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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치유(治癒)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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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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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들이 기독교인을 유혹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잠시만 둘러보면, 성도들 간에 가장 인기(?)를 누리는 부흥강사들에게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용어가 바로 이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용어인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과거 박태선 장로가 그랬고, 현재 전주 율리아를 비롯하여 들어 내놓고 미혹하는 자 외 다른 복음을 전하는 많은 자가 그렇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겠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사 1:5-6)” 여기에서 보는 대로, 죄지은 인간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크게 혹은 작게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이고, 설사 육체는 아무런 탈이 없고 건강하다고 하여도 병든 영혼으로 말미암아 힘들고 지쳐 있기에, 병든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허덕이는 나약한 자신을 강하게 치유해준다는데 솔깃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말은 정말이지 모두에게 필요한 요구에 부응하는 아름다운 언어이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경으로 답답한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용어이다. 이런 것을 아는 사이비들이 연약한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하여 병들고 지친 영혼을 미혹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이비 교주들, 그들이 이끄는 집회는 한결같이 치유가 넘쳐난다고 대대적인 광고와 홍보활동을 벌이고, 그런 사람들은 언변 술이 아주 뛰어나 잠시만 듣고 앉아 있노라면 쉽게 세뇌되게 마련이다. 그는 무언가 남다른 데가 있을 것처름 보이기도 하는데, 그만큼 그들(사이비)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술수가 뛰어나며 체면술 적인 어떤 힘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자기 과대 표현 중 한 가지가 바로 “자신이 하나님처럼 신령하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이게 하는 수사력이다. 영적으로 신령하다고 말하려고 하면 무엇인가 남다른 것을 내어 놓아야 하고 그 남다른 것이란 바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특수용어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는 유명하다는 ‘치유사역자’는 많은데, 실제로 병나은 사람, 의료적으로 증명(medically proven)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병이 나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선포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기에, (실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신념일 뿐.) 큰 소리로 강사를 따라서 “믿~씁~니다!”를 연발하기도 하고 “주~여~”삼창도 부르고 사람들 앞에서 믿음의 선포를 그토록 강하게 했건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 보니 병은 그대로 있다. 그래도 항의하지 못한다. 자칫 항의했다가는 ‘믿음이 없는 자’로 몰려 되레 더 큰 상처만 받을 수도 있고 다른 동료들에게 따가운 눈총받을 일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용어는 성경적인가?

그 대답은 “No! 아니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성경에도 보면 분명히 치유 사역이 있고 치유 사역자가 있었는데 무슨 말인가?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없지않아 있을 것이다. 그랬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동안 많은 시간을 병든 자를 치유해 주시는데 할애하셨다. 또 초대 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병든 자가 일어났고, 바울 사도는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 ‘유두고’란 청년을 위해 기도했을 때 죽었던 그 청년이 살아나는 기적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럼 현대 교회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의 문제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성경을 곡해한대서 기인한 것이랄 수 있는데, 현대는 ‘치유사역’과 ‘치유사역자’란 용법을 비성경적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적으로 조금만 살펴보면 ‘치유사역’이나 ‘치유사역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엄밀히 말해서 인간이 ‘치유사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다.

생각해 보자, 병을 고치는 것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다(고전 12: 4-11). 그러니까, 누가 기도하여 어느 한 사람이 병에서 놓임을 받았다고 하자. 그것은 비록 어느 한 사역자 혹은 평신도가 기도하여 병이 나은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병이 나은 것은 성령 하나님의 뜻이요, 은혜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원하시는 뜻에 따라, 그 원하시는 사람을 통하여 그 순간에 역사하신 것이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신 것이지, ‘치유의 은사’가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로 주어진 것은 아니란 것이다. (필자는 젊은 날, 중풍 병자를 위해 기도해 드린 적이 있고, 그분은 그 악한 중풍병에서 놓임을 받은 체험이 실제로 있다. 단 한 번의 기적으로 끝이었던 것이 유감이지만…..ㅠㅠ)

이것을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성도는 모두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이 내주(dwelling in)하고 계신다. 성령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신 성도가 병든 자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병든 자를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기도하는 것까지는 인간의 영역이지만, 치료는 신(神)의 영역인 것이다. 때문에 병자를 위해서 기도한 사람은 그 순간에 주님께로부터 사용 받은 은사 자였다 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그 은사 자가 계속해서 ‘나는 치유사역자’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란 것이다.

세상의 의사는 면허증을 한 번 취득하면 된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면허증을 취득하는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의사다. 그러나 영의 세계는 다르다. 병든 자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줄 수 있는 한계까지가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다. 그럼에도 현대 사이비들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치유 면허증 취득, 면허증 소지자인 양 행세한다. 병을 나을 수 있게 하신 분은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필요에 따라 그(은사 者)를 사용하셨으니, 그는 그 순간에 사용된 주님의 도구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 환자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는데, 그 사람의 병이 나았다. 그러면 나는 계속적인 '치유사역자'로 불리우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다. 나는 그 순간에 주님께로부터 사용당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과대 선전하는 것은 교만의 소치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병을 낫게 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치유사역자’라 말 할 자격이 없다. 결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그 위를 지나가시도록 종려나무 가지와 옷가지 등을 던지며 환호했다. 이때 예수님을 태우고 가던 당나귀가 “와! 이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환대해 주는구나 !" 하고 좋아서 껑충껑충 뛰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나귀 등에 타고 가시던 우리 주님은 땅으로 떨어지시거나 아니면 떨어지시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착각으로 날뛰는 어리석은 당나귀 위에서 어지러운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면서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다. 그런 황당한 착각에 빠져 교만을 떠는 당나귀에게는 자칫 몽둥이 찜질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초대 교회 시대, 가장 병든자를 많이 일으켜 세운 주님의 제자들, 사도들, 바울마저도 자신을 가리켜, “나는 치유 사역자다.”라고 감히 말하지 않았다. 하물며 우리이겠는가? 주어진 직분이 무엇이건 그 직분으로 불리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겸손하게 자기 자리에서 목숨 다해 충성 봉사해야 한다.

진정한 치유사역자’는 오직 한 분, 우리의 치료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우리 영혼의 질병도 육신의 질병도 주님께서 치료해 주신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 5) 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말씀하셨다. (사 61:1-3)

우리(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병낫기를 서로 고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이것뿐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약 5: 16). 여기를 잘 보자.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슈퍼(super power) 권능의 소유자도 없고 슈퍼(super) 치유사역자란 더더욱 없다. 속지 말자.

치유와 관련된 성구들

((세라퓨오 )
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육체적인 병을 치유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마 4:23; 8:7, 16 등).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아오마이 )
육신적인 병은 물론(마 15:28), 마음이나 영적인 병은 물론 축사로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마 13:15; 눅 4:18; 요 12:40; 행 10:38; 히 12:3; 벧전 2:24; 약 5:16 등). “(수르보니게 여인의 딸)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소조 )
구원하다(마 1:21; 18:11), 위험에서 건져내다(마 8:25; 14:30), 치유하다 또는 온전하게 하다(막 5:23; 6:56), 귀신 들린 자가 깨끗함을 받다(눅 8:36).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마 1:21).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 5:23).

(구약의 라파 )
원 상태로 회복하다(창 20:17; 시 6:2; 렘 17:14). 사람의 병(출 15:26; 왕하 2:22), 나라의 죄악이 치유 받다(대하 7:14; 호 6:1; 렘 3:17).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5)) -성서 원어 대사전 참조

현대 치유 사역자란 사람들의 치유 사역 부분은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사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 하는 것과 어, 하는 것은 얼핏 들으면 비슷한 것 같지만, 天地, 하늘과 땅의 차이다. 현대 기독교계에 이단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것은 첫째는 삶에 찌들린 성도들이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한다는 것, 다음은 영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말만 잘 하면 속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성도들의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말씀을 바로 믿자고 외치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자, 혹은 치유 사역자들이나 은사자들을 시기하여 그렇다.’라고 몰아간다. 어리석은 영혼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고 있다. 이런 것을 의학용어로는 ‘착각(illusion)’ 이라고 한다. 착각이란 단순한 지각상의 실수이기보다는 부정확한 지각을 유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어떤 착각은 시각단서의 모호함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그들을 시기하여 이런 말한다고 착각하지 말아 주십사 제발 부탁드린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중, 누구던지 자신을 가리켜 ‘치유 사역자’라 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성경이 이토록 밝게 말씀하고 있는데, 아직도 “나는 치유사역자.”라며 자신을 과대 선전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이거나 아니면 삯군 목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필시 주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란 의심을 받아 마땅한 자다. 목회자님들과 성도님들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특별히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주님의 피로 값주시고 산 소중한 양떼들을 이단 사설이나 삯군 목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고로, 우리의 영혼과 육을 함께 치유하시고 살리시는 주께로 돌아가자. 성령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신 우리가 만인제사장이면 만인이 기도할 수 있는 특권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부여받았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강하다. 병든 형제 자매를 위하여 간절히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도 진정한 ‘치유사역자’이신 주님께서 병든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리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 6-7)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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