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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 남에게 고통 주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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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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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에 의하면 메시야가 당한 모든 고통은 우리가 당해야 할 것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슬픔, 징벌, 매, 멸시, 버림, 간고, 찔림, 상함, 징계, 채찍,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까지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 그 모든 고통을 당하신 것은 우리가 그 모든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와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신 것인데, 그 사실에 대한 확증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 새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물론 부활로 보증된 새 생명이 온전하게 될 때에는 모든 고통이 사라지겠지만 아직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고통이 함께 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죄와 고통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문제는 단순하거나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되는 것보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을 훨씬 더 절실하게 느낍니다. 이를테면 덜 행복하더라도 고통이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이 죽음보다 무서워 고통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기도 합니다. 행복은 지속적이지 못하지만 고통은 지속적입니다. 행복은 쉽게 식상해지는 반면 고통은 면역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고통은 아무리 오래 지속되어도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인간의 모든 절규와 부르짖음은 고통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고통을 피하면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고통을 피하려 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다 당하셨습니다. 이것이 고통의 의미입니다. 그 의미가 바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은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고통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고통은 더 큰 고통을 예방하게 하고 치료하게 합니다. 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은, 무한증을 수반한 선천성 무통각증입니다. 이것은 압력을 제외한 아픔과 차거나 뜨거운 것의 감각을 뇌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유전성 질환입니다. CIPA 환자는 일상생활에서 피곤함, 허기, 배설 본능, 성욕 등은 정상인과 같이 느끼지만 고통, 뜨거움, 차가움과 같은 감각은 느끼지 못합니다. 이 병 자체는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심각하지 않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함으로 인하여 모든 질병을 예방이나 치료할 수 없어서 대개 일찍 죽는다고 합니다. CIPA처럼 고통을 전혀 못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병이 깊어지기 전에는 아무런 자각 증세가 없는 병이 암과 한센 병입니다. 암이나 한센 병이 무서운 이유는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고통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것인지 모릅니다. 갑자기 어디가 아프면 일단 암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안심입니다. 불완전한 세상에서는 생명의 보존과 행복을 위해서도 고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통의 또 다른 의미는 그것이 능력과 자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참척의 고통을 당한 자에게는 참척의 고통을 경험한 자만이 위로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위대한 증인들이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 할 수 있음은 그들은 모두 우리보다 극심한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고난과 고통의 이런 의미와 유익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 자체는 싫어하지만 고난과 고통의 경험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고통의 의미와 유익을 발견하지 못하면 허무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니체는 그의 『도덕의 계보』에서 인간의 문제는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인간이 고통을 받는지에 대한 회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만약 고통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고통을 바라고, 심지어 고통을 추구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삶의 의미가 없음은 고통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며, 고통의 의미가 없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저주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하지만 고통은 나름의 너무나도 소중한 유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은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신 것이고 궁극적으로 고통 없는 완전한 새 생명과 그의 나라를 지향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당하는 고통을 피하게도 하시고 감당하게도 하시는 것도 궁극적으로 완전히 고통 없는 영원한 새 생명의 풍성함을 지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통은 생명의 보존을 위해서나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서나 그 외에 많은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에게 고난이나 고통을 허용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허용하시는 고통은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차원이고 방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고통은 영원히 고통 없는 상태를 위한 하나님이 지혜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가능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당하는 대부분의 고통이 자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C.S 루이스에 의하면 현대인이 당하는 고통의 5분의 4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고통이란 자연이 주거나 신이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술이나 주술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에는 주술이 아닌 기술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술이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기술도 인간의 고통을 궁극적으로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인간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헤아려 고통을 피하고 줄이기 위해 노력하게 하셨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부도덕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기 때문에 그것을 줄여야 합니다. 잘못된 전통이나 풍속도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개혁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도 인간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적인 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현대는 사회 제도가 복잡하기 때문에 동기가 선한 행위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의 행동 동기만 순수하면 된다고 하였지만, 막스 웨버는 결과까지 책임지는 윤리를 강조하였습니다. 낭비와 사치는 이웃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이고 절약은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 십자가의 의미이고, 그것을 확증하는 것이 부활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치와 낭비를 삼가고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도 아끼고 절약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를 도우며 살아야 합니다. 낭비를 줄이고 절약하는 것도 일종의 고통이지만 그 고통은 고상한 고통이며 의미가 있는 고통이고, 힘없고 약한 자들에 대한 너무나 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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