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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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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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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불신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기독교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고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좀 더 선량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구원론도 권선징악 차원에서 이해합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불신자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종교가 아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기독교가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복음만이 고통 중에 있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고, 그 복음은 고도의 윤리와 도덕을 능가하는 사상과 철학까지를 포함하지만 현실적 기독교는 일반 불신자들의 상식적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심각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통기독교가 자유주의 쪽의 사회구원론을 경계하는 것은 옳지만 사회구조적 악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구약의 예레미야는 철저하게 망해 희망까지 포기해 버린 조국 유다를 향해 구원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날에 정의와 공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그 날이 곧 유다가 구원을 받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 유다는 살 길이 열려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날에 다윗의 왕손에서 한 의로운 왕을 일으켜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미심장한 사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이루실 유다의 구원을 정의와 공의의 실현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기대와 전망은 현실적으로 망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조국인 유다가 불의한 세력에 의해서 억압받는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불의한 세력은 바벨론입니다. 당시의 바벨론과 유다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바벨론은 근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제국이었고, 유다는 여러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약소국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서 정의와 공의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이치로 볼 때 미국과 쿠바와의 관계에서 승패는 정의와 공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바벨론과 유다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 관계에서 정의나 공의를 판단의 잣대로 삼는 것은 현실감이 없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정의이고 공의입니다. 국제 관계에서 그 사실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의 경제 구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공정하게 경쟁한다고 해도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떤 면에서는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조직과 집단 안에서는, 명분은 인권과 자유와 정의이지만 실제는 힘이 정의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곧 성경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비교하면서 세상 나라의 특징이 그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크게는 세상 나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안에 있고 모든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인프라나 하나님께 반역하는 인간의 죄까지도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을 불의를 행하는 나라로 본 것은 바벨론만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대조되는 세상 모든 나라와 집단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궁극적인 희망이고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전할 메시지는 그 날이고 메시야이고 하나님 나라입니다. 다른 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임시적인 것이고 가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것은 그 날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라 그 불의에 대한 구체적 저항이고 분명한 분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삶에 이런 특징이 나타나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저항하고 분노하고 진정한 은혜를 제시하고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런 도전 앞에 어떤 분들은 사회 정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도전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은 그럴 용기도 없고 그렇게 할 만한 역량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에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되는 분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다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직접 그렇게 하지는 못해도 그런 운동에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이것까지 마다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대 백성 전체가 자기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몫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일일이 다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찾고 참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일과 약한 이웃에게 관심을 쏟으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집중하는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나라는 사람의 힘에 의해 세월질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제시한 그 날에 일어날 일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 날,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 준비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일입니다. 산이 낮아지고 깊은 계곡이 솟아올라 평지가 되고 대로가 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메타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벨론이 무너짐으로 일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라가 일어나 유다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재림의 메시야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서도 구원이 정의와 공의의 실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기에 역시 아직은 악이 득세합니다. 그러한 사실에 당황해 하거나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궁극적 구원을 선포하였지만 그 구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확증된 것을 알고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은 역사상에서 실현된 은혜이며 그 어떤 방해와 도전에도 무효화 되지 않을 전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실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이루시는 것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불의와 죄와 그릇된 욕망에 포로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큰 은혜의 손이 하나님의 손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손에 잡혀 그 날을 대망하며 오늘을 사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 렘 33: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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