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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하는 ‘시간’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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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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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 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이런 노래를 들으면 막연하게 그 가사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이방인의 순환적 시간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노래는 사람이 속 좁게 생각하고 아옹다옹하며 살지 말고 사람 좋게 살자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 윤리적으로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야 할 책임을 해이하게 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방인의 시간관은 순환적이라서 모든 것이 돌고 돈다고 생각합니다. 순환적 시간관에서는 새것이란 없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게 할 만한 자연적인 요인들이 많습니다. 성경의 창조를 믿지 않고 성경이 가르치는 시간에 대해 모르면 모든 것은 돌고 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날마다 해가 뜨는 것도 돌고 도는 것이고, 가을에 낙엽이 떨어진 후 죽은 것 같은 나무에서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 소생하는 것을 보고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은 돌고 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봄이 되고 여름 되고 가을 되고 겨울 되는 사시(四時)는 끝없이 반복 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인생도 돌고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에는 환생이론이 있고 희랍철학에는 플라톤의 영혼회귀설이 있습니다.
초대 교부였던 오리겐 같은 신학자는 플라톤이라는 철학자를 아주 존경했기 때문에 그의 영혼회귀설을 받아들여 기독교도 영혼 회귀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는 플라톤의 영혼회귀설과 기독교의 영혼구원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자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기독교인들 중에서는 불교의 환생이론과 기독교의 부활과 구원을 혼동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겨울에 죽은 것 같은 나무에서 봄이 되면 새싹이 돋는 것과 부활을 동일한 원리로 믿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나 구원은 겨울에 죽었던 나무나 풀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불교의 환생이론이나 플라톤의 영혼회귀설 은 바로 그들의 순환적 시간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생이라는 말이나, 플라톤의 영혼회귀설도 순환적 시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새해가 됩니다. 사람들은 한 해가 시작하는 1월 1일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옛날 사람들은 춘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24절기인 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입하-소만-망종-하지-소서-대서-입추-처서-백로-추분-한로-상강-입동-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 중 춘분(春分)은 24절기의 4번째이며, 태양 황경(黃經-celestial)이 0도가 되는 때를 말합니다. 양력으로는 3월 20일 내지 3월 21일경에 듭니다.

춘분에는 태양이 지구와 일직선상에 놓이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춘분에서 시작하여 365일이 지나면 또 같은 날이 돌아온다고 생각하여 시간이 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춘분을 시작으로 해서 계절을 이해하고 시간을 계산하였습니다. 이런 순환적 시간관에 대한 흔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동일합니다. 페루의 마우스 피츠에 있는 잉카 문명에도 멕시코의 테오테와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에도 그리고 거의 모든 이방 문화에는 순환적 시간관에 대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순환적 시간관은 수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학에서 무한을 가리키는 기호는 8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0자와 구별하기 위해 뒤틀어 놓은 것입니다. 원(0=圓)은 무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고대 원시문화에는 뱀을 숭배했던 문화의 흔적이 많은데 그것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이 원과 같은 모양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을 보고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뱀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은 순환적 시간관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것들입니다.

기독교신자들이 세계 문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뱀의 마미나 조형물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 이유는 하와를 유혹했던 뱀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에 뱀이 사단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에 기어다는 뱀을 모두 사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 유적지의 뱀의 마미(mummy)나 상(像)이나 그림들은 순환적 시간관이 만들어 낸 문화입니다. 게다가 뱀이 가지고 있는 독의 치명성을 어떤 절대적인 힘으로 생각하여 뱀을 숭상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이 다 그릇된 시간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기어 다니는 뱀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뱀은 윤리적으로 선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짐승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까 뱀은 나쁘다거나 비둘기는 착하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짐승이나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로 우리에게 오해되는 것입니다. 뱀을 잡아 죽이고서 마귀를 잡았다고 가슴 후련해 하는 것도 바른 신앙적 태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간은 돌고 돌지 않습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이 성경의 선적인 시간관은 신학에서 이야기 하는 종말론적 시간관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시작하신 창조와 구속의 일을 지금도 계속하시고 앞으로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 가운데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일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종말론적 자세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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