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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가족-혈연관계를 넘어 언약공동체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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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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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의 질서는 엄격한 법에 의해 유지됩니다. 그러나 법만 있으면 질서가 서는 것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과 예의와 범절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모든 복은 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질서가 없으면 어떤 복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질서의 바탕에서 보장되는 것이고 질서가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질서에는 자연 질서와 인위적 질서가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계절의 변화 같은 것은 자연 질서입니다. 법과 규칙 같은 것은 인위적인 질서입니다. 자연 질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고 인위적인 질서는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자연 질서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생물들을 위해 만드신 것이고 인위적인 질서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 질서는 순응한다고 하고 인위적인 질서는 지킨다고 합니다. 지킨다고 하는 것은 안 지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 질서는 인간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고 본능적으로 순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돌이 나를 행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 피하면 즉각 물리적인 데미지를 입습니다. 그래서 바보가 아니면 누구나 자연 질서에 순응합니다.

그런데 인위적인 질서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았지만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습니다. 자연 질서를 안 지키면 즉각 피해를 입지만 인위적인 질서는 안 지켜도 즉각적인 피해를 안 입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우선은 더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 빨간 신호등에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쪽에 차가 없을 때 지나가는 것이 시간도 절약하고 아주 편리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사고가 난다면 시간도 몇 배 더 낭비하게 되고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신호를 지키는 것이 시간이 더 걸리고 번거로워도 결국 더 안전하기 때문에 교통 신호를 지킵니다. 그런데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나의 안전을 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내가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그래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곧 윤리와 도덕성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인류학자 Mary Douglas는, 물리적 질서(Physical order)는 종종 도덕성과 정형화된 양식과 단정하고 정확한 것과 연관되고, 반면에 무질서(disorder)는 일탈과 금기와 연관된다고 허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사회의 작은 무질서가 심각한 사회적 비행과 범죄를 야기한다고 하는 이론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Broken windows theory.’입니다(Keizer, Lindenberg, & Steg, 2008;Wilson & Kelling, 1982). 부서진 창문 이론입니다.‘Broken windows theory.’는 범죄 심리 이론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즉 부서진 창문이 수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창문을 더 부수거나 낙서를 하거나 그곳을 범죄 아지트로 활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서진 창문 하나는 문화 파괴, 거리 폭력, 그리고 사회적 불만과 불평을 조성하고 기존의 법과 질서를 부정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반면에 공간이 청결하고 정돈 되어 있는 것은 도덕적 행동과 호혜(互惠)의 행동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무질서한 환경은 파괴적 행동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반면에 정돈되고 청결한 환경은 도덕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해낸다는 것입니다. 나름의 일리 있는 이론입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질서에 대한 다른 이론도 있습니다. 즉 정리 정돈된 공간은 규범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유발하고, 이와는 달리 어수선하고 정리정돈이 되어있지 않은 방은 창의력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규범으로부터의 탈피가 창의의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창의력 신장을 위해서 사회 전체를 무질서하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이나 실험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도 중에 가정은 참으로 독특한 집단입니다. 국가에는 법이 있고 크고 작은 많은 단체에도 법과 회칙과 규칙이 있습니다. 그래야 질서가 서고 질서가 서야 무슨 일을 도모할 할 수가 있습니다. 질서가 없으면 아무 일도 계획할 수가 없습니다. 질서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데, 예측이 가능해야 무슨 일이든 계획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학문은 예측을 하기 위함이고 예측은 지배하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은 법이나 규칙이 없이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가 경직되지 않아서 마치 무질서한 상태와 같습니다. 가정은 질서가 있어서 예측이 가능하지만 지배하기 위해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가족의 안녕을 위해 예측합니다. 또한 사회에서는 무질서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가정에서는 적당한 무질서가 가족을 편안하게 합니다. 가정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함께 허용되고 그 둘이 매우 독특하게 공존하여 각기 순기능을 합니다. 가정은 질서와 무질서가 지나치지 않게 공존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질서를 통해 바람직한 선한 행동을 유발할 수가 있고, 동시에 가정의 무질서를 통해 창의력도 개발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정의 전형이 바로 언약 가정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이 주는 교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극도의 타락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 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이런 정도로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돔 고모라 사건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 언약 가정과 대비하여 제시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방문한 천사들을 극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신약에서 손 대접하기를 힘써야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마땅한 태도의 전형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또한 그 사건에서 아브라함을 방문한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리면서, 하나님께서 사전에 그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통보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어떤 의무를 가지실 필요는 없지만 아브라함에 대한 언약을 신실하게 감당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전 생애와 그의 후손에게 신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 언약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가 되어 인류의 역사의 대 동맥을 이루는 구속의 역사로 계시되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언약 가정은 구속과 하나님 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브라함 언약 가정 반대편에 소돔과 고모라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지만 또한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어진 미션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아브라함은 그 미션에 실패했지만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의 표본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시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되기를 위해 안간 힘을 다한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보기입니다. 이러한 본보기의 반대편에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이 싫었고,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요나는 성공하였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이나 충성된 종의 본보기는 아닙니다.

언약 가정에는 하나님 나라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는 무엇인가를 지향하게 합니다. 따라서 언약 가정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것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와 니느웨에 대한 미션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미션은 목적론적이 아니라 당위론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 나라 미션에 아브라함처럼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없어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요나처럼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해도 요나는 하나님 나라에 눈곱만큼의 기여도 한 것이 없고 오리려 하나님 나라에 역행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시적 질서보다 가치 질서가 중요합니다. 가치 질서로부터 가시적 질서가 나와야 합니다. 언약 가정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 질서가 존중되고 장려되고 지켜져야 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가치 질서이고 민주주의도 가치 질서입니다. 법과 윤리를 실천하는 것도 가치 질서입니다. 무엇보다 약한 자를 배려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 질서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것도 약한 자를 돌보는 것도 언약 가정에게 주어진 책임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미션입니다. 한 가정에서 노약자가 보호 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언약 가정은 강제적인 법이나 규제가 없이도 노약자를 잘 보호하는 본보기입니다. 결혼과 자녀 교육과 직업과 사업과 모든 인간관계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아래서 사려 깊게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건강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게 세우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약 가정의 모든 가족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서로에게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롬 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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