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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와 새로운 피조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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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6-03-22

본문

탕자 이야기에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어도 돌이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돌이키기만 하면, 즉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할 때 돌이키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지만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 돌이키는 것까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무조건 받아 준 것이 은혜이지만 아버지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돌아가기로 결단하는 것까지 성령께서 주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탕자 이야기에서 또 하나 강조해야 할 점은 탕자가 처한 처절한 절망적 상황입니다. 그가 처한 형편이 얼마나 처절한 절망적 형편이었는지를 강조하는 부분은 그가 돼지 사료로 주린 배를 채우려 했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고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생존을 위한 식량을 두고 돼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은 형편은 모든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설명입니다. 탕자 이야기는 이솝 이야기처럼 단순히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탕자를 통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 실존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탕자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탕자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한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있어서 모든 주도권은 아버지께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간 것이 탕자가 한 일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믿음은 행위가 아니듯이 그것은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아무런 기여도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기여나 공로로 생각하면 구원이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이 은혜 교리입니다. 바울이 예정을 이야기 하는 것도 구원이 전적 은혜임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예정은 구원이 은혜임을 가르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은혜의 교리는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놓였음을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탕자를 아들로 받아준 것은 거듭난 것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즉 새로운 존재로 창조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을 때 강조하려 한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화목하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화목이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은 자들인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하는 것도 화목하게 하는 직책과 관계가 있습니다. 화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유기체인 몸보다 더 좋은 예는 없습니다.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는데 그 지체들이 모여 몸을 이룹니다. 몸과 지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체들의 유기적 연합이 몸입니다. 몸의 지체들 중에는 더 중요한 지체와 덜 중요한 지체가 있지만 각 지체들이 서로에 대해 교만하거나 반대로 무시당하고 소외되는 일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지체나 덜 중요한 지체나 모든 지체는 지체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지체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손은 손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발은 발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각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합니다. 새끼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나면 모든 다른 지체들은 지극한 관심과 배려로 새끼손가락을 돌봅니다. 자기의 할 일을 다른 지체에게 미루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각 지체가 자발적으로 다른 지체를 돌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각각의 지체로서 유기적 기능을 하는 잘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각 지체는 본능적으로 그와 같은 유기적 역할을 잘 수행하지만 교회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고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무엇보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루어야 할 화목의 좋은 본보기가 우리의 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각자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의 몸을 잘 관찰하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큰 비밀은 그 안에서 만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엡 1:23). 만물을 완성하실 하나님의 계획이란 창조와 구속의 성취를 뜻합니다. 창조와 구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 되었고 종말에 완성될 것입니다. 이미 성취하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의 화목이고 장차 완성될 창조와 구속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친히 화목을 주도하시고 이루시지만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그 일을 계속하시고 장차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 된 자들의 특징입니다.

인간의 몸도 각 지체가 유기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인간 사회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동생을 잘 지키고 돌보지 않았고, 자기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냐며 하나님께 반항하였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역할, 즉 돌보고 지켜야 할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서로 화목하게 되고 만물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창조와 구속의 완성입니다. 화목이 얼마나 장엄하고 위대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화목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구속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려는 창조와 구속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이 구속을 통한 창조의 완성을 이룰 대상입니다. 가정, 교회, 국가, 사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과학, 인문학, 윤리, 정의, 자연, 자원, 질서, 나아가서는 사랑.... 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실 창조와 구속의 완성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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