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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우공이산(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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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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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옛말이 있다. 노인네가 자기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기려고 한 삽 두 삽 부지런히 삽질을 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산을 옮겨주셨다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이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우공이산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太形王屋二山, 方七百里, 高萬仞, 本在冀州之南, 河陽之北.
태형 왕옥 두 산은 사방이 7백리 높이가 만길로 본래 기주 남쪽, 하양 북쪽에 있었다.

北山愚公者, 年且九十, 面山而居.
북산의 우공은 나이가 곧 90인데 산을 맞대고 살고 있었다.

懲山北之塞, 出入之迂也, 聚室而謀, 曰
산 북쪽이 막혀 드나듦에 멀리 돌아가는 고생을 하니, 집안 사람들을 모아 도모하여 왈

"吾與汝畢力平險, 指通豫南, 達于漢陰, 可乎?" 雜然相許.
나와 네들이 힘을 다해 험지를 평탄히 하여 예남을 열고 한수의 남쪽까지 이르려는데 괜찮겠는가? 하니 분분히 서로 동의하였다

其妻獻疑 曰 "以君之力, 曾不能損魁父之丘.
그 처가 의문을 내어 묻길 당신의 힘으론 괴부의 언덕조차 덜지 못할텐데 ▶괴부 : 고대의 작은 산 이름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
태형와 왕옥을 어찌한다는 것이며, 또 흙과 돌은 어디에 두시려구요?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
분분히 말하길 발해의 끄트머리 은토 북쪽에 던지면 됩니다, 하여

遂率子孫荷擔者三夫, 叩石墾壤, 箕畚運於渤海之尾.
드디어 자식과 손자를 거느리고, 짊어지고 멘 세 남자가 돌을 두드리고 땅을 일궈 삼태기로 발해 끄트머리로 옮겼다.

隣人京城氏之孀妻有遺男, 始齔, 跳往助之. .
이웃사람 경성씨의 미망인이 사내 아이가 있어 이갈이를 시작하는데 뛰어와서는 이를 도왔다.

寒暑易節, 始一反焉. 河曲智叟笑而止之, 曰
여름과 겨울 계절이 바뀌고야 비로소 한번 되돌아오게 되었다. 하곡 지수가 웃으며 만류하여 왈

"甚矣汝之不惠! 以殘年餘力, 曾不能毁山之一毛; 其如土石何?"
당신의 어리석음이 심히 깊도다! 얼마 남지 않은 일생과 여력으로 산의 터럭 하나조차 헐지 못할 것인데 흙과 돌을 어찌 하겠는가?

北山愚公長息 曰 "汝心之固, 固不可徹, 曾不若孀妻弱子.
북산 우공이 장탄하여 말하길 당신 생각의 고루함이 굳어 가히 통하지가 않으니 과부의 어린애만도 못하오.

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비록 내가 죽어도 자식이 있소. 자식이 또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또 자식을 낳으며, 그 자식은 또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은 또 손자가 있어

子子孫孫, 無窮匱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
자자손손 끝이 없으나, 산은 불어나지 않으니 어찌 수고롭다 불평하리오?

河曲智叟亡以應. 操蛇之神聞之, 懼其不已也, 告之於帝.
하곡 지수가 대답할 말을 잃었다. 조사라는 신이 이를 듣고 그가 그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천제에게 고하였다. ▶조사지신 : 뱀을 들고 있는 태형 왕옥의 산신

帝感其誠, 命夸蛾氏二子負二山, 一厝朔東, 一厝雍南.
천제가 그 정성에 감동하여 과아씨 두 아들에 명하여 두 산을 짊어지고 하나는 삭동에 하나는 옹남에 두게 하였다.

自此, 冀之南, 漢之陰無隴斷焉.
이로부터 기주의 남쪽 한수의 남쪽으로 높고 험준한 산등성이가 없다.


사람들이 볼때 어리석고 볼품없으나 그의 진실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현대의 우공은 누구인가 ?

현대 교회의 번영 신학과 교회 성장 우선주의는 많은 소자들을 힘들게 하고 좌절케한다. 이를 논문으로 발표한 자료가 있어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저자 이은영, "신자유주의와 1990년대 한국 대형 교회의 변화")

국경을 초월하는 메가처치의 등장

현대 신자유하의 대형 교회는 교단과 국경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온누리교회의 경우 국내에 9개의 캠퍼스와 해외에 29개의 비전교회가 있다. 온누리교회의 지성전 체제는 중앙 통제 방식이다. 제정과 인력도 모교회에서 관리한다. 이런 지성전 체제는 견제 장치가 없다. 교단과 교파의 규제도 의미가 없다.

이런 대형 교회의 등장으로 교단과 교파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지고, 교회의 브랜드와 스타 목사의 이름만 남는다. 교회의 브랜드가 강조되기 시작하면 새신자 교육이 강화된다. 일반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에 물든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적극적으로 옹호하게 된다. 변화된 구조 속에서 현 사회를 긍정하고, 사회에서 성공해, 주변 사람들에게 성공의 콩고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패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의 문제로 소급될 뿐이다. 교인들이 교회와 설교자에게 들을 수 있는 대안은 결국 가난하지 말고 부자가 되라는 말이다.

신보수 주의와 담론의 유행

불안이 상존하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는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의 중요성이 필연적으로 강조된다. 선발 대형 교회들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했다면,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후발 대형 교회들은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친절한 매뉴얼까지 제시하고 있다.

"예수 믿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욕심내고 도전해야 할 것은 우리가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다. 할 수 있는 대로 강한 자가 되라. 높은 자가 되라. 부한 자가 되라. 뛰어난 사람이 되라. 그렇게 되기를 힘쓰라. 바울이 하나님을 위해 로마 시민권을 쓴 것처럼 부함과 강함을 주님을 위해 선용하라." (높은뜻숭의교회 김동호 목사)

결국 한국 교회는 신자유주의적 사회로부터 변화를 받아 성장이 정체된 교회 구조와 내용에 개조하고, 교인들을 변화된 사회 속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화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현대 교회의 설교에서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마 7 ; 13)"라던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낳도록 주의하라 (마 6 ; 1),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rich man)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 19 ; 24)라는 등등에 관한 말씀을 듣기가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민의 푸른 꿈을 간직하고 이땅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일부만 성공했을뿐 대다수는 평범하거나 혹은 하루하루 경제적인 어려움에 살아간다. 바라건대 현대의 우공들에게 올바른 설교,진실되고 깨끗한 설교 , 하늘에 소망을 갖게하는 설교, 갈릴리 빈촌에서 소외된 자들을 연민의 눈동자로 바라보시던 에수님의 마음을 담은 설교가 더 많은 이민 교회에서 주일마다 선포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현대의 우공들이 세상적으로는 볼품없고 고생이 되어도 주일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예배를 통해 힘을 얻고 변화되어 저들의 진실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자손손에게 전해져 산을 움직일수 있는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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