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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불법인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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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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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하기를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모두 의롭게 되었지만, 의롭게 된 것이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죄인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삶에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죄인 되게 하는 구체적 행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모든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니까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를 관념화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관념화시키게 되면 죄의식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말로는 스스로 죄인이라고 하지만 무엇이 죄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불법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덜 내거나 내지 않는 것이 불법이고, 공금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도 불법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래도 우리가 불법인 줄 알아서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것들은 불법인 줄 몰라서 범하는 경우도 많고, 불법인 줄은 알지만 아무도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관례라고 생각하여 불법을 행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양심이 예민한 진실 된 그리스도인라면 공금을 필요이상으로 낭비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공금도 아껴 써야 하고 공짜를 너무 좋아해서도 안 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기만 하고 좀처럼 남을 대접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 나라의 법에 의하면 불법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법에 대해서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 2:21절이나 로마서 10:13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은 친구가 “주여!”를 두 번 했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된다고 조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러면 한국교회는 큰일인데, ‘주여!’를 삼창하니까 더 못 들어갈게 아니냐?”라고 하면서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개 거짓된 사람은 자신을 과장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용어나 최상급 용어를 너무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번쯤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의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켜 양의 탈을 쓴 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리와 양은 아주 대조되는 동물입니다. 이리가 자신을 양으로 보이게 하려면 완벽하게 분장을 해야 합니다. 이리가 개 행세를 하려고 하면 그렇게 많은 분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리와 개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은 외모나 성격에서 이리와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속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속지 않을 것입니다. 양을 보고 이리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경계를 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 7:21절 이하는 산상보훈 마지막 부분입니다. 산상보훈은 마 5장에서 7장까지의 내용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교훈이라고 하여 산상보훈이라고 하였습니다. 마 5: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하였고, 그리고 마 8:1절에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하였는데,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산상보훈의 범위가 5-7장까지라는 사실이고, 둘째는 산상보훈의 대상이 제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8:1절에“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하여 산 위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산상보훈의 대상이 먼저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라는 사실이고 그 다음은 믿는 자들 중에서도 제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산상보훈의 내용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수준 높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그 산상보훈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은 형식적인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에도 강한 믿음이 있고 약한 믿음이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이 있고 어린 믿음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교육의 내용보다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단어의 뜻보다는 글을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자라면서 형식이 담고 있는 내용과 단어의 뜻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는 구구단을 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이스쿨에 다니면서 아직도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면 문제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말씀은 겉모양만 그럴 듯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여 주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것이란 말일까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그랬습니다.‘주여!’라는 호칭은 황제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다가 온갖 박해를 다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예수님을 주라고 불러서 박해를 당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여!’라는 말을 엉터리로 부를 위험은 초대교회 시대보다 오늘날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허투루 예수님을 주로 부를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즉 오늘날처럼 엉터리로 주여 주여 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목숨을 걸고 주님을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천국에 못 들어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을 대조시키고 계십니다. 즉 주여 주여 하기는 하는 데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를 부르는 자들이 마지막 날에 주님께 거절당하자 강하게 어필하였습니다. 마 7:22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그들의 주장에 대해 주님께서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셨습니다. 주를 부르던 자들이 행한 불법이 다름 아닌 바로 선지자 노릇과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일과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너무나 당황스럽게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복음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일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에 열린 예배, 은사집회, 단기선교, 큰 예배당 건축, 목회, 선교와 선교대회, 특별 새벽기도회, 찬양집회, 기도회 등 주의 이름으로 하는 온갖 종류의 활동들이 불법이라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불법이라고 하신 일들이 도둑질이나 강도 짓이 아니라 영적 일이고 복음을 위하는 일이고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이 불법인 줄 모르고 행하는 것입니다. 불법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주님을 위하고 복음을 위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거룩한 영적 일이라고 확신하고 행한 일입니다.

방위산업 부정을 저지르고 교회를 이용해 돈 세탁을 한 장로나 부정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자살한 장로도 그들이 나가는 교회에서는 존경 받는 훌륭한 장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는 공금을 횡령한 목사도, 가짜 박사학위를 취득한 목사도, 성추행을 저지른 목사도 여전히 존경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불법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산상보훈은 바로 그런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원리와 지혜입니다. 산상보훈에 의하면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답고 느낌이 좋고 매력적이고 훌륭한 것 같은 것은 가짜이고 거짓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경험과 상식적 판단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넓은 길을 좋아하고, 겉으로 보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고, 스펙을 따라 판단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진짜와 가짜는 당장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열매를 보지 않고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척 보아서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능력은 점쟁이에게나 있는 능력입니다. 예언의 능력이란 그런 것을 알아맞히는 능력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점쟁이 흉내를 내면 안 됩니다. 척 보아서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 산상보훈 즉 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지혜의 말씀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하지 말고 남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행위에는 나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는 별 상관이 없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예배, 성경 읽는 것 등은 다른 사람보다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상보훈은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을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고 말합니다. 윤리란 남에게 좋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치우쳐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경향이 그저 신앙스타일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본문에 의하면 불법일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는 나에게 또는 우리교회에 이익이 되는 교훈에 치우쳐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매우 강조하는 반면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소홀히 합니다.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대부분의 장점들도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 관계 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이 가르치는 것은 나 혼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끼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면 나에게 손해가 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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