사태가 일어나기 힘듭니다. 그리고 유머들도 회의 중에 많이 나오고 웃음이 많이 나옵니다. 미국인들의 회의들을 참석하면서 전체적으로 느끼는 점 중에는 이들이 매우 이성적이며 논리적 사고를 가지고 회의에 임하며, 또 다루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신경을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의 결론에 도달하는데 때로는 우리보다 오래 걸리지만 매우 신중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검토해 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얻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인들에게도 사전 의견 조정, 세력 싸움 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안에 따라서 미리 서로간의 의견을 조정하거나 특히 교단의 총 회장 선거 등의 경우에는 지역간의 실력 대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하게 됩니다. 미국인들은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법을 어기거나 법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엄하게 대하고 비판적입니다. 불평이나 불만이 있더라도 정해진 절차를 따라서 해야 하고 직급이 높더라도 회의 진행에 대한 특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선거나 의사 결정을 하더라도 축제적인 분위기나 웃음이 많은 속에서 할 수 있는 토양이 되어있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결과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회의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 결과에 불만을 가지고 장외로 일을 확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인들의 문화 속에서는 한국인들에게는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Confrontation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대결,’ ‘직면’ 혹은 ‘대항’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해석만으로는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의견을 자기가 믿는 논리를 상대에게 굽히지 않고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말싸움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좋은 예로는 학교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의 토론입니다. 한국에서는 교수는 강의하고 학생은 듣는 위주라면, 미국에서는 교수와 학생간의 의견 차에 대해서 서로간의 격렬하게 하는 토론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험담을 배제하고, 문제의 핵심에 대한 자기의 논리에 충실하며, 폭력적인 신체적 접촉을 배제한다는 대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의 기질은 혹시 자신의 주장을 어렵게 말하더라도 상대방의 발언이 부정적이거나 반대를 표하면 쉽게 흥분해 버리고,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서 화를 내고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흔합니다. 이 미국의 confrontation 문화가 한국인의 문화 속에서 정착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인의 문화는 만민 평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문화는 복잡한 계급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confrontation은 한국 문화 속에서는 아무리 정당한 생각일지라도 상명불복 혹은 상대방에 대한 멸시 혹은 인신 공격 등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이와 비교해서 한인들의 많은 회의들에 참여하면서 그 진행이 매우 경직되어 있거나 혼란스러운 경우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 미국인 보다 약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심한 경우에는 한국이나 요즘 종종 미국 TV의 뉴스 거리가 되는 대만의 세속적인 정치판을 보는 듯 할 때도 있습니다. 한인들의 회의에서도 만민 평들의 발언권 부여는 법으로는 보장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이에 대한 집행은 매우 형식적일 뿐, 나이나 신분에 따라서 발언에 대한 비중의 차이가 많이 납니다. 우선 자리 배치를 보더라도 전도사나 신학 생들은 맨 뒷자리에 앉고, 젊은 목사들이나 부 목사들은 그 다음 뒷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님들이 회의 대부분의 분위기와 발언 시간은 그들의 원로 혹은 개 교회의 담임들이 주도합니다. 혹시나 젊은 분들이 회의 중 발언을 할 때는 원로 분들이나 선배 혹은 자기 교회 담임 목사님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소신 있는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 되어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위계 질서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원로나 목회의 선배들의 눈 앞에서는 위계 질서가 잡혀 있는 듯하고,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체면 문화가 만들어낸 것으로서 막후에서의 불만 토로뿐만 아니라 유언 비어의 확대 가능성이나 파당 짓기나 반대 세력 키우기 혹은 장외 투쟁 등의 위험성을 갖게 됩니다.

한국인들은 다분히 감정적이라서 대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회의 내용의 본질에 집중하다가도, 회의 도중에는 토론의 본질과는 상관도 없는 다른 문제로 화재가 바뀌는 일도 흔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중히 의제를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의 중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인 일이나 절차 자체에 집중하다가 감정이 상하기도하고, 개인적인 고집 때문에 혹은 이익 때문에 전체 회의가 흐트러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성적 사고와 논리적 접근이 아쉬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인들과의 회의 경험 속에서는 들어 보지 못하는 말이 한국인들의 회의에는 하나 있습니다.“법이요!”라는 외침입니다 이 ‘법이요!’라는 소리는 한국인들의 회의의 중간 중간에 여러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자주 튀어나옵니다. 법을 운영하는 사회자가 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외침인지, 아니면 목회의 원로나 선배의 말씀이 성문 법 위에 있다는 말씀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절차를 따져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의 안건을 심의하기 보다 절차 자체를 가지고 싸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법이 불완전하다는 뜻도 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그 성문 법의 권위나 집행 또한 회의 참석자들로부터 그만큼 존중 받지 못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 점은 결코 법 운영의 융통성이라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이야 말로 그 단체나 교단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더 나아가 흔하지는 않지만, 회의나 한 교단의 경우에는 성문 법보다도 한 사람이나 몇몇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좌지 우지 되는 독선적인 경우도 발생됩니다. 또한 한국인들의 종교 단체나 협의회 등에서 대표성 있는 사람을 뽑는 경우 미국 교회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자격자나 인격에 많은 흠이 있는 사람이 장으로 뽑히는 것을 가끔씩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런 일이 한국 정치 식의 파벌 정치나 특정 교파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단체의 장이면 실력과 인품이 갖추어 져야 하는데 우리사람이라고 밀다 보니 무자격자나 인격 장애자가 장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한국 목사님들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 자신부터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고 미국인들이라고 해서 모든 회의가 천사들의 모임같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누구라도 자기 혈압 높아지는 회의는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보편 타당하게 말해서 모두가 법의 권위를 사람의 권위 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법으로 정한 절차를 지켜야만이 회의 질서가 평온하게 유지됩니다.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사고와 함께 신중하고도 즐겁고 유쾌한 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당연히 승복이 요구됩니다. 자기와 뜻이 같으면 쉽게 내편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적으로 여겨지는 흑백 논리식의 전개는 누구나가 다 버려야 할 악습입니다. 감정적인 말싸움이나 자기 세력 (혹은 자기 교단 사람) 밀어 주기식의 회의나 투표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만큼은 반듯이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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