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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아무 흠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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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0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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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 18-19절 말씀)”

신약 교회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두 가지 의식(예식)이 있다. 그것은 첫째: 성만찬 의식(Communion Service), 둘째: 침례(세례)식이다. 침례식도 세례식도 각 교파에 따라 다른 것을 취하 듯, 성만찬 의식 역시 각 교파마다 다른 견해를 주장한다. 우리는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성령님께서 각자의 마음에 깨달음을 주시는 은혜대로 선택하면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성만찬 예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할 때,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우리들 사이에 크게 나타나 아무런 오해도 없이 모두 깨닫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성만찬식(Communion Service)의 유례:
 
성만찬식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흘리신 피를 기념하며 그 피를 믿고 죄 씻음 받는 신앙고백 행위이며 유례는, 출12: 1- 30절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장자를 치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과 그 무서운 재앙의 밤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집 안에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약속을 주셨다. 과연 그날 밤, 그 약속을 믿고 그대로 순종한 사람은 머리 털 하나 상치 아니했지만, 그 말씀을 알지 못했거나 설사 안다고 하여도 믿지 않거나 순종치 않은 사람의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재앙의 천사가 지나갈 때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쳐서 죽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희생된 어린 양은 오실 메시야의 표상이었고 오신 메시야는 그 예표 된 대로 십자가 위에서 찢기고 상하셨다. 아무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우리 마음속에 뿌리운 자는 더 이상 죽음이 왕 노릇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심을 받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성만찬의 유례다.

1. 성만찬 식의 기원과 그 중요성:

성만찬 식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막 14:22-26, 눅 22: 14-20, 등)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떡과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신 후, 성찬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다. 그때부터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찬 예식을 거행해 왔다. 성찬예식의 중요성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느냐,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되느냐, 다시 말해, 사느냐 죽느냐의 중대사가 달렸다고 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 53-56절 말씀)”

2. 성만찬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특별 의미:

a. 속박으로부터의 구속을 가리킨다. (Redemption, 눅 22:20절 참조.)
b. 한 몸과 한 피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쳬의식을 강조한다. (Unity, 고전 10: 16-17, 고전 12: 13절 참조.)
c.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 신앙이 내포되어 있다. ( Anticipation, 눅 22: 16- 18절 참조.)

3. 성만찬 예식(의식)에 따른 몇 교파의 견해 요약:

화체설 = 로마 캐톨릭: 성만찬식에 마시는 포도주와 먹는 떡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함

성체 공재설 = 루터 교회:떡과 포도주가 물질적인 피와 살로 변하는 것은 아니나 보이지 않는 형태로 실제적 임한다고 함.

신비적 임재설 = 칼빈(칼뱅) 교회, 일부 감리교회 일부 장로교회의 견해 일부 장로교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신비적으로 특별한 방법(특별한 은혜)로 임한다고 함.

칼빈의 성만찬은 쯔빙글리의 기념적 행위와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 (means of grace)이었다. 칼빈은 루터의 공재론처럼 성만찬에서의 주님의 사실적 임재론을 피하고 있다. 그는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경험하기를 원하다"고 피력하면서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이 성만찬에 실제적으로(really), 그리고 전적으로(fully) 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성찬을 행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 가운데, 실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참여한다고 하였다. 바로 그러한 신학이 영적 임재설로서 오늘에 이른다. 어떤 점에서 칼빈의 성만찬의 임재론은 쯔빙글리와 루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념 혹은 상징설 = 침례교, 일부 장로교회: 단순히 기념하고 상징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나 살이 마술적인 어떤 방법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함.

어떤 사람이 성만찬 (의식)예식에 참예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인가?

자격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해석할 때, 대단히 까다로운 것 같다. 고전 11: 23절에 보면 자격 없는 자가 분별없이 먹고 마셨기 때문에 그중에 많은 사람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있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기록해 두고 있다. 이 말씀을 잘못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사람들은 인간적인 선행에다 그 기준을 두고 있음을 본다. 자기의 생활이 깨끗지 못한 사람들, 죄가 있는 사람들은 성찬 예식에 참예하지 말라고 권하는 목사님들도 계시고 또 그런 권면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이 깨끗지 못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히 성만찬 식에 참예할 자격이 없다하여, 스스로 성찬식을 거절하는 사례도 자주 보아 왔다. 잘못된 가르침이 주는 엄청난 오류라 하겠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자격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1.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구하려 하심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을 찢기고 상하신 것 또한 죄인을 위해서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 13절 말씀)”

필자가 어릴 때 길리움 받은 교단은 아주 엄격한 교단이었다. 우리 교회서는 성만찬 예식이 있기 전에 목사님께서 늘 광고를 하셨다. “곧 성만찬 예식이 있을 텐데 성만찬 예식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깨끗이 지켜 정결케 한 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니 자기를 살펴 깨끗치 못한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를 하던지, 아니면, 자기 앞에 잔이 올 때 그 잔을 받지 말도록 하라.”고 친절(?)한 안내까지 해 주셨다. 이것은 칼빈(칼뱅)주의에서 비롯된 것인데, 칼빈(칼뱅)은 성찬식 준비 기간은 "각 사람이 성찬식을 가치 있게, 그리고 성찬식을 합당한 경건함으로 받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마음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전 주일에 선포했다. 어린이들과 외부인들은 사전에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상당한 자기 검사와 자기 성찰 후에 성찬식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자기 성찰적 경건은 개혁파 교회의 특징이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말씀을 읽으며 성령님의 조명하에 깨달은 말씀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주님의 몸과 잔에 참예 하려면 “상당한 자기 검사와 성찰” 후에,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가 성만찬 식에 참예할 자격자가” 아니란 것이다. 내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가? 또 내가 얼마나 많은 의를 행했는가? 하는 것에 성찬식에 참예할 수 있고 없고의 기준을 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가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자기 자신의 죄가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주님의 피와 살이 필요하고 그 공로로 깨끗하게 될 수 있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런 마음의 자세야말로 주님이 기뻐 흠향하시는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 속죄하는 능력이 우리 주님의 피와 살에 있음을 믿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겸손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 더 이상은 주님의 피와 살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하는 결단의 마음으로 그 잔과 떡에 참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필자는 개혁 신학과 개혁 교회와 무관하지 않기에, 칼빈의 신학을 지지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꼭 같아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성경은 성만찬 예식에 참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자기 성찰후 깨끗한 삶을 사는 의인이기에 참예한다는 의인 의식보다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눈물로 그 앞에 나가는 용서 받은 죄인,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인 의식이어야 그 피와 잔을 기념하는 예식에 참예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의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광명한 하나님의 빛 앞에서 부끄러울 것 뿐, 주 앞에 내세울 수 없다. (욥 25: 4-6, 롬 3: 10-18, 23절 참조.)

2. 침례나 세례를 받은 성도이다.

각 교단별로 교리가 약간씩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자격을 세례교인 혹은 침례교인으로 한정 시키는 것은 모든 교회가 대부분 일치를 보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회중 앞에서 그 입으로 신앙 고백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절 말씀)”

아무 흠도 없고 죄 하나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흘리신 그 피를 의지하는 마음, 주님이 구주 되심을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성도라면 자기의 부족함을 빌미로 성찬예식에 참예하기를 거부하기보다는 더욱 열심히 성찬예식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은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는다는 것을 확증하는 복된 성도가 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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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2009-10-01 20:18
 66.xxx.18
 짐보님의 사랑의 수고를 생각하면, 뭔 말씀인들 듣지 못하겠는지요....ㅋㅋㅋ
 당연히, 짐도 나누어 지면 가볍고 매도 나누어 맞으면 덜 아프겠지요?

짐보님의 말씀대로, 진리는 단순 명료하니까요....저 역시 단순 명료를 사랑합니다. 짐보님과 마찬가지...저 또한 어리석은 변론으로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건전한 토론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필자는 모든 분들의 편에서 중립을 지키며 객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태도가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안은 어차피 구원론과는 상관없는 것이니까, 구태여 자기가 지지하는 교리를 다른 분들에게 강요하는 태도는 금해야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저도 짐보님처럼...객관성을 띤 나름대로의 연구 자료를 올려 드리려 합니다. 여러분께서 성령님의 조명하에 스스로 판단하시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주시든지 아니면 묵묵히 어떤 것을 선택하시든지 자유로이 택하시면 되겠습니다.

유아세례

 찬성하는 교파

 전통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장로교 및 개혁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인정한다. 이는 구약의 교회에서 시행 되던 성례전인 할례와 유월절 음식이 신약의 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으로 대치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에 기인한다. 특히 할례 또는 세례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있는 공동체에 들어온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해석하며, 이미 공동체에 있던 가정에서 자녀가 출생하면 할례를 베푼다는 구약의 원리에 따라 신약의 교회에서도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가정에 자녀가 출생하면 공동체 안에 있다는 의미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세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 로마 가톨릭은 생후 100일 이내에 유아세례를 받는 것을 요구한다.***
성공회에서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 성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동등하게 받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유아세례를 집전한다. 이때 교회에서는 대부모(代父母)를 세우는데, 대부모란 세례나 견진을 받는 신자의 신앙생활을 돕는 후견인을 말한다.

감리교의 창시자요, 성공회 사제인 요한 웨슬레 신부는 1784년 25조로 이루어진 감리회 종교강령을 발표하면서, 17조 세례에서 "또한 어린이에게 세례를 행하는 것도 교회에 보존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도 교인의 구분 중 세례아동을 두고 있다.

반대하는 교파

 침례교와 재침례파는 유아세례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자의 침례(believer's baptism)로서 유아는 아직 예수를 믿을 지각적 성숙이 결여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침례요한(세례요한)도 회개후 침례(세례)를 주장하였고, 예수도 제자삼은뒤 침례(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이다.

주석
 이러한 연속성의 근거로 등장하는 성경 구절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을 신약의 교회에 적용시킨 베드로의 설교가 종종 인용된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개인적 입장
 짐보님께서 "별똥별"의 견해는 어떤 것을 지지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짐보님을 주님 안에서 형제로 생각하는 저기에, 답변을 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약간 위험성이 있음을 무릅쓰고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뜻에 옳다고 인정되어지는 대로 행하시면 되겠습니다. 구원과는 무관한 문제이니까요.

저는,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임을 먼저 고백합니다. 자랄 때도 유아세례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느껴 본 적 없이 성장했습니다. 성장 후,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역사와 신학을 공부하는 중, 재침례파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좋은 점도 있고 헛점도 있으니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교리는 허트러진 신앙관을 잡아주는 길잡이 역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어서 안 되겠다고 하는 관점으로 정립이 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부분도 침례냐, 세레냐 논란한다면, 세례보다는 침례가 더 성경적이 듯, 침례파를 지지합니다. 답변이 제대로 된 것인지요....
 
 성령의열매  저는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세례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예수님를
나의 구주로 믿는것을 공포하는 의식으로
배웠거든요. 저는 어려서는 집 근처에있는
장로 교회를 다녔고 중학교때는 식구들과
함께 같은 교회를 다니기 위해 식구들이
다니는 감리교회를 다녔지요.
그리고 미국에 와서는 침례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전 세례도 받았고 침례도 받았어요.
물속에 잠김으로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물에서
나옴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이 새 생명을 얻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목사님께서는
세례를 받았다면 구지 침례를 받으라고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시라고 하셨어요.
성경을 공부하고 난 후 저의 결론은 예수님과 같이
침례를 받고 싶었고 시어머니와 남편과 같은날  10/2 05:03
 72.xxx.211
 
 성령의열매  침례를 받았는데요.물속에 잠겼다 나올때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있었어요.예수님께서 물에서 나오실떄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신것 같이 저 또한 감격스러운 마음이라고
할까? 그래서 전 침례받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세례는 옛날에 병든 사람을 침례 줄수가 없어서 약식으로
세례를 준데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사모님 말씀처럼 구원에는
관계가 없지만요. 전 예수님을 따라갈래요!^^*
그리고 저희 교회에서는 유아세례가 아닌 헌아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을 한나와 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0/2 05:13
 72.xxx.211
 
 별똥별  아멘입니다, 성령의 열매님...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래서 저는 구원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
예를 들어 의식의 방법론, 또는 교리에는
별로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어요.
이단만 아니라면 모두 상대를
인정해 주고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죠.
헌아식...
참 아름다운 것같아요.
사랑하는 자녀들을 주님 안에서 잘 기르겠습니다.
이 아이를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주님께 드리는 데서
그 유례를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말씀 내려놓아 주셔서 감사해요. ^^*


jimbo 

2009-10-01 13:53
 204.xxx.179
 교회사에서 반대파의 주장

 그 중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272~337)가 로마황제(306~337)로 재위하면서
 이룩한 업적(?)들.
신정정치(정교일치)를 한 그를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대하며(성 콘스탄티노 Sanctus Constantinus Magna)
동방정교회에서도 성인으로 추대하며
 그가 324년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Nova Roma)로 공표함으로
 비잔틴 제국(가톨릭)의 수도로 존재합니다.
가톨릭의 탄생이지요...
그에 대한 신학자들의 시각이 다양하지만
 그가 그리스도인 인가 하는 문제는
 죽기 직전에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에게 세례를 받는 것으로 전해지고
 성모 마리아 에게 봉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가 태양신을 숭배하였고, 그리스도인에게 호의를 베풀 은건, 그리스도인을 잡아드리기 위한 수단이었고, 나중에 정치적으로 신정정치를 표방하였다고 여겨집니다.
그가 321년에 태양의 날(Day of the sun, sunday)를 안식일로
 그 당시 그리스도인은 토요일을 안식일(금요일 오후 6시 부터 토요일 오후 6시까지)지켰습니다.
지금의 안식일(주일)의 태동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 했기에
 이교도의 풍속이 전파됩니다.
성인 숭배, 마이라 숭배, 제사장 체계, 교황, 추기경 , 교부, 연옥, 면죄부
 특히 성경에도 없는 유아세례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겨집니다.

재세례파(도나티즘 Donatism)
있는 자들이, 더 많은 부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교회로 몰려왔고...
신학적인 갈등은 교회의 정치적 결단과 황제의 의지에 따라
 불복하는 신앙인을 탄압하는...
기독교의 암흑의 역사는, 국가와 교회가 연합한 관계로
 피의 역사의 시작을
 교회의 타락을 의미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세상의 권력에 물들고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본 사람들은
 시대의 사조와 세상의 모습에서 구별되는 신앙을 추구하여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에 영향을 받은 수도생활을 합니다.
수도사(Monk)라는 말은
 고독을 의미하는(Solitary) 헬라어‘모나코스’에서 나온 말이라 합니다.
최초의 수도사로 알려진 안토니우스는 부자였지만
 복음서의 강해를 듣고, 부자 청년의 일화에 충격을 받았다 합니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이집트의 사막으로 운둔하였지만
 그를 지지하는 많은 수도사들은 신정정치하의 교회와 갈등을 갖습니다.
아프리카의 타르타고에 ‘카이실리안’이 새 감독으로 선출 되었을 때
 신앙을 성경에서 찾으려는 변절되지 아니한 무리들은
 카이실리안의 배교와, 그를 임명한 감독중 하나가 배교자이기에
 보다 성경에 충실하고 엄격한 ‘도나투스’를 새 감독으로 선출합니다.
도나투스주의자 들은 교회가 배교로 인해 거룩성르 상실했기 때문에
 세례가 죄의 용서를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시대와 중세는, 세례가 죄의, 용서의 능력을 갖게 한다는 사상이 있었다고)
그래서 다른 지역의 교인이 그들의 교회로 올 때 그들에게 재세례를 하게 됩니다만
 그들을 분리자로 보는 다른 쪽에서는
 신약의 재세례에 근거가 없다 하며
 시프리안(cyprian - 카르타고의 감독)의 관습에 의존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배교로 공격함니다...

 (여기에 어거스틴도 세례의 논쟁에 동참함니다.
어거스틴의 재세례파에 대한 논리는
 세례의 주체는 감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고
 성경에 근거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재세례를 베풀면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이고
 감독은 단지 대리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례는 언제, 누가 어디서 행하든지, 이 세례는 유효하다고 주장)

이에 교회의 통합을 이룩하려던 콘스탄틴 황제는
 카이실리안을 지지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만 제국의 세금혜택 등을
 주라고 명하므로 서...
도나투스를 지지하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은
 경제적인 차별의 핍박과 정치적 탄압으로 피를 흘렸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와 교회로 부터 핍박을 받다가
7세기 이슬람에 정복되기 까지 이어집니다.






재세례파(Anabaptist)
완전치 않은 종교개혁을 변혁을 요구하는 사람들.
K,클레베와 F.만츠 등은 복음주의 교회가, 아직도 가톨릭의 철저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근거로 유아세례에 있다 보고,성인세례를 주장하다 핍박을 받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이단으로...
성경의 말씀을 믿고 지각하는, 자발적인 신앙을 이슈로,
유아세례의 폐지를 주장합니다.
성인이 되어, 자각적인 신앙고백에 의한 성인세례를 주장하고 실시했습니다.(1525)
그 이면에는 신정정치의 로마법의 인정치 않고...
처음으로 취리히 당국이 재세례를 금한다는 로마국법을 근거로 핍박하기 시작하여...
종교개혁의 철저화를 요구하는 무리들은 탄압을 받자
 뮌스터의 난(1534~1535)이 재세례파의 거점인 독일 서부의 뭔스터에서 폭발하였고
 피의 탄압으로 끝납니다.
그들은 정교일치의 교회에서 이단으로
 신정정치에서는 폭력혁명으로 양쪽에서 탄압을 받았지만
 이제는 성경을 올바로 실천하려는 순수한 사람들로
 재평가 받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유아세례는...
의료가 형편없던 시대, 어린아이를 잃은 부모는
 그 아이가 천국 가는 것을 원하고, 확신하기를 위하여...
교회는 그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일에서...
신정정치는 그 권력으로 신앙을 단죄하는 일에서...
유아세례가 시작되었고
 종교개혁 때 다시 재침례파로 부터 이슈가 되어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마녀사냥에 죽었습니다.
그 유아세례로 콘스탄틴 황제 때,
종교개혁시대 독일, 스위스 , 오스트리아 등에서
 수백만의 반대자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두 시대는 교회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에, 강력하게 반대하던 시대라는 공통점과
 신정국가와 교회에서 양쪽에서 탄압을 받은 재세례파...
그들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교회는 아직도 유아세례를 합니다.
유아세례...
저는 개인적으로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별똥별  정말 대단하세요, 짐보님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신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바른 뜻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과 마음을 바치시는 분이
우리 아멘넷에 계심에 참으로 마음 든든합니다...^^
너무 수준이 높은 연구자료라 시간을 두고
좀 더 자세히 읽어 보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의 토론 참여도 기대됩니다.
특히,
자매, 아이린님, 그레이스님, 아곡님의 활약을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10/1 14:34
 66.xxx.18
 
 jimbo  별똥님이 아프시다니
문병은 못하고...
대신 몰매를 맞을 각오로 ㅎㅎ
조금은 나눠서 맞아야 할듯 싶습니다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유아세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건,저를 지목한 짐입니다. ㅎㅎㅎ
 10/1 19:43
 204.xxx.179
 
 agok  할례가 혈통을 따라 육적 이스라엘인이라는 증표로
남자의 육체에 행해지는 것이라면 남녀(유대인,
이방인 )구분없이 행해지는 세례는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뜻으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
영적 이스라엘인 되는,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증표랄 수 있으니 세례는 육적할례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마음과 귀에 받는
 할례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유아세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자녀를 언약적 신앙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겠다는 부모의 의지와 고백이 꼭 유아세례의
형식을 통해서 교회앞에 공표되어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데 ... 장로교 입장이 칼빈의
견해위에 확고히 서 있어 유아세례를
성경적으로 정당화하고 선하다 하니
길게 논쟁할 생각 없음!

jimbo 

2009-10-01 13:51
 204.xxx.179
 편치 않으신 중에도
 잊지 않으시고 올려주신 글과 열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교회의 예배와 의식에 대하여 토론하고 싶었습니다만
 그렇게 하기도, 여로 모로 문제를 야기할 것 같고
 전통을 무시한다는 몰매를 맞을 각오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란...성경의 말씀(진리)을 거울삼아 거울에 비친
 우리 개인과 교회를...말씀대로... 바라본다는...
일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빛이신 그의 자녀로

“너희는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엡 5:8

올바른 믿음으로
 올바른 교회를 회복해 간다는 건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로 몰락해가는 이 시대에,
빛을 역할을 잃어버린 세대에...얼마나 소중한지...
교회를 다니면서 성장한 저에게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신앙인이고 교회일까 라는 생각.
제 스스로의 믿음이란 알량한 껍데기를...
교회는...
외적인 건물과 인원과 물질이 풍성하면고,다툼이 없는 교회가 올바른 교회일까...
믿음으로 교회의 무조건 적인 순종을 강조하여
 분별없는 광신자를 양성하는
 의식과 전통에 물든 종교인을
“믿음이 좋다”도 평하는 교회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나? 는 의문은
 성경을 읽으며,
교회의 전통이 성경을 앞 설수 없듯이...
교회의 전통은 성경에 일치 하냐 하는 물음...
시대에 따라 변해온 전통...
교회사를 돌아보며, 진정한 개혁(reform)이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우리의 교회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수많은 ‘개혁’이란 명칭을 붙인 교회가 개혁적인지...
제 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정체성을...
뒤돌아보면서...
몇 가지 제 생각(고백)을 써보려 합니다.
교회와 세례를 집전하는 목사, 그리고 세례,
교회사의 유아세례.


교회가 무엇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
교회는 아직도 잘못알고 있거나, 가르치고 있고
 교회의 역사는... 수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예배당인가?
예배당이 아니라
 교회는 에클레시아(ekklesia) '부르심을 받은 자‘ 즉 성도들이 교회이며
 건물이 교회도 아니며, 더욱이 성전도 아니고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벤전 2:9

목사는 누구인가?
신약에 단 한번 언급한 목사는 지금의 목사인가?
그래서 영적인 제사장인가?
종교개혁때 사제란 명칭을 대신한 목사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그 직분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과 성도를 연결하여주는 ‘영적인 제사장“이 아니고 성도라고.
교회의 지도자(선생)임은 틀림없지만
 같은 성도에게 권위를 내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오직 교회는 그의 몸인 그의 머리신분은 주님이시라는.
제가 목사라는 직분을 언급함은
 교회의 직분,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은 일하는 직분이지만
 그 직분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더 낮아져야 한다는...
믿음이 어린 성도의 발과 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직분을 가르고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과 교회를, 몸과 영혼을 분리하는 분리주의자, 영지주의자 라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가를 것이 아니라
 같은 동역자로, 교회의 일을 함께 하는 각기 다른 직분, 지체...
그것이 더 성경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회의 의식 중 유아세례 관하여
 구약의 성례전인 할례와 유월절의 음식이
 신약의 교회에서는 세례와 성찬으로 대치되었습니다.
할례, 세례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인, 언약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로,
유아세례에 대하여
 전통적인 개혁교회인 장로교 및 개혁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인정합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세례를 성직자가 어린아이에게 집전(집례)을 하지만
 세례를 구원의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은, 중세에 구원의 수단으로 인정한 적도 있습니다.)
가톨릭은 생후 100일 이내에 유아세례를 받고.
감리교는 창시자인 성공회 사제 오한 웨슬러 신부는
1784년 25조로 이루어진 ‘감리교 종교강령“을 발표하면서
17조 세례에서 어린이에게 세례를 행하는 것을 강령으로 채택함으로
 기독교 대한 감리교의 교리와 교인의 구분 중 유아세례를 두고 있습니다.

반면 침레교와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거부합니다.
유아는 아직 예수님를 영접할 지각적 성숙이 결여 되었다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세례요한도 회개 후 세례를 주장하였고
 예수님도 제자를 삼은 뒤 세례를 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jimbo 

2009-09-30 13:29
 204.xxx.179
 불편하신 가운데 글을 쓰셨다니
 송구하고...고맙습니다.
글을 잘요약하셨습니다.
공감하구요.
구체적으로 유아세례에 대하여
 더듬어 볼려고 했었습니다만...이도 방만하고...
가능한 빨리 올려보겠습니다.

별똥별님의 완쾌를 위해,어제도 오늘도 기도를 했습니다.

어제 잠시 들렸다,글을 읽고도 댓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의식...대표적인 성만찬과 세례(유아,학습등 수많은 세례)
의식을 행함은,,,목사만 행해야 하나...
의식의 복장(까운)은....
그 외 수많은 의식은...
아직도 가톨릭의 의식을 쫓는...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고,일부를 제 스스로 정리하여 올리려고 했습니다만,분란의 소지도 많고,,,

저는 단순함을 좋아함니다.
진리가 단순한것 처럼...
그런 까닭에,기도도 거창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져 아버지와 아들 사이같이...
댓글도...침묵을 하는 편입니다...우리 모두가 주를 모시지만...
우리의 신앙의 색깔이 다르듯이.

얼마전 오랜만에 튼 티비에서
 유명하신 목사님이,울긋불긋한 까운을 입으시고
 설교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말씀은 귀에 들리지 않는데
 그분의 까운은 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
 '저분은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저렇게 화려한 까운을 입으시고 영접하실까? '

청교도들의 한 이슈가
 목사의 복장(까운)이었을 알으셨다면...
청교도의 신앙 이야기는 못하셨을 거다란 생각도...

그 청교도 들도
 미국에서 국가교회(신정정치)를 하려고 했지요.
침례교의 강력한 반대로
 국가와 교회의 분리,양심의 자유,종교의 자유등을 헌법에 명시했지만,,,

저는, 소위 보수라는 장로교에서 성장했지만
 보수 장로교인 이라는 긍지(?)를 버렸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배우면서
 한번 다녀보지 않은,침례교에 관심이 갑니다.
성경도 킹제임스 번젼에 관심이 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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