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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극약을 처방하듯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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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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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깊어 죽게 된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초기에 병을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 낫고 그보다 나은 것은 병이 들기 전에 예방을 하여 병이 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가끔씩 듣는 이야기지만 닥터들은 자기 가족이 감기에 걸려도 감기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감기란 한 번 걸리면 일주일에서 보름은 지나야 낫는 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면서도 기침이나 코 막힘 등 괴로운 증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사실 닥터도 감기의 원인을 정확히 알아서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처방을 한다고 합니다.

감기 뿐 아니라 많은 질병 치료에 대한 처방도 원인을 치료하기 보다는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처방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은 다른 병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고통이라는 증세를 빨리 제거하려 합니다. 한국에서는 감기 몸살에 걸리면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약국에서 지어주는 약은 다른 약국에서 지어주는 약보다 약효가 빠릅니다.

사람들은 약효가 빠른 약국의 처방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약효가 빠른 약은 괴로운 증세를 빨리 사라지게는 하지만 인간의 몸이 지닌 자가 면역력은 현저하게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약은 인체의 자가 치료를 도와주는 것이어야 하고 자가 치료능력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좋은 처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심장의 기능이 마비된 사람에게는 심장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전기 충격요법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생명이 촌각에 달린 심각한 환자에게는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극약처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기나 몸살을 치료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병이란 사람을 약하게도 하지만 또한 강하게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몹쓸 병이 많아서 예방을 철저히 해야 하지만 사람의 피부나 몸 안에 기생하는 세균을 다 죽이는 것은 저항력과 자가 치료능력을 해치는 것입니다. 자주 손발을 씻어서 유행성 질병에 감염되지 않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나 chemical 제품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자가 면역력을 떨어뜨려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은 더 없이 귀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또한 귀한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이에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세울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을  택하여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 자는 교인 뿐 아니라 외인에게도 칭찬 받는 자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자는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은 언제나 양보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남이 하기 전에 먼저 하는 태도는 칭찬받을 할만 태도입니다. 칭찬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하는 일이 선하여 남에게 이익이 된다면 결과론으로 볼 때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이상의 것을 신자에게 요구하십니다. 받기를 바라고 주는 것이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못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도 결국엔 칭찬 받는 사람 되는 것을 지향하여 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칭찬에 있어서 평가의 내용은 어떤 능력이 아니라 경건성과 윤리적인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사람이든지 성경이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는 어김없이 그의 경건성과 윤리성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어떤 탤런트는 칭찬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능력이나 탤런트는 가치중립적인 것이어서 선용될 수도 있지만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칭찬은 받는 사람이나 칭찬 하는 사람 모두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칭찬을 받는 사람이 유의해야 할 점은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칭찬 받기 위해 처신 하는 것이고, 칭찬을 하는 사람이 유의해야 할 점은 칭찬이 일종의 가치 평가라는 사실입니다. 칭찬이 가치 평가이기 때문에 칭찬을 하려면 평가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대학에서 학기 말이 되면 교수는 학생의 학습을 평가합니다.

교수의 학생에 대한 학습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집니다. reading, paper work, presentation, 통합능력, 클래스에서의 건설적 기여도, 나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능력, 목적을 벗어나지 않는 효과적인 지향성, 전통과 경험에서 보편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시 등 포괄적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런 평가에는 상당한 수준의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일상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이와 같은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와 인간관계가 너무 복잡하여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여러 사람과도 얽혀 있는 것이고 또한 언론과 여론과 통계 같은 것에 의해 사실이 부풀려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이나 어떤 주장이나 이론에 대한 정보가 사실 정보가 아닌 이미 평가된 정보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만약 어떤 정보가 잘못된 평가 정보라면 그 잘못된 평가 정보를 토대로 또 다른 평가를 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를 아주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그런 정보는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칭찬이란 낙심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의기소침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극대화 하여 격려하는 것이 되면 좋을 것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의 능력이나 인기 있는 사람의 탤런트를 칭찬하는 것은 결코 유익한 것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는 착한 사람을 칭찬할 때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칭찬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칭찬은 칭찬 받는 사람을 높이는데 포커스가 맞춰지면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되게 하는데 포커스가 맞춰져야 합니다. 또한 내가 칭찬하고 싶은 사람을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칭찬하는 사람이 나의 칭찬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칭찬은 칭찬 받는 사람에게 덕이 되기보다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칭찬 받는 사람이 정말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 칭찬은 그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도 합니다. 가벼운 사람은 칭찬에 마냥 즐거워하겠지만 속 깊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칭찬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칭찬은 신중한 닥터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극약을 처방하듯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칭찬의 부정적인 측면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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