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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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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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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재 방식에서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잘 돕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 행동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무의미한 존재이지만 인간은 그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면에서 다른 사물과 구별된다고 합니다. 또한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불안이라는 정서에서 이해합니다. 그 불안이 인간으로 하여금 끓임 없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인간 이해를 위한 토대를 성경 계시가 아닌 인간 스스로가 파악한 ‘실존’에 두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방식은 신 존재의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 그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도 있습니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과 신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 대해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들의 신 존재를 증명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에 따라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만날 수도 있고 엉뚱한 신을 만나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신학은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를 창조한 현명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주론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들은 자연과 인과관계를 계속 추적해 가면 제1원인인 신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존재론적 설명은, 인간은 불완전하고 신과 인간은 상호 관련이 있으므로 완전무결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목적론적 설명은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도덕적 설명은 우리에게 그 실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도덕 법칙의 원천으로서 신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미학적 설명은 아름다움을 통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일 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믿게 되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서술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최종적이고 가장 확실한 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재와 뜻을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히 1:1,2).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 곧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따라야 할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사랑이라는 사실은 성경 계시의 핵심입니다. 이 계시를 지향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방식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하셨고, 모세에게도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신 18:13)고 하셨으며,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하셨습니다. 완전함이나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인데 이 둘도 결국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까지 이야기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고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 방식은 호흡을 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 방식은 인간관계 가운데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 방식은 앞의 두 가지를 포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한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같은 존재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능력과 수준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신분에 따른 요구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죄를 지적하고 불의를 비판하는 일까지도 사랑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동기와 방법과 목적을 지배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는 명분과 실천이 불일치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믿음과 삶이 불일치합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그보다 신자들끼리 사소하고 지엽적인 문제로 다투고 서로 적개심을 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 문제에 있어서 비난 받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믿음과 삶은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행위나 삶을 보고 믿음을 평가하지만, 엄격하게 말한다면 믿음은 삶이나 인격과 차원을 달리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는 사람의 윤리적 책임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행위와 차원이 다른 믿음을 말하면서 또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윤리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고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믿음과 윤리적 삶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덕목을 제시하여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덕목들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론적 토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완벽하게 이루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도록 힘쓰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은 율법으로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업적 위주의 행위와 율법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서상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분입니다. 이것은 구체적 신앙의 규범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신분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존재 방식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존재 방식은 사랑에 의존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완전한 도덕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하나님께 의존하여 생각하고 표현하고 행동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어떤 글을 쓰기 전에, 설교하기 전에, 권면하기 전에, 책망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사랑이 동기가 되고 있는지 사랑이 목적이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골 3:14, 고전 13:3, 요일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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