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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의 예루살렘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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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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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현재의 생각과 그로 인한 판단으로 이 말씀을 받아 들이기 쉽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그 행간에 숨겨진 중요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놓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천년전의 역사와 지리와 사회사를 연구한 학자들의 힘을 빌려 우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인자로 살아 가시던 동 시대의 여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 가고 있었을까 ? 이 여인들의 삶을 추적해 가며 그들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신약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의 마음의 고통과 현실의 애환을 우리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으며 그래서 이 작업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1. 사회적인 면

그 당시의 예루살렘에 살던 유다인 여인들은 집 밖에 나갈 때 면사포를 가지고 얼굴을 가림으로써 용모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이런 연유로 어떤 기록에 보면 예루살렘의 고위 사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하고 간음의 혐의가 있는 여인에 관한 소송을 그녀에게 실시한 적이 있던 일도 있다.얼굴을 가리는 면사포를 쓰지 않고 머리를 내놓은 채 밖에 나온 여인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자로 간주되었으며 그녀의 남편에게는 그녀를 내쫓을 의무가 있고 이혼할때 부인에게 지불하기로 혼인계약서에 규정된 돈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여인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은 후원의 규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까지만 나올수 있으며 결혼한 여인들은 정원의 문까지만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관습을 중시하던 때에도 예외가 있었다.

일 년에 두번 즉 아브월 15일과 화해일에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이 도시의 주변 지역에 있었던 포도밭에서 춤을 추었다. 이때 처녀들은 총각들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였다.팔레스틴 탈무드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집안의 딸들도 이 축제에 참여했다고 한다.

2. 가정적인 면.

부모의 집에서 딸들은 아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이들이 배우는 것은 바느질과 베짜기등 가사뿐이었고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지 못했다. 결혼하지 않은 딸에 대한 가부장권은 대단하였다. 여자들은 (1)어린소녀; 12세 이하의 소녀 (2)처녀; 12-12.5세 (3)성인여자;12.5세 이상 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자들은 12.5세가 될때까지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한하에 있었다.

따라서 자율권이 없는 딸들에게 아버지는 법적인 대리자로서 청혼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도 있었고 이 딸을 불구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도 있었다(결혼 기탁금이 많은 경우). 성인이 된 딸의 경우 딸의 동의가 없을 경우 약혼이 성립되지 않었으나 , 성립이 된 경우에는 그 결혼 지참금은 아버지의 소유였다. 그래서 많은 경우 아버지들은 자기의 딸을 시집보내며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였다.

친척과 약혼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그래서 딸을 서로 자기의 친척이 되는 총각과 결혼시키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싸우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제들이 사제가문에서 부인을 취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는 기록과 평신도들끼리 서로 근친혼을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3. 종교적인 면.

종교적인 관점 - 특히 토라에 대한 관계에서 부인은 남편과 동등하지 않았다. 부인들은 토라의 모든 모든 금령아래 있었고 사형을 포함한 민사형법의 엄격한 규정아래 놓여 있었다. 과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순례하는 일 , 초막절에 초막에 거주하고 신년에 호각 부는 일 , 부림절에 므길라(에스더서) 를 읽는 일 , 날마다 쉐마를 낭송하는 일은 남자의 몫이고 여인들에게는 그런 의무가 없었다. 학교는 소년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부인에게는 토라를 연구할 의무가 부과되지 않았다. 단지 귀족 가문의 소녀들에게는 세속적인 교육 , 특히 그리스어를 가르쳤는데 당시에는 그리스어를 하는 것이 가문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여인들의 종교적인 권리들도 제약되어 있었다.요세푸스에의 기록에 따르면 여인들은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과 여인들의 뜰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여인들은 교사가 될수 없었다.또한 증언할 권리도 없었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거짓말을 잘 했기 때문이다(이것은 창 18;15절에 근거한 것이라고 함)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보며 예수님 시대에 유다에서 부인들이 경시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사실 이런 것은 당시 동방 사회에서 흔한 일이었다. 동방에서 여인들은 주로 성적인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외부 세계와 격리되었으며 아버지나 남편의 지배하에 있었고 종교적인 면에서 남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사적인 배경을 전제로 할때 당시 여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가를 비로서 깨닫게 된다.
 
누가복음 8;1-3절과 마가복음 15;41절에는 많은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당시에는 유례가 없던 일들이었다. 세례 요한은 여인들에게 설교하고(마21;32) 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그치지만 에수님은 여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만듦으로써 관습을 의도적으로 탈바꿈시킨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시의 남자들에게 여인들은 성적인 존재에 불과했으므로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여자들에 대하여 순수한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신다.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율법적,도덕적인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예수님을 초청하나 그 자리에 나타난 동네의 죄인이었던 여인으로 말미암아 그 가식적인 행위가 드러나는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눅 7;36-50).또한 마태복음 21장에 등장하는 세리와 창기를 인용하여 여인을 남자와 동등하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주게 됨을 알수 있다.
 
특히나 결혼에 대한 일부일처제와 이혼을 철저히 금지함으로써(마19;6) 결혼을 높이 평가하고 성화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새롭게 보여준다. 즉 여인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해 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왜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없이 눈물만 흘렸는지, 왜 어떤 여인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예수님께 가까이 가려고 했는지 , 왜 남자들이 로마 병정의 창검이 두려워 피할때도 여인들이 두려움없이 예수님의 무덤가로 달려 갔는지를 비로서 ㅤㄲㅒㅤ달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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