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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참지 못하시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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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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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한적한 산속 물가에 백합 한 포기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백합은 다른 꽃들과 어울려 나름대로 자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새 한 마리가 백합을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또 그 다음 날도 작은 새는 백합을 찾아와 자기가 경험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작은 새를 만나면서 백합의 마음속에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새가 부러워졌습니다. 백합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일기 시작한 것을 눈치 챈 작은 새는 온갖 감미로운 말로 백합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 작은 새는 백합에게 자기는 너무나 자유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며, 원하기만 하면 어는 곳이든 갈 수 있음을 이야기 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새는 백합에게 속박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따분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다른 곳에는 항상 즐거움이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 감탄하면서, 때로는 백합이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행복의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나쁜 작은 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백합은 자기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입에서는 늘 불평과 불만의 소리가 튀어나왔고 짜증과 한숨이 버릇처럼 되었습니다. 마치 감옥에 사는 것 같았고 맑은 공기와 맑은 시냇물 소리조차 짜증스럽게 들였습니다. “나는 왜 이런 지옥 같은 곳에 틀어박혀 사는 거야, 나도 이런 곳을 탈출하여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자유와 기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세상 모두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불평하며 살게 된 백합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작은 새를 전폭적으로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새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졌습니다. 백합은 자기의 결심을 작은 새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그 산속을 떠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백합을 찾아온 작은 새는 백합의 주위 흙을 부리로 쪼아 파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백합은 마음이 설렜습니다. 얼마 있으면 자유의 몸이 되고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을 상상하며 작은 새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흙을 다 파헤친 작은 새는 백합의 허리를 두 발로 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백합은 너무나 황홀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아가는 도중에 백합은 점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불쌍한 백합은 그렇게 죽었습니다. 나쁜 작은 새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심어주시고 길러주신 산속을 떠나 볼품없이 시들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이 한 송이 백합만 하지 못하다고 하신 그 아름다운 모습을 불평하더니 그렇게 불쌍하게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 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최악의 불행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잃어버린 아들, 탕자의 비유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우선 가슴을 설레게 하고 꿈같은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이 느껴지지만 불행은 바로 눈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행의 징조가 보이는데도 용감하게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갑니다. 그 다음 순간 불행이 들이닥쳐도 자존심과 오기로 버팁니다. 절대로 안 돌아간다고 스스로 다짐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더 갈 수 없는 데까지 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더 내 딛을 수가 없습니다. 둘째 아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죄의 욕망입니다. 죄가 그의 삶을 드라이브 하여 여기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갈 수 없는 떼까지 갑니다. 그 전에는 좀처럼 스스로 깨닫고 결단하는 법이 없습니다.

죄는 사람을 거기까지 몰고 가서 벼랑에 떨어져 죽게 하려 했지만 그 순간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씨앗 같은 한 가지 생각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 생각은 “내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이 생각은 성령께서 넣어 주신 생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는 순간 죽음을 향하던 마지막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조건 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일어났던 이 극적인 전환은 그의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강조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참으시려 고통을 감수하시고 또 탕자 같은 나를 구원해 주시고 그것을 인하여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한 순간이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누가복음 15:23-24, 스바냐 3:17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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