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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해야만 살 수 있는 세 가지 용기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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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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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만용은 싫어하지만 '용기'는 좋아한다. 결정적인 때 용기가 없어서 용단(勇斷)을 내리지 못하여 평생 후회하기도 한다. 두뇌가 명석해도 담대(쓸개가 큰)하지 못하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은 판단력(두뇌)과 결단력(용기, 담력)을 구비할 때 지도력을 나타내어 이웃과 민족을 위해 큰 공헌을 하게될 것이다.

매사(작고 큰 일)에 용기는 요구된다. 그러나 필자는 좀 다른 측면에서 '용기'를 다루고자 한다. 다른 일에 용기가 없거나 모자라서 실패 내지 참패를 당할 수 있으나 다음 세 가지에 용기를 갖지 못하면 영패(永敗)하고 말 것이다.

첫째, 회개를 외치는 용기이다.

이 용기는 결코 쉽지 않다. 회개를 외치다가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3장에는 세례 요한이, 4장에는 예수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을 향하여 "당신이 그 여자(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하다가 참수(목을 벰)형을 당했다. 스데반도 교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자들에게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아..." 고 하다가 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했다(행 7장).

예수님도 "화 있을진져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7번이나 외치시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다가 미움 받아 십자가를 지셨다. 그 중에 1번만 소개한다면 "...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장)

둘째, 회개하는 용기이다.

성경에서 회개의 본을 보인 인물을 말하라면 다윗왕이라 하겠다(삼하 12장). 그는 역대 왕중에 가장 큰 왕이다. 권력이 그로 하여금 범죄케 했다. 그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할 뿐 아니라, 우리아까지 전쟁터에서 죽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을 다윗에게 보내 책망했을 때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가슴을 치며 눈물로 침상을 젖게 하면서까지 통회 자복했다(회개한 기도 : 시 51편 참조).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가진 왕이 나단의 책망에 왕의 체면과 권위를 내려놓고 그렇게 철저히 회개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인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용기라 하겠다.

신약에서 한 사람을 말하라면 베드로이다. 그는 예수님을 두 번 부인하고, 한 번 저주한 죄를 범한 후 예수님이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닭 우는 소리에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다.

그가 용서받은 다음 오순절 때 모여든 청중(3천 명)을 향해 설교하면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하며 회개를 외칠 때 그들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장)라고 하며 철저히 회개하였다.

오늘에는 회개를 외치는 지도자(설교자)도 보기 힘들고 회개하는 자도 만나기 어렵다. 회개를 외치면 성도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고는 입을 열지 않고, 듣기 좋아하는 평안, 성공, 건강, 축복의 입을 크게 열고 외치기를 일관한다. 구원의 첫 관문이 회개인데 회개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천국(구원)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예수님은 첫 설교 제목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치셨건만... 말세교회는 회개를 외치기를 기피하는 설교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 "몰지각한 목자들"(사 56장)이라고 엄하게 책망하셨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게 하여 천국 백성이 되게 할 책임을 못할 뿐 아니라 자신도 회개를 기피하고 있으니 어찌 짖는 개가 되며 지각있는 목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셋째, 용서에 대한 용기이다.

기독교는 회개와 용서의 종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Rebuke)하고 회개(Repentance)하거든 용서(Forgive)하라"(눅 17:3)고 하셨다. 용서에도 회개만큼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분명히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용서보다 회개가 먼저이다.

내가 용서받을 잘못(허물, 죄)이 있으면 상대방이 용서해 주도록 사과와 회개를 먼저해야할 것이다. 어떤 분은 회개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으면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을 듣고 본 일이 있다. 이럴 때 쓰는 적당한 말이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뜻인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랄 경우에 쓰는 말이다.

용서를 빌고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아니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진정성이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사과나 회개에는 쉽게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했음에도 용서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용서의 용기가 없는 자라 하겠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다(마 6:12).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하지 아니하면...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 15)고 하셨다.

나는 반드시 해야만 살 수 있는 세 가지 용기를 갖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하며 자문자답해 보고, 없으면 지금부터 갖자. 다른 용기는 혹 부족하더라도 이 세 가지 용기는 반드시 갖추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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